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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서재 Dec 10. 2018

10. 비밀이라는 짐을 내려놓으세요.

차돌처럼 박힌 말못할 비밀, 어떻게 할까요?

심리상담에서는 오랜 동안 혼자만 묵히고 삭히던 비밀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  그렇다고 꼭 비밀을 공개해야만 치료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많은 트라우마 치료에서 그 경험을 드러내지 않아도 증상이 나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



 

  내담자들에게는 말못할 가족비밀이 많습니다.
제가 상담했던 어떤 분은 이복동생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바람을 피워서 어느 날 갑자기 동생을 데리고 왔고요. 어머니는 외부에 그 사실이 알려지길 원치 않았습니다. 꽁꽁 숨기며 지금까지 살아왔던 거죠. 내담자의 어머니가 사실은 친어머니가 아니라 새어머니이거나 친척인 경우도 있습니다. 반복되는 성추행, 성폭행이 가족이나 친척, 이웃에게 자행될 때도 비밀이라는 족쇄가 채워집니다.


 가족치료에서 ‘가족비밀’은 가족 일부나 모든 구성원이 가지고 있거나 공유하는 혹은 어떤 가족관계 목적을 얻기 위해서 서로 비밀로 하는 신념과 지각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비밀이라는 짐이 가족을 무겁게 짓누릅니다. 이야기를 꺼내면서도 한참 망설였고 결국 털어놓고 나서 이렇게 아무 것도 아니었나? 싶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 사실 자체가 변하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없던 일이 되거나 과거가 달라지진 않잖아요.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해도 마음만 가벼워질뿐 나와 상황 자체는 똑같기에 허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표현하기 전과 후의 자신은 다릅니다.

  몸 안에 단단한 차돌이 사라진 것처럼 후련합니다.  

자신의 부모가 이혼한 것을 자신의 큰 약점으로 생각하던 친구가 있었어요. 이혼 사실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하자 오히려 친구들은 자신의 부모도 사이가 그리 좋은 건 아니라며 오히려 이 친구를 위로하고 더 가까워진 것 같다고 느낍니다.

  
  아무리 심각한 일이어도 믿을만한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아무한테도 이야기 하지 않았던 세월이 허무할 정도죠.




집단상담에서 자신의 괴로움이 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통이라고 느낄 때 안도합니다.


  

정신분석가 이승욱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자신이 정말 고민하는 것을 무기명으로 써서 내라고 하고 그것을 무작위로 뽑아 짝 지어 얘기하게 한 적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때에도 ‘아, 나만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아니었구나.’ ‘나만 이러한 고통과 괴로움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깨달음은 소외감에서 벗어나게 도와줍니다. 그 고민들이 누구의 손에 들려 있건 자기에게 약간씩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상담실에서는 입을 여는 것, 자기표현을 비언어적으로라도 하는 것 자체가 치유의 시작입니다.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면 상대방에게 공감 받을 수 있고 비슷한 사람들끼리 공유되며 연대가 생깁니다.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과 미투 운동에서의 여성들의 연대, 세월호 416 연대가 그러했습니다.


  아픔에 경중을 따질 수 없지만 많은 내담자들이 (성)폭력이나 학대 피해는 차마 입에 담기도 수치스럽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경험은 자기 고백도 중요하지만 듣는 사람의 반응에 더 민감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경험을 공개하고 싶다면 진정으로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또다른 2차, 3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뢰감으로 단단히 이어져 다른 누군가에게 발설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되는 사람이어야 하고요.


  
  누군가에게 알리기로 결심했다면, 어느 정도의 수위까지 말할 것이며 누구에게 전하고 싶은지, 어떤 말을 듣고 싶은지 한 번 예상해보면 도움이 됩니다. 내가 원했던 말이 아닌 전혀 다른 말이면 또 한 번의 상처가 될 수 있어요. 어떤 내담자는 아버지에게 맞은 경험을 친구에게 어렵게 말했더니 부모님이 이혼한 친구여서 너는 아버지라도 있지 않냐고 했습니다. 그녀는 그저 "얼마나 놀랐니, 정말 아팠겠다." 하는 단순한 질문과 힘들었던 마음을 알아주길 원했을 뿐인데 말이에요.


  
  이렇듯 우리는 ‘비밀’이라는 짐을 벗기 위해 사전준비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비밀을 간직하고 싶은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비밀을 공개하고 싶다면, 누구와 언제, 어떻게, 어느 정도 수위로 무엇을 공유하고 싶은지 고려하는 거예요. 내가 이야기를 나누어도 나와 상대방이 안전한지,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가 퍼뜨려지지 않을지 예상하는 것이 좋습니다. 셋째, 상대방의 상황에 따라 공감 받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해 둡니다. 그날따라 컨디션이 좋지 않아 귀담아 듣지 못할 수도 있고 원했던 말을 듣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과정을 거쳐 입을 떼려고 해도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글로 써보는 게 도움이 됩니다.  나만 볼 수 있는 곳에 아무 생각 없이 휘갈겨 쓰기만 해도 감정적으로 정화가 됩니다. 이를 두고 '치유하는 글쓰기' 책에서는 미친년 글쓰기라고도 하죠. 그 책에 나온 발설의 조건도 한 번 참고해보세요.


  박미라 선생님께서 제시한 발설의 첫 번째 조건 : 말하고 싶을 때까지 기다려라.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등떠밀려 얘기하는 건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한 내면의 말이 무르익도록 기다리라는 거예요. 두 번째 조건 : 발설에 적합한 상대를 찾아라. 믿을만한 사람인지 또 내가 발설한 후 상처받지 않으려면 누구에게 말할 것인가와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발설의 세 번째 조건 : 상대방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켜라. 입니다.


  제가 상담을 공부하는 초기만 해도 상담사나 정신과 의사가 부모님께 상처받았다는 내담자들에게 집에 가서 부모와 이야기 나누고 오라는 숙제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열명 중 아홉 명 정도는 본전도 못 찾습니다. 부모님께 서운하고 억울했던 점을 말하면 부모님도 당황스럽고 그런 자녀들이 못내 야속하거든요. 제 내담자들 중에서도 상담실에 오기 전 그런 말을 했을 때 부모님께 진심어린 사과를 받는 경우는 열명 중에 한 명 꼴로 드물었습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봤는데요. 부모님 마음상태, 시기적절한 타이밍을 고려하지 못하고 내용과 전달방식이 상대를 배려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적절하다'는 수준이 모호할 수 있지만 가능한 차분한 상태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거르고 정리하여 하는 것이 좋습니다. 말하기 어렵다면 편지글도 괜찮습니다.
  

  비밀을 짊어진 우리, 부디 홀가분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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