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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서재 Jan 03. 2021

토우의 집 - 상처의 집, 권여선 장편소설/자음과모음

제목 토우의 집

저자 권여선

출판 자음과모음(2020)

한줄평 : 상처의 집

국가 폭력이 어떻게 한 가정을 파괴하고 마을을 분열시키는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어제까지 yes24에서 대여 이벤트가 있어 냉큼 구매했어요. 이 책에 대해 어떤 정보 없이 읽었습니다.

'토우의 집'은 2014년 봄부터 가을까지 <자음과 모음> 계간지에 '장독 뒤에 숨어서'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글이라고 해요. 그 글을 모아 양장 개정판으로 2020년 11월 30일에 출간되었습니다.

초반까지는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처럼 어린 두 주인공들의 어른을 향한 시선을  보며 재밌게 읽었어요.

1970년대 군사독재정권이 배경이라는 것도 중반 이후에 알았습니다. 부모님 세대에 어떻게 살아오셨는지에 대한 향수 정도로 재밌게 읽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슬퍼집니다. 저의 낯빛도 깜깜한 밤처럼 어두워졌어요. 아... 내가 기대한 소설이 아니었구나 싶어 읽기를 중단할까 하다 끝까지 읽기로 했어요.

이 소설은 인민혁명당 사건이 배경입니다.

제가 그 사건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 소설을 읽으면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감을 잡지 못하고 헤맸어요.

점점 불길한 예감은 맞아들어갑니다. 이 소설은 국가의 용의주도하고 치밀한 계획이 어떻게 폭력적으로 변하는지를 현미경을 들이대듯 묘사합니다. 

그 과정에서 아무래도 가장 큰 희생양은 여성과 아이입니다.

금철과 영은 13살의 나이, 은철과 원은 7살의 나이부터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금철과 영은 웬만큼 머리가 컸고 약은 편이라, 은철과 원처럼 피해가 그리 크지 않아보입니다.

하지만 순수한 은철과 원은 가정이 파괴되어가면서 가장 큰 피해자들이 됩니다.

은철과 원은 둘만 비밀을 공유하는 마을의 스파이였는데 역설적으로 비밀을 알면 알수록 그들이 더 다칩니다.

원은 여러 번의 크고 작은 트라우마를 겪습니다. 또래에게, 아버지에게, 나라에 의해.

이 소설의 상징에는 '귀'가 중요한 단서로 나오는데 '귀'가 밝으면 밝을수록, 영혼이 순수하면 순수할수록 상처는 더 깊어집니다. 비밀은 귀라는 곳으로 맨 처음 들어오며 또 귀에서 귀로 전달되니까요. 순분은 은철이를 통해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걸 몸서리치게 깨닫습니다. 남의 귀에 헛된 이야기를 흘려넣었다고 자책합니다. 순분은 자신이 지은 죄값으로 새댁네를 돌보지만 자신도 알고 보면 거기서 거기인, 마을사람과 똑같은 남이었다는 걸 인정합니다. 

책의 처음에 은철이의 귀에 넣은 껌을 병원에서 빼고 은철은 원이와 비밀을 공유합니다. 은철과 원이 들었던 마을 사람들의 이름과 이야기는 어른과 어른에게도 전해집니다. 그 말로 인해 원이 엄마는 은철에게 선을 긋고 은철은 앙심을 품고 원이에게 보복합니다. 원이는 제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딸이었을 뿐, 더도 덜도 아닌 딱 7살이었습니다. 그런 원이를 가혹한 방식으로 처벌한 아버지, 더더 폭력적인 방식으로 처벌받는 죄없는 아버지, 원이는 자신이 저주를 품어서 아버지가 그렇게 되었다고 여기고 아무에게도 말 못할 비밀을 품습니다. 

동네에서 그놈의 입으로 인한 말과 귀로 귀로 전해진 소문 때문에 사달이 납니다. 그 와중에 나라에서도 쉬쉬하며 빨갱이라 칭하는 사람들을 잡아 족칩니다. 말과 말이 전해지는 것 자체가 이렇게 폭력적이라는 것, 그 말 한마디로 인해 여러 생명이 죽는 것, 사람들은 타인이 타인에게 입에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넣어주는 것처럼 입에 담기도 어려운 말을 품었다 내뱉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타인에게 상처가 될지 모르면서요.

 (우리 사회에 경멸감, 혐오감이 가득 담긴 말을 서로에게 주고 받는 걸 보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폭력적인 세계에 살고 있죠. 어떻게 하면 평화로운 언어가 향기처럼 퍼질까요?)

책의 후반에 원은 짝꿍의 귀를 물고 어머니께 일러바치듯 말하다 어머니가 듣지 않는 걸 알고 말을 멈춥니다. 원은 이제 은철이와 비밀을 공유하지도 말수도 점점 잃어갑니다. 모든 폭력은 사람의 입과 귀에서 시작한다는 걸 작가는 말하고 싶었을까요?

그 중 가장 큰 피해자는 여자 아이, 원이와 새댁이라는 인물에게 마음이 많이 갔어요. 특히 편안할 안(安)이라는 한자를 하염없이 들여다보는 새댁에게.. 말할 수 없는 슬픔과 상실감이 전해졌습니다. 편안할 수 없는 팔자,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운명을 받아들일까요?

순분에게도 제 모습이 비춰졌는데요. 저는 일하면서 들은 다른 사람의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제삼자에게 전하지 않으려 애씁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나에게 일어났던 소소한 이야기들은 가벼운 입으로 누군가에게 전할 때가 있어요. 이 소설을 읽으며 내가 입과 귀로 선을 넘었다는 자각으로 깨어있고, 선을 넘는 폭력을 저지르면 안되겠다는 다짐했어요.

정말 좋은 소설이지만 사회의 어두운 단면, 사람의 그림자를 보게 됩니다.

이런 소설도 좋아하는 이웃님들께는 추천하고요.

가볍게 별 생각없이 즐기는 독서를 하고 싶다면 많이 무거운 글이 될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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