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하숙생

위기의 청소년 - 청소년기를 인내합니다.

by 투명서재

“손님, 주문 안 하신 돈까스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집 공기 밥 추가는 무료에요.”


적당히 튀겨진 돈까스가 담긴 접시를 내민다. 아이의 방 앞이다. 아이는 접시를 넘겨받고 책상 위에 놓는다. 아빠 닮아서 입이 까다로운 아이는 새 모이처럼 먹는다. 아이가 유년기에 나는 소식하시는 시어머니에게 하루에 열두 번의 주전부리를 챙겨드리는 며느리 같았다.


어느새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엄마는 해녀입니다’ 아름다운 그림책 제목을 ‘엄마는 하녀입니다’로 읽는다. 성질난다. 열두 살 아이의 청소년기로 들어가기 직전, 엄마인 나는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이 아이는 현관문 바로 옆에 딸린 방에 사는 하숙생이다. 저 애는 나의 아이가 아니다. 남의 아이다. 저 애는 내가 낳은 아이가 아니다. 하늘(?)이 주신 아이다.’


주문을 건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언제 어떻게 용처럼 불을 뿜을지 모른다. 노래가 흘러나온다.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너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사랑

난 위험하니까 사랑하니까

너에게서 떠나줄 거야”


앞으로 8년, 하숙생과의 계약 기간이다. ‘널 사랑하니까 8년 후 떠나줄게.’ 가까운 미래가 기대된다. 너희 청소년기와 나의 중년기, 전쟁 같은 사랑이 아니라, 그냥 전쟁이 되지 않기를. 그래서 ‘위기의 청소년’ 책을 미리 읽었다.


나의 청소년 시절을 떠올려도 지금 생각하면 조울증이 아니었을까 할 정도로 기분 변화가 극심했다. 꺄르르 웃다 어떤 생각에 갑자기 심각해지고. 좋아하는 가수 나오면 들떴다가 어느 순간 사는 게 심드렁해졌다. 세상과 어른의 모순에 치를 떨며 비판하다가 내 안의 괴리는 차마 보지 못했다.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대는 머리 속 중얼거림, 정리되지 않던 가치관이 뇌 속에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라디오처럼 끄거나 멈추고 싶었지만 작동되지 않았다.


내가 청소년기를 보낼 때 뭐라 표현하기 어렵고, 감당하기 힘든 혼란스러움을 누군가 그저 들어주거나 건성인 ‘응’이라도 대답해주었다면?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나의 청소년기에는 미칠 것 같은 기분을 담아줄 안전한 누군가가 없었던 것 같았다. 내 아이의 청소년기를 평화롭게 보내고 싶어 장-다비드 나지오의 ‘위기의 청소년’을 요약하려 한다. 그는 청소년에 대한 간단명료하고 깊이 있는 통찰을 준다.


위기의 청소년

부제 : 부모와 교사는 그들과 이렇게 만나라

장-다비드 나지오 지음. 임말희 옮김


그는 책의 초반에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는 매일 조금씩 죽어간다. 생명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세포들이 죽어야 또 새롭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매일 조금씩 자신을 잃어가는 어른들에 비해 청소년들의 변화는 심각할 만큼 극렬하다. 매순간 성장을 위해 아이의 몸은 변해가고 마냥 즐거웠던 아동기는 곧 사라져 버린다. 이런 어지러운 변화 속에서 그들의 머리는 자신의 신체만을 겨우 다스릴 수 있을 뿐이다.


"난 지금 애도 어른도 아니에요.

나중에 조금 더 어른에 가까워지면 나도 나 자신을 통제할 수 있겠죠.

지금은 60퍼센트는 애, 40퍼센트는 어른인 거 같아요.“

- 알랭, 15세 p.29


그의 책에서 청소년기 발달이 어렵고도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 번째는 청소년기는 신체에서 올라오는 욕동과 그것을 억누르려는 초자아의 시도가 격렬하고, 서로 적대적인 두 세력 사이에 짓눌려있는 시기다. 마치 부모가 격렬하게 싸우는데 어느 편도 들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어린아이 같다.


