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셀 반 데어 콜크 저. 제효영 역. 을유문화사. 2020년 10월 25일. 원제 : The Body Keeps the Score
한줄평 : 트라우마 생존자들이 보이는 증상 - 얼고 망각하고 해리한다.
우리는 심각한 심리적 상처 경험을 한 사람을 트라우마 생존자로 부른다.
숨이 막힐 것 같다거나 조절할 수 없을 정도로 자해나 자살충동이 든다. 트라우마 경험을 한 사람들의 방어기제 중 하나는 얼어붙기(freeze)다. 위험한 상황에서 도망가거나 싸울 수도 있지만, 그 두 가지 방어기제도 할 수 없다면 몸이 얼어버린다. 예를 들면 범죄 현장에서 피해자는 소리를 지를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경직된 상태가 된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위협을 받을지도 모르니 몸이 죽은 척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한 트라우마 피해 후 그 사실 자체를 잊어버린다. 유년기에 일어났던 피해를 의식적으로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가 큰 충격을 받았더라도 지금까지 잘 살 수 있었던 건 '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특징은 해리가 자주 일어난다. 트라우마 강의를 들으면서 '해리'라는 개념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 우리가 충격적인 경험, 자연재해, 각종 사건 사고, 전쟁, 고문, 따돌림 등을 경험할 때 생존이 가능한 것은 나와 몸, 의식과 무의식, 나의 면면을 쪼개서 따로 떨어뜨려 놓았기 때문이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 아동학대, 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이 마치 내 몸과 영혼이 분리되어 그 경험을 마치 제 3자처럼 객관적으로 거리를 두고 볼 수 있는 '해리'는 그래서 생존에 유리하다. 분리되지 않은 채로 온전히 100 프로 다 감각하고 경험한다면 일상생활이 어렵다. '해리'의 유용성, 목적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일상적으로 나타나는 해리에 대해서도 다시 보게 되었다.
우리가 술 마시고 필름이 끊겼을 때 기억나지 않고 찜찜함으로 남아있는 것처럼,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다른 면에 대해서도 온전히 알아차리지 못하고 멍해지거나, 실제 기억하지 못한다. 영화 ‘밀양’에서 배우 전도연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고 잠시 주의를 돌렸을 뿐인데도, 자기 손목을 칼로 긋고 나서 피를 뚝뚝 흘리며 집에서 걸어 나와 “살려주세요.”라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자해하는 동안 '해리'가 일어난다. 자신이 뭘 하는지 의식하지 못한다.
만약 자해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을까?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살리기 위해 자해와 해리 증상은 생겨난다.
트라우마 치료 전문가 권혜경 박사님 말씀대로 증상은 우리 몸을 살기 위해 얼마나 우리를 위하며 열심히 일하는지 모른다. 증상을 반드시 없애야 하는 나쁜 게 아니라, 고맙고 수용할 나의 일부다.
만약 트라우마 증상이 없었다면, 피해자들은 벌써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닐지도 모른다. 미국의 한 여성은 5살 때부터 20대 초반까지 아버지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 24살이 되어서야 자신이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녀는 24살까지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인식하지도 못한 채로, 나는 두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왜 그런지 알지도 못한 채, 나는 낮의 아이와 밤의 아이를 분리해서 어떤 것도 이 둘 사이를 오가지 못하도록 했다.’
- 권혜경 박사님 복합외상 트라우마 세미나 자료 중에서.
그녀는 스무 살까지 공부를 잘했고 운동에도 능했다고 한다. 20대 초반에 미스 유니버스에 나가 뽑힐 정도로 외모가 뛰어났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20대까지 유능한 자기와 밤에 아버지로부터 무력하게 성폭행당하는 아이를 서로 만나지 못하도록 했다. 자신을 두 가지 면으로 분리시켜야 낮과 밤의 두 세계에서 모두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트라우마 피해자 김지은님도 ‘김지은입니다’ 책에서 자신이 이중적으로 보일 수 있는 모습에 대해 글을 썼다. 피해자가 일상에서 보여지는 대표적인 해리다. 내가 무슨 말과 행동을 했는지는 똑똑히 기억하지만 그 둘 사이에 전혀 대화하지 못하도록 한다. 그녀는 가해자의 말대로 트라우마 경험을 그저 잊으려고 노력했다. 낮에 일하는 수행비서와 밤에 성폭력을 당하는 자기를 철저히 분리시켜 놓았다. 그래야 집안에서 가장 역할을 하는 자신이 계약직 일을 지속할 수 있었고, 평판이 생명인 정치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인은 아주 큰 트라우마를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가 했던 모순적인 언행에 대해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의 흔한 증상이 해리다. 자신이 영혼만 빠져나와 몸만 있는 것 같고, 기면증도 아닌데 갑자기 졸리다. 한순간에 멍해지며 바로 했던 말이나 행동을 잊는다. 어떤 사람은 망각 시간이 길기도 하다. 일반인 입장에서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을 볼 때 ‘왜 저렇게 이중적일까? 가식 아닐까?’ 라고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생존 방법이자 방어기제로서의 증상이기에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영역이다. 진짜로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다.
내가 그 트라우마를 직접 겪어보지 않는 이상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많은 학대, 폭력 피해자들이 이해받지 못하는 지점, ‘왜 가만히 있었냐? 도망치지 않았냐?’ 라고 피해자에게 묻거나 2차 피해를 가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