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딸에게. 1편

소설 오직 두 사람 - 어떻게 아버지의 딸이 되는가?

by 투명서재

소설 오직 두 사람


김영하 저. 문학동네. 2017년 05월 25일


한줄평 : '아버지의 딸'에 대한 현실같은 소설, 어떻게 아버지의 딸이 되는가?




어떤 경험은 몇 초 만에 나를 그때 그 과거의 자리로 소환시킨다. 생생하게 각인되어 잘 잊히지 않는다. 대학원생 때의 일이었다. 오랜만에 집에 가기 위해 서울역에서 고향으로 내려가는 기차를 탔다. 아무 생각 없이 내 좌석에 앉아 기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기차가 출발하기 직전 남자 어르신 두 분이 거나하게 취해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문이 닫히는 순간, 알아차렸다.


‘아버지다!’ 영점 몇 초간 고민했다. ‘아는 체할까, 말까?’ 어린 시절의 경험상 아버지가 취해 계실 때 옆에 있으면 나에게 득이 될 게 없었다.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야 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의 내가 ‘그래도 아버지인데.’라고 말하기에 불편해졌다. 두 분이 내 옆을 지나가실 때 내가 일어서서 “아빠!”라고 불렀다.


아버지는 날 보시고는 깜짝 놀라시더니 옆에 있는 친구에게 딸이라고 소개하셨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아버지는 예매한 좌석으로 가시고 갑자기 이상한 낌새는 내 옆자리에서 시작되었다. 내 옆의 40대 여자가 우는 것이었다. 한참 울다 어딘가에 전화했다.


“아버지는 잘 계세요? 약주는 요즘 덜하세요?”


통화 상대는 그녀의 어머니였다.

안절부절못하고 인사할까 망설이는 나를 들킨 것 같아 찜찜했다. 그러면서 왠지 20대의 나는 40대의 그녀와 동질감을 느꼈다. 그녀의 아버지도 술을 자주 드신다는 것과 그녀도 나의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뭔지 알 것 같다는 것이었다. 지금에서야 그 공통점을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아버지의 딸이다.”


이우경 작가의 ‘아버지의 딸’에서 분석심리학자들이 쓰는 용어를 말한다. ‘아버지의 딸’이란 아버지에게 각별한 영향을 받은 딸이다. 이런 딸들은 형제자매 중에서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랑을 제일 많이 받은 딸이기도, 아버지와 닮지 않으려고 했지만, 무의식적으로 아버지를 닮아가는 딸이기도 하다.


나의 아버지를 보고 당신의 아버지가 떠올라 울던 여자, 그녀를 보고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이 고프면서도 아버지의 눈길을 받지 못해 실망과 애증으로 점철된 딸이 상상되었다. 그녀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소설 ‘오직 두 사람’의 주인공 현주 말이다. 소설 속 현주는 전형적인 아버지의 딸이고, 현주의 아버지는 ‘아버지의 딸’에서 유형을 분류하자면 유혹형 아버지다.


충분히 좋은 아버지는 정신분석학자 위니코트가 말한 충분히 좋은 엄마와 마찬가지로 딸을 충분히 사랑하고 애정 어린 양육을 해서 딸이 남자들과 더불어 잘 살아가면서도 주체성을 잃지 않고 자립적인 여자가 되게끔 도와준다.


딸을 감정적으로 무시하거나 죽음, 이혼 등으로 딸을 내버려 두는 부재형 아버지도 있고, 딸을 애지중지해서 버릇없이 키우는 아버지도 있다. 수동형 아버지는 아버지 역할을 포기하고 딸이 모든 것을 스스로 하도록 방치하는 아버지다. 유혹형 아버지는 딸과 정서적으로 너무 친밀해서 계속 옆에 묶어두려는 아버지이고, 지배형 아버지는 딸에게 복종을 강요해서 언제나 딸을 두렵게 만들고 불안정한 상태로 만든다. 중독형 아버지는 알코올이나 마약 같은 약물에 빠져 딸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고 이상형 아버지는 딸을 아내나 다른 아이들보다 특별히 사랑해서 딸이 스스로 특별하고 재능을 부여받은 존재로 느끼게 만든다.’

- 이우경 ‘아버지의 딸’에서. p.36


현주는 고등학교 졸업 후 아버지가 둘이 가자는 유럽 여행을 거절하지 못한다. 20대가 되는 딸을 위해 축하의 의미로 알았던 유럽 여행은 아버지가 가고 싶은 미술관을 전전하게 된다. 현주는 아버지가 원하는 그림 속에 있는 마론인형 같았다. 아버지의 이혼 후 자신만 아버지의 편이 되어 왠지 지켜줘야 할 것 같은 부담 속에 지낸다. 아버지가 애인과 여행을 다녀와야겠으니 애인의 아들을 며칠만 현주의 집에서 돌봐달라고 하자 현주는 거절하지 못한다. 현주는 아버지를 자식처럼 달래고 아버지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딸’ 역할만 하게 된다. 아버지가 취약해 현주는 심리적으로 부모 역할을 하고 정서적으로 의존되어 밀착된 관계를 유지한다. 현주의 인생에서 ‘딸’만 있다.


‘주말마다 같이 영화를 보고, 근사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철학에 대해 토론하고, 제 몸매의 단점을 가장 잘 가려줄 수 있는 패션에 대해 여자친구처럼 수다를 떨고, 때로는 아예 쇼핑까지 함께 나서던, 젊고 자신만만하던’ 아버지를 현주씨는 차마 버릴 수 없다. 현주에게 고백하듯 말했던 또 다른 아버지의 딸은 ‘아빠는 제 좋은 모습만 원했던 거예요. 아빠, 아빠, 하고 따라다니는 귀여운 딸’만 원했던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2편에 계속... 이어서)

09화 아버지의 딸이여, 독립하라! 2편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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