두 번째는 위기의 청소년들이 겪는 문제는 초자아의 병리다.


도벽, 음주, 약물, 중독, 등의 문제들은 초자아의 눈이 키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 안에 스스로를 관찰, 성찰할 수 있는 시각이 생기면 조절이 가능하다. ‘밀턴 에릭슨의 심리치유수업’ 에 나오는 도벽이 있는 아이 사례처럼 이마에 제3의 눈이 있다고 가상으로 상상하게끔 도와줘 더이상 물건을 훔치지 않았다.


많은 정신건강의학 관련 사람들이 표현하듯 청소년기의 뇌는 간단히 말해 살짝 미쳐있다고 한다. 최성애 박사님의 감정코칭 책에는 고상한 표현으로 리모델링 중이라고 쓰여있다. 뇌를 재구성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데 신체는 성적으로 급격히 발달하는 중이기 때문에 에너지를 발산할 방법들과 건강한 방식으로 내 감정을 표현할 도구가 필요하다. 운동이든 미술이든 말이다.


그렇다면 부모가 할 일은 무엇인가?

책에서는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반응은 천둥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청소년기를 지난 부모의 공통된 말도 이것이다.


고요히(침묵으로) 기다려라.


코로나 시대, 다가올 아이의 청소년기를 대비하여 집에서도 마스크를 쓸까 잠시 상상했다.




위기의 청소년 책에서.

우리 모두는 성장하기 위해 어려서 두 번의 신경증을 겪어야만 합니다.

첫 번째는 3-6세에, 두 번째는 11-18세에 찾아오지요.

첫 번째는 오이디푸스기에 겪는 유아 신경증이고,

두 번째는 청소년기에 겪는 청춘 신경증입니다.

이 두 성장 신경증은 일시적이며 저절로 해소되기 때문에

건전한 신경증이라고 할 수 있어요.

성장신경증을 겪는 청소년들 앞에서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반응은 천둥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p.37


청소년기를 하나의 성장신경증으로 간주하는 이런 태도는, 제가 청소년들과 만나면서 갖게 되었고, 청소년을 상대하는 부모나 전문가에게도 이런 태도를 권장하고 있어요. 청소년기의 이런 건전한 성장 신경증은 4세 때 경험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청소년기에 다시 나타난 것이란 점을 덧붙이고 싶군요. 한 사람의 인성은 건전한 오이디푸스 신경증과 10년 후에 다시 건전한 청소년 신경증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달렸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 두 경우 모두 신경증과 관련되는데, 오이디푸스기와 청소년기라는 삶의 두 시기 동안에 신체적 욕동의 요구(리비도의 폭주), 사회적 가치라는 요구(부모, 또래, 문화적 가치 등), 그리고 내면의 목소리나 억압적 초자아의 형태로 자기 스스로에게 부과한 내재화된 요구들에 부응하려 애쓰면서 주체는 자기 자신의 해체를 경험하게 됩니다.


청소년기는 타인에게 듣는 비판의 목소리만큼이나 신체 감각이 강하게 영향을 미치는 시기입니다. 자기비난의 형태로 내재화되는 이러한 타인의 부정적 평가를 우리는 초자아라고 부르지요.


결국 이러한 신경증은 아직 미숙한 청소년의 자아가 폭압적인 욕동의 요구와 강압적 초자아의 요구를 조화시키지 못한 데서 생긴 겁니다. 욕동이 넘쳐나는 신체와 지나친 도덕의식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런 내적 전쟁 때문에 청소년은 붕괴되고 분열된 존재가 되고, 자기 자신은 물론 자신이 정서적으로 의존하는 사람들, 특히 부모에게 모순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지요. 이로 인해 청소년은 주변 사람에게 당혹감과 충격을 안겨 줍니다. 완만한 고통의 성장 신경증은 대개 이런 식으로 나타나지요. 충동적이고 본심과는 다른 감정, 말, 행동을 하기 때문에 항상 불만족스럽고 타인과 수없이 갈등을 일으키게 되지요. 이런 종류의 성장 신경증의 정상적 마무리는 부모의 지성과 평정심에 달렸습니다.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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