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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쓰기

by 책빛나

값싼 옷만 주로 입다보니 매번 옷감에 쉽게 보풀이 생겼다. 이런 옷들은 오래 입지 못하고 수개월, 혹은 1~2년 안에 버리게 된다. 이렇게 버려지는 옷과 물건들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면 아찔해지면서도, 넉넉치 못한 지갑 사정을 핑계로 늘 저렴한 옷과 신발만 사곤 했다. 반면 동생은 항상 물건을 신중하게 샀다. 동생과 함께 쇼핑하다 보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지만, 그녀는 늘 평생 소장할 만큼 질 좋고 유니크한 제품을 기어이 찾아내서는 승리의 환호성을 지르곤 했다. 그런데 어느날 동생의 집을 보며 한가지 깨달았다. 집 안에 플라스틱을 없앨수록 집이 훨씬 더 품위있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언제인가부터는 ‘천원샵’ 같은 곳은 되도록 가지 않고, 플라스틱 용기 대신 유리, 도자기, 스텐인리스 제품으로 하나 둘 바꾸기 시작했다. 옷도 '폴리'라는 단어로 시작되는 합성섬유 대신, 면이나 린넨, 캐시미어 100%를 고르려 한다. 비록 값은 나가지만 그렇게 오래 쓸 수 있는 물건을 하나 둘 가지고 나서부터 내 자신이 점점 충만해졌다.


이런 변화에는 도미니크 로로의 <심플하게 산다>라는 책도 한 몫을 했다. 그녀는 아무리 풍족해도 만족하지 못하는 역설을 지적하며, 적게 소유하는 대신 삶의 본질로 통하는 '심플한 삶'을 이야기한다. 소위 '미니멀리즘'에 매혹된 나는 한동안 온 집안의 서랍을 하나씩 열어놓고 불필요한 물건들을 버리기 시작했다. 몇날 며칠을 버리고 정리하고 또 버려도, 버릴 것들은 끝없이 나왔다. 그런데 물건을 버리고 꼭 필요한 것만 남길수록 마음은 점점 가벼워지는 것이었다.


오래 쓰는 것은 심플함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심플함을 실천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오죽했으면 칼 융이, "간단함이 모든 것 중 가장 어려운 일만 아니었어도 간단해서 해볼 만 했을 텐데"라고 했을까. 하지만 소박하고 충만한 삶을 원한다면 심플하게 살아볼 것을 권한다. 그 시작은 일회용품의 세계를 벗어나서 내 취향에 맞는 물건을 발견하고, 오래 오래 쓰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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