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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서재 Apr 13. 2022

호수의 일 - 이현, 창비(2022)


호수의 일

저자 이현

출판 창비 

발매 2022. 1. 27.


한줄평 : 흔들리는 호수의 물결처럼, 호정과 은기는 서로에게 잔잔한 울림이 된다.

호정과 은기, 각자 내면의 호수(상처)를 대면하고 서로에게 위로를 건네는 소설


겨울의 호수를 본 적 있을까? 실제 가서 보면 무섭다. 얼음이 꽁꽁 얼려 있지만 내가 발 딛는 어딘가는 확 빠져서 헤어나올 수 없을 것만 같아 두렵다. 이 소설에서 '호수'는 인생에서 잊히지 않고 꽁꽁 무의식에 담긴 어떤 경험을 상징한다. 강으로 흘러 바다로 보내지 못하고 깊은 곳 어딘가 갇혀 있는 상처다. 우리는 누구나 호수 같은 일들이 있다. 그건 꼭 큰 사건사고가 아니어도 말이다. 한 번 발을 잘못 딛으면 빠져나올래야 빠져나올 수 없는 호수 말이다. 소설의 주인공 호정은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여러 일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그걸 드러내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호수와 우물 같은 그녀라서 이름이 호정인가 싶었다.



소설쓰기의 전문가, 이현 작가의 장편소설, 내가 감히 이런 표현을 하긴 맹랑하지만, 이현 작가의 작품은 무르익었다. 그녀는 소설을 통해 자신이 뭘 말하고 싶은지 강렬한 욕구와 '말하기 어려운 마음과 세상'을 글로 그려내는 노련한 기술이 있다. 촘촘히 쌓여진 플롯에서 폭죽처럼 터지는 절정은 압권이었다. 그 장면은 호정이가 깊은 겨울 호수로 빠져들어 정신을 잃어가는 것 같았다. 읽는 나 또한 빨려들어가 심장이 뛰고 아득해졌다.



타인이 나에게 상처 주려는 의도가 없음에도 우리는 상처받는다. 세상 무해한 존재는 없다.(단,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백이진(배우 남주혁)은 무해함.^^:) 가족이 나에게 일부러 그런 게 아닌데도, 상황이 나를 약올리려고 틀어진 게 아닌데도, 나는 얼마든지 피해자가 된다. 호정이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말하고 싶지 않아서 숨겨놓은 아픔이 은기에게도 있음을 직관적으로 느낀다. 호정과 은기는 그들만의 언어로 말한다. '우리 얘기다.'라고 생각한 이야기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 고통을 알아보고 느낀다.



비슷한 상처를 가진 짝은 그렇게 첫사랑이 된다. 그들은 이제 막 맞잡은 손으로 한발짝 세상을 향해 나아가려 했다. 


하지만 세상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은기의 비밀이 하루 아침에 학교에서 폭로되고 그들의 함께한 첫 걸음은 어떻게 될까?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에게 무언의 위로, 침묵의 힘을 기억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버틸 것이다. 설사 호수의 얼음이 녹거나 와장창 깨진다해도. 옆에 있는 사람에게 기대어 나올 수 있음을 경험했기에. 호수에 빠지지 않고 유영할 수 있음을 체험했기에. 



이현 작가의 소설쓰기는 절박함이 느껴진다. 그 절실함이 그녀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게 아닐까. 체험 삶의 현장 프로그램에 나오는 꾸준한 생활인들처럼  숙련된 쓰기의 정점에 와있는 것 같다.



ps. 이현 작가의 yes24 인터뷰



[책읽아웃] 동심은 곧 원심인 것 같아요 (G. 이현 작가) | YES24 채널예스



위의 인터뷰 글 읽으며 소오름~~~ 


나도 이 글 처음에 무서운 겨울의 호수 언급한 게 경기도 포천의 산정호였는데!! 


이현 작가도 산정호를 보고 책 초반에 나온 겨울 호수의 묘사를 썼다니, 와~ 나는 이런 사소한 공통점으로도 감동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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