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는 내내 먹먹함을 느꼈다. 하지만 끝내 눈물은 나지 않았다. 저자가 눈물을 참고 꾹꾹 눌러쓴 글이기에.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읽었을 때였다. 이 책은 1999년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학생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리볼드가 900여 발의 총알을 난사해 학생 12명과 교사 1명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으로 시작된다. 이 책은 딜런의 어머니인 수 클리볼드가 아들의 죽음 이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수많은 책과 연구결과를 읽고 많은 전문가들과 이야기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냉철한 연구보고서다. 자신의 아들이 어떻게 자살 충동을 갖고 다른 사람에 대한 분노감으로 살해까지 일어났는지에 대해 담담히 말한다.
책을 읽을 때 참았던 눈물이 흘렀던 건 유투브에서 수 클리볼드(딜런의 엄마)가 나와 유족에게 진심어린 사과하는 장면을 보고 나서였다. 16년의 세월이 흐른 후 그녀는 어느새 깡마르고 머리카락은 하얗게 변한 할머니가 되었다. 가해자의 엄마로서 아들을 잃은 슬픔과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 미안함으로 고통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녀의 가슴엔 악성 혹을 만들고 죽지 못해 살았던 지난 7년과 또 다른 살인-자살 사건을 예방하기 위한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살아온 10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보여졌다. 동영상을 보다 마음이 아파서 정지시켰다. 사건이 21년이 지난 시점에도 아들이 저지른 행동으로 죄인처럼 사죄하는 모습에 같은 엄마로서 참담했다. 그저 자식을 낳고 사랑했을 뿐인데, 최선을 다해 길렀을 뿐인데 그 결과가 너무 참혹했다.
한없는 슬픔, 아들에 대한 그리움, 침잠하는 정신이 책 속에 전해진다. 정신력이 대단하다.
“아들이 그 정도로 될 때까지 뭐했어? 아들의 살해 계획을 모르다니!”라는 비난과 의문에 오랜 침묵을 깨고 아들의 이야기를 썼다.
대부분 총기난사 사건의 가해자 가정이라면 학대와 폭력, 방임, 부모의 알콜이나 약물중독을 떠올릴 것이다. 나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어떤 고정관념 속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답은 그렇지 않다. 어느 가정에서건 가해자, 피해자는 나올 수 있다. 우리 자녀는 절대 그러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 아주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에서도 가해자가 생긴다는 것이다. 딜런의 타살-자살 범죄의 원인은 정신장애에 있다. 그녀의 말대로 정신장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랑만으로 충분치 않다.
심리학 공부를 할 당시 한 임상전문가 선생님께서 그런 얘기를 수련생인 나에게 한 적 있었다. 자기 딸이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는 정신건강도 주의해야 한다고. 20대 초반까지 심신의 건강을 지키기란 어려운 것이다. 청소년 사망원인 중에 크게 차지하는 비율이 자살이고, 보통 우울증, 정신증도 청년기까지는 안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회가 복잡, 위험해지는 것도 한몫 한다.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 속으로 놀랐다. ‘어떻게 자기 딸이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싶었다. 하지만 그게 맞다. 가정에서는 잘 키워도 사회에서는 내 아이가 어떤 상처를 받고 어떻게 약해질지 모른다
딜런은 어릴 때부터 소심하고 쑥스러워하며 완벽주의가 있고 친구들과 잘 어울렸다. 그런데 “왜 그런 짓을 저질렀지?” 묻는다면, 답은 우울증이다. 사실 자기를 죽이고 싶었는데 다른 사람들을 먼저 죽이고 자기를 죽였다. 더군다나 수 클리볼드는 너무나 평범하고 상식적인 장애인 학교의 교사였다. 사회생활, 봉사활동을 하며 주위 관계도 잘 맺는 엄마였다. 자신의 아들이 살해와 자살을 했다는 걸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이 책이 아들을 애도하는 작업이자 저자 자신을 용서하는 과정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스스로를, 아들을 용서하는 것이 아마 가장 힘들지 않을까? 살인을 저지른 아들을 행동은 받아들일 수 없지만, 아들 자체로는 여전히 사랑한다. 엄마의 마음을 하늘에 있는 딜런은 알까?
그녀는 천상 교육자였다. 아들을 올바르게 교육시키려 했고 사랑했다. 타인이 던진 아들을 자주 안아줬냐는 질문에 무너졌다. 아이를 자주 안아주고 사랑을 표현했어도 그럴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사람의 뇌를 투명하게 보고, 마음을 훤히 알 수 있겠나?
다만 나는 엄마의 지극히 정상적인 교육 태도가 딜런이 느낄 땐 다소 숨 막히게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딜런이 부모로부터 배웠던 감사, 예의, 배려, 사랑이 딜런이 자살 충동을 느낄 때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부모에게는 자녀가 자기의 마음속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얘기할 수 있을 만큼의 공간, 여유, 등이 있어야 한다. 허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혀가야 한다.
