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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by 책빛나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정말 이해가 안돼!"


나를 가장 괴롭게 하는 순간은, 이해하고 싶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다. 아마 대부분이 그럴 것 같다. 힘들게 혼자 하는 공부에서, 처음엔 제대로 알지 못했던 어떤 개념이 탁! 하고 이해되는 순간이 있다.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친 순간처럼 놀라움과 기쁨이 온몸을 전율시킨다. 공부할때 이런 기쁨을 몇 번 경험해본 사람은 힘들어도 끈기있게 지속할 힘이 생긴다. 하지만 끝내 이해에 이르지 못하고 머릿속을 혼돈이 지배하는 경험이 반복되면, 무기력감과 좌절도 학습된다.


이해의 과정은 어렵고도 길다. 한 단락의 글을 이해하려면 일단 각 단어의 뜻을 알아야 하고, 그것들이 모여 만든 문장을 이해해야 하며, 문장들이 연결되어 전달하는 한 단락의 메시지를 구조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의미 단위들을 좌우대칭으로 구조화하든, 피라미드식으로 단계를 쌓든, 공통점과 차이점으로 나누든, 스스로 구조화를 할 수 있다면 다른 이에게 설명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이해의 완성이다.


그런데 이해하지 못해 힘든 것은 공부에서만이 아니었다. 살면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를 생각해보면, 나와는 전혀 다른 생활방식으로 살아온 타인을 내 기준으로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 같다.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역사를 가진 또 하나의 우주다. 그래서 타인을 100% 이해했다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지극한 오만이라는 것을 어느 순간 느끼게 되었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공감도 가능해진다. 그런데 ‘공감’을 ‘연민’과 혼동하는 경우도 많다. 사전을 찾아보면 '공감'과 '연민'은 엄밀하게 다른 뜻이다. 동정 혹은 연민(sympathy)은 ‘감정’ 또는 ‘행위’지만, 공감(empathy)은 “타인의 감정이나 경험을 이해하는 능력”, 즉 지적 작업이라고 한다.

“나는 이제 다 이해했어”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고 눈과 귀를 닫아 버린다. 우리는 다만 서로를 이해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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