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피해자의 심리와 증상을 이해해보아요.
학교폭력 트라우마를 겪은 분들에게 위로를 전합니다.
2023년 1월
『저는 학폭 당하는 아이를 보며 수많은 날을 기도와 눈물로 견뎌내야 했던 학부모입니다.
김은숙 작가님이 써주신 나래이션에 위로도 많이 받았어요. 정말 대본 너무 잘 써주셨어요.
당하는 아이들은 분노조차 사치입니다. 하루하루 살아내기에도 급급하니까요.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조용히 분노하게 되요. 송혜교 배우가 너무 잘 표현해 주신 거 같아요.
저는 드라마 보면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그리고 많이 위로받았어요.
오늘도 어디선가 울고 있을 동은이들을 응원합니다.』
‘더 글로리’ 넷플릭스 공식 영상에 달린 베스트 답글입니다.
김은숙 작가. 안길호 감독, 배우들의 비하인드 코멘터리 | 더 글로리 | 넷플릭스 youtube
분노가 오래되면 휴화산처럼 겉으로 보기엔 고요합니다. 위의 답글처럼 조용히 분노하게 되죠. ‘더 글로리’에서 학교폭력 피해자 심정의 어떤 부분이 잘 표현한 것 같을까요? 오늘은 피해자의 심리에 대해 나누려 합니다.
첫째 학교폭력 피해의 가장 큰 피해는 자기를 혐오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여섯 개의 폭력’에서는 ‘학폭의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로 하여금 자기부정을 반복하게 만들어서 스스로를 혐오하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피해자는 자신이 어떤 이유로 그들의 먹잇감이 되고 노리개가 되었는지 잘 모른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학폭은 아주 작은 차이에서부터 시작된다.(이은혜 공저, 여섯 개의 폭력, p.177.)’고 말합니다.
선생님에게 폭언을 견딘 피해자는 말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지 않았어요. 처음 그런 말을 들었을 때는 ‘저 사람이 잘못해서 내가 이런 말을 듣는 거야.’ 싶었지만, 그 말을 계속 듣다 보니 문제는 나한테 있고 내가 잘못해서 욕먹는 거라 생각하게 됐어요.”라고요.
폭언과 폭력을 당하는 초반에는 놀라고 당황스럽습니다. 이런 일이 왜 나에게 일어나는지 어리둥절합니다. 그러다 하나둘 가해자가 더 생기고, 폭력의 정도와 횟수가 늘어나면 가해자의 화살을 자기에게로 겨냥해, 내면에 가해자가 만들어집니다. 마치 이중인격으로 분리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어요. 내면에 한 부분은 내 편, 다른 부분은 가해자의 편을 듭니다.
‘저 애들이 괜히 그러겠어? 내가 바보 같아 그렇겠지.’ ‘선생님이 나한테만 그렇게 하는 건 이유가 있을 거야.’ 하면 그들의 언행에 타당한 이유를 찾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분노가 어디로 향할까요?
그들은 힘이 세고 나는 혼자라 외롭고 약합니다. 더군다나 아군이 없다면 더욱 위축됩니다. 강한 그들과 전쟁해서 이길 게 아니라면, 차라리 나에게서 원인을 찾는 것이 안전합니다. 나를 바꾸는 게 오히려 가능할 거라고 예상되기에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도 자기에게 있다고 여깁니다. 화살이 나에게 향하는 순간, 자책과 비난, 자기혐오로 이어지기에 뫼비우스 띠처럼 무한반복 돼 자신을 종이꽃처럼 시들게 만듭니다.
두 번째는 트라우마 반응입니다.
‘더 글로리’에서는 동은이 “도와주세요!” 소리치거나 반항하는 몸짓을 취합니다. 하지만 그건 드라마니까 그렇지, 현실에서는 이런 반응을 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폭력 피해자들은 대부분 ‘얼어붙기’ 반응을 하기 때문입니다. ‘동물의 왕국’ 같은 다큐멘터리를 보면 사자가 쫓는 사슴이나 임팔라가 죽은 척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스트레스나 트라우마 상황에서 도망가기, 싸우기, 얼어붙기 방어기제를 통해 우리 몸을 자동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도망가거나 싸울 수 없는 극도의 공포나 위험한 상황에서는 몸이 꽁꽁 얼어붙어 움직일 수 없습니다. 마치 죽은 것처럼 심장박동이 줄어들고, 호흡이 멈추고, 체온은 낮아지고 근육은 뻣뻣해집니다. 제가 만난 내담자 중에는 생명이 위협받는 장면에서 다행히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어 폰 단축번호를 눌렀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었어요.