예를 들어 평소에 혼이 자주 났던 아이는 자신에게 끔찍한 일이 벌어졌어도 당연히 혼날까봐 얘기하지 않는다. 심한 경우 자신이 아프거나 다쳤고, 위기 상황인 경우에도 부모에게 혼나니까 말하지 말라고 하는 청소년도 있다. 부모가 심신이 약해, 걱정이 많아 자기가 어떤 얘기를 하면 부모가 쓰러지거나 견디기 어려울 거라고 판단하면 또 당연히 얘기하지 않을 것이다.
책 내용 중 어떤 부모가 딸이 요즘 말수가 줄고 처져있던 차에 수 클리볼드의 "자녀에게 직접 물어보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녀의 말을 듣고 13살 딸에게 아주 끈질기게 캐물었더니 부모 몰래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고백을 들었다. 그 얘기를 할 당시 딸은 심한 자살 충동을 느꼈다. 자녀에게 조그만 이상한 낌새가 알아차려지면 여러 번 묻고 백방으로 알아보고 - 친구나 선생님, 주위 사람들의 관찰, 느낌도 중요하다 - 적극적으로 내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 딜런처럼 살인-자살 같은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도 보호해야 한다.
나는 그들이 총기 난사를 한 데는 학교생활이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학생들과 선생님을 향해 총을 쐈다는 게 의미 있다. 그의 자존감이 건드려지는 어떤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학교 분위기, 다른 선생님과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는 청소년들에게 목숨만큼 중요하다.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다른 친구들을 따돌리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보여도 선생님들은 본체만체했다. 학교에서 소위 인기 있는 운동부 아이들은 딜런을 툭툭 치거나 뒷담화하거나 무시하는 언행을 했다고 한다. 딜런이 심각한 왕따는 아니었지만 그 친구들에게 쉬워 보이는 상대였던 것 같다.
딜런이 사귀는 몇몇 남자 여자친구들이 있었지만 에릭이라는 친구가 딜런의 분노감에 불을 붙인 듯했다. 그 둘은 학교 식당을 폭파시킬 폭탄을 놔뒀지만 천만다행으로 터지진 않는다. 둘 다 자기들을 거칠게 대하거나 얕보는 학생들에게 보복하려는 심정과 자기가 그들과 다르다는 과시 욕구, 한순간에 그들이 두려워하는 영웅으로 변하고 싶은 마음 등으로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고 본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사실은 이런 일이 어느 가정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능력있는 교사였고 취미로 그림을 그렸고 다정한 이웃 중에 한 사람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글도 잘 쓴다는 것이었다. 표현이 어찌나 적확한지 너무나 와닿고 저자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아, 사람이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이렇게 될까?’라는 심정이 되었다.
자살과 타살을 예방하는 데에는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우리는 자녀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한다. 수 클리볼드는 아들이 죽은지 1달 지나고 나서 아들의 메모를 발견한다. 2년 전 자해하고 있다는 글귀였다. 우리는 '설마 내 아이가'라고 생각하며 외면할 수 있다. 부모라는 삶에 치여 자녀의 어려움을 직면하기 두려울 수 있다. 감당이 될만큼만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우리의 본능 때문이다. 하지만 자녀는 부모가 보호해야 할 대상이다. 정신건강은 또 신체적인 아픔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그 때문에 부모는 자녀가 어떤 모습이든 살피는 여유와 담대하게 대면하는 정신적인 힘이 있으면 좋겠다. 이건 엄마로서 나의 바람이기도 하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책에서.
"콜럼바인 비극을 폭력적 비디오게임이나 느슨한 총기 관리법 같은 외부의 영향에 초점을 맞춰 설명하기는 쉽다. 그렇지만 그날 일어난 엄청난 사망과 부상 가운데 자살로 죽은 두 소년이 있었다."
이 글을 읽는 순간 쿵 하는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딜런이 저지른 살인에 대해서만 생각하느라 이상한 일이지만 딜런이 자살로 죽었다는 사실의 의미에 대해서는 곱씹어보지 않았던 것이다.
p,253
괴롭힘과 우울증, 자살 사이에도 강한 연관성이 있다. 괴롭힘의 대상이나 주체나 둘 다 우울증, 자살 생각, 자살 시도 위험이 높아진다. 예일대학교 연구에서 괴롭힘 피해자가 자살을 생각할 확률이 다른 아이들보다 2~9배까지 높아진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받은 모욕과 굴욕이 딜런의 심리적 상태에 일조했을 가능성이 높다. 어느 시점에서 여러 해 동안 자기한테 향하던 분노가 밖을 향하기 시작했고 딜런에게 위안을 주던 자기 파괴에 대한 생각에 다른 사람들도 포함되기 시작했다. 안전해야 할 학교에서 반복적으로 모욕을 경험한 것이 전환점이 되었을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딜런이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굴욕을 당했다고 해서 딜런이 한 행동에 대한 책임이 덜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딜런이 종일 지내는 장소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잘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 뼈아프게 후회된다. 학교의 학업 성취도 대신 학교 분위기와 문화를 아는 데(그리고 그게 딜런과 잘 맞는지 파악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관심을 쏟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따금 나는 이러저러했더라면 이 일이 다르게 끝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몽상에 빠져들곤 한다. 그 몽상은 늘 다른 학교에서 시작한다. 그렇긴 하지만 내가 가장 크게 후회하는 점은 딜런의 내면이 정말 어떤지를 알기 위해 해야 할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