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껏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파티, 기쁨의 잔치다. 고단한 현실의 시름을 잊고, 평소의 내 뻔한 모습을 집어던진다. 멋있거나 우스꽝스럽거나 이상한 가면을 쓰고 또다른 내가 되어 무대에 오른다. '축제'라는 말을 들으면 단연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대학 축제다. 그리고 지금의 내 조용한 모습으로는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스무살 쯤 대학 새내기였던 나는 첫 학교 축제에서 친구들과 열정적인 춤과 노래로 공연해서 인기상을 거머쥐었다. 그때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무언가에 단단히 꽂혀서 축제를 약 일주일 앞두고 친구들과 나는 매일같이 안무를 짜고 노래방에서 녹음까지 해가며 밤을 새다시피 연습했다. 학교 축제에서 노래하며 소리 지르고 박수치고 몸을 흔들었던 경험이라니... 지금은 너무 아득하고 희미한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그 후 내 인생에서 그렇게 신나고 철없게 놀았던 적이 또 있었을까? 친구들과 소소한 파티를 즐기거나 대화의 기쁨에 푹 빠졌던 적은 있지만, 축제 같은 경험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삶은 팍팍해져만 가고, 기후변화로 인한 세계 곳곳의 환경 재앙과 전쟁, 죽음의 소식만 들린다. 가끔 축제라고 해봤자 공휴일에 가족과 바람 쐬러 나가서 맛있는 것 사먹고 불꽃놀이 같은 쇼를 구경하고 돌아오면 남는 건 피로와 카드값, 월요병 뿐이었다.
그래도 가끔 혼자 꿈꾸는 나만의 판타지와 같은 축제가 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 선생님이 남해의 어느 섬마을 바닷가 앞에서 베토벤을 연주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나는 그 장면이 그저 자기 실력을 뽐내는 공연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세계, 자연과 사람들에게 바치는 어떤 고마움과 사랑의 표현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도 언젠가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되어서 바닷가 앞에서 피아노 연주가 될지, 한국무용이 될지 모르겠지만 내 인생의 마지막 축제와도 같은 공연을 세상에 선보이고 싶다. 그야말로 상상 속의 버킷리스트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