지속적으로 폭력을 당하는 상황에서 적절한 대처는 어렵습니다. 부당함을 말하고 학교폭력 매뉴얼에 나온 피해자 대응은 ‘원하지 않을 때는 “싫어!”라고 분명히 말하세요.’라고 쓰여 있습니다. “하지 마!” 혹은 “안 돼!”라고 소리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어요. 매뉴얼은 매뉴얼일 뿐입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신을 원망하지 마세요. ‘내가 거절했어야 했어, 분명히 의사 표현했어야지', 라고 자책할 수 있지만, 나의 몸이 나를 보호하기 위해 차선책을 선택했다는 걸 기억하세요.
셋째는 이중 메시지 노출입니다.
피해자는 말합니다. 가해자들은 자신이 말을 해도 뭐라 하고, 말을 안 하면 가만히 있는다고 뭐라 한다고요.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고?’ 소리치고 싶다고요. 우리 사회에서는 교실에서 나대는 아이, 조금이라도 남과 다른 아이, 톡톡 튀는 아이는 쉽게 표적이 됩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학교폭력은 ‘아주 작은 차이’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엔 이런 ‘다름’과 ‘독특함’을 잔디 깎는 기계처럼 평평하게 만듭니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평범과 평준화를 강요하다 보니 길들어집니다. 한 명이 ‘다른 아이’라는 표적이 되면, 그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하든 얄미워 보입니다. 입 벌리고 웃어서, 수다 떨어서, 준비물 없다고 빌려달라 해서, 등등 인간적인 틈이나 실수만으로도 언제든 나는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피해자가 잘못했다면 뭘 얼마나 잘못했겠어요? 제가 들은 왕따와 폭력의 ‘시작점’은 기가 찹니다. 인스타에서 ‘야, 그 애 좀 나대지 않냐?’라는 디엠에 맞장구쳤다고, 자기 남자친구랑 둘이 웃으며 대화했다고 표적이 되었어요.
일단 피해자로 찍히면 가해자들의 이중 메시지에 세뇌당합니다. 내가 뭘 해도 그들에게는 뒷담화나 폭력의 단서가 되니까 결국 아무것도 안 하게 됩니다. 교실에서 정말 돌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다는 청소년 내담자(심리상담을 받는 사람)의 말이 뇌리에 오래 남았습니다.
넷째는 감정조절이 어려워지며 점점 무기력해져 소진됩니다.
피해자에게 학교와 교실은 안전한 공간이 아닙니다. 특히 식사하는 공간과 시간은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아야 소화가 되는데요. 일부 피해자들은 급식은 먹지 않거나 간식으로 때웁니다. 하교 후 집에서 먹거나 학교 상담실이나 화장실에서 먹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일정한 수면과 영양가 있는 식사와 같은 자기돌봄 행동이 줄어들면, 감정을 조절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습니다.
갑자기 화가 났다, 눈물이 나기도 하고요. 그러면 나는 ‘이상한’ 혹은 ‘미친’ 사람이 된 것만 같습니다. 울분으로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지고, 교실에서 긴장된 몸으로 눈치 보며 앉아 있고, 몸이 신호를 보내면 지치고 무기력한 나날이 늘어납니다. 이러한 순환이 되면 학교가 도움이 되는 곳인지, 등교만 하지 않으면 괴로움이 끝날 것만 같습니다. 이렇게 피해자는 학업을 중단하게 됩니다. 가해자는 멀쩡히 학교에 다니는데 말이에요.
피해자들은 ‘너도 뭔가 (잘못)한 게 아니야? 너를 돌아봐.’, ‘네가 예민해서 그래.’라는 눈초리를 많이 받습니다. 학교폭력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정말 그런가?’ 하고 가해자와 방관자의 시각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다른 애들도 그러는데 왜 가해자는 유독 나한테만 그러는지, 가해자 자신이 뭔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정작 내부에서 원인을 찾아야 할 사람은 가해자인데, 가해자 내면에서는 온통 남 탓과 투사만 난무합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은 가해자인데 실제 상담센터에 오는 사람들은 피해자가 대부분입니다. 가해자는 인격적으로 성숙할 시기를 놓칩니다. 분명 가해자가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피해자 스스로 문제 있는 거라 여기지 않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분명히 말하고 싶은 건,
피해자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니 자책하지 말고, 나를 위로하고 편안하게 할만한 걸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그 누구보다 그대가 가장 중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