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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서재 Dec 19. 2018

12. 잃어버린 내면아이를 찾습니다!

내면아이를 만나고 싶다면, 가능한 생생하게!

중학교 때였습니다.

여의도 KBS 방송국으로 유명했던 프로그램(프로그램명은 기억나지 않습니다.)을 보러 갔어요. 저희 학교 교복은 인근에서도 알아주는 누가 입어도 흑역사를 연상시키게 하는, 아무리 깔끔하게 입어도 디자인은 커버되지 않는 교복이었어요. 압니다, 저희가 시골에서 갓 상경한 촌스러운 학생 무리들이었다는 걸. 학생 수가 많아 방송을 기다리는 줄 옆을 지나쳐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10대, 20대 청년들이 많았는데 저희를 보며 우리는 왜 기다리고 저 애들은 먼저 들어가냐며 화를 내고 교복 좀 보라면서 비웃었습니다. 저희는 예상치 못하게 주목 받으며 차별의 시선을 느꼈습니다.

그 중 한 둘은 저희한테 일부러 큰 소리를 지르며 깜짝 놀라게 하는 행동을 했고, 계단에 올라가는 끝쯤에서는 KBS 방송국 경비 아저씨께서 뛰어올라오지 말라며 잔소리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나같이 계단 끝에서는 뛰냐면서 타박하셨죠.

악몽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어요.

그 장면은 스페인 가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저희는 아침부터 버스를 타고 그 곳에 도착했으니 얼마나 피곤했겠어요. 한 명씩 졸기 시작합니다. 저도 졸린 나머지 꾸벅꾸벅 고개가 아래로 내려갑니다. 갑자기 훌리오 이글레시아스가 노래를 멈추더니 스페인말로 호통을 칩니다. 언어는 몰라도 불만이 가득하다는 건 느껴집니다. 그러더니 무대 뒤로 들어갑니다. 바로 이어서 유명 MC가 무대로 나오시더니 “방청객 섭외 누가 했어?” “수준 안 맞게 어디서 이런 애들을 데려다 놨냐”며 잠이 확 달아나게 혼냅니다.

물론 해외 유명 가수를 섭외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비싼 값을 주고 모셔온 거 압니다. 하지만 청소년들이었잖아요. 그 가수가 어떤 사람인지 솔직히 몰랐고 그저 졸음을 이기지 못한 몇 명은 졸았을 뿐입니다.

가수가 노래 부르기에 흥이 안 나고 관람객들의 태도에 실망스러웠다면 그건 에티켓을 지키지 못한 저희 태도가 성숙치 못한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루 종일 처음 겪는 ‘서울’이라는 공간과 ‘공연’이라는 시간이 그렇게도 불쾌한 경험이 되는지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꿈에 그리던 서울 방송국의 첫인상은 꽝이었고 다시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날 느낀 가장 큰 감정은 수치심이었어요.

나중에 알게 되었고 상황 속에서는 놀라기만 했지 어떤 감정이 들었어도 위축되어 얼어있었던 듯합니다. 우리가 뭔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긴장하고 있었던 우리들이 떠올라 좀 안쓰러웠습니다. 설렘을 가득 안고 갔는데 촌사람이라 무시당하고 졸았다고 혼나고. 졸았다는 것 자체가 시골에서 문화경험을 별로 없는 아이들이라는 걸 증명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게 잘못은 아니잖아요?

저희는 뭔가 부당하고 억울함을 느꼈지만, 아무 말없이 하행 버스에 올라 내려왔던 기억입니다.

만약 그 MC가 우리에게 어디서 왔니? 이 노래를 처음 듣는 거니? 라고 물었다면요. 그리고 나서 공연에 집중해서 보는 것, 박수로 분위기를 띄우는 것이 에티켓이니 너희가 더 신경 써서 관람하라고 했다면 우린 그렇게 했을 거예요.

최근 이 기억이 불현듯 떠올라 다시 어깨가 축 처지는 듯했습니다.

사소한 에피소드고 나에게 준 영향은 없지만 - 그 이후로 라디오에서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노래가 나오면 그 때의 기억과 MC에 대한 안 좋은 인상 정도? -

내가 느꼈던 시골 중학생으로서의 창피함, 서울에 오면 이런 괄시를 당할 수 있다는 걸 경험했어요.

그 날만큼은 우리가 여의도 동네 북이었답니다.

제목과 다른 글을 도대체 언제까지 읽어야 하는지 지루하셨죠? 제가 이렇게 길게 구체적으로 묘사한 의도를 이쯤되면 눈치 채셨을 거라고 짐작해요.

우리는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라는 말을 종종 들어봤습니다. 지금 처음 듣는 분이라고 해도 대체 그게 무슨 얘긴지, 그걸 어떻게 하라는 건지 선뜻 그림이 그려지지 않습니다.

마거릿 폴의 <내면아이 상처 치유하기> 책에서 나온 <내면아이란 우리 인격 중에서 가장 약하고 상처 받기 쉬운 부분으로 감정을 우선시하는 직감적인 본능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태어났을 때의 본래 모습이자, 핵심적인 자아, 타고난 인격인 셈>입니다.

마거릿 폴은 <내면적 유대감 형성을 통해 어린 시절에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바로 우리 안에 존재하는 내면아이와 성인자아 사이에 사랑스런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 관계를 통해 우리는 혼자 있을 때나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 자기 자신을 잘 돌볼 수 있다.>고 합니다.

처음에 적은 에피소드는 상처 경험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내담자 분들은 상처가 난 그 나이에 머물러 있습니다.

가족이나 중요한 누군가와의 헤어짐, 사별, 각종 사건 사고를 겪은 시점이요.

제가 상담할 때는 상처받은 내면아이(Inner Child)'를 발견하고 그 아이가 두려워했던 것과 원했던 것을 자각하여 직접 말로 해보거나 심상기법으로 그 상처와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상상합니다. 어떤 내담자는 일하는 엄마에게 학원에 대해 의논하고 싶어 몇 차례 시도로 연결된 통화해서 네 맘대로 해! 하면서 일방적으로 끊는 장면에서 엄마와 자기 사이에 셔터가 내려지는 것 같았다고 묘사합니다.

또 다른 분은 가정폭력을 당한 어머니가 아버지의 물벼락에 온몸이 젖어 있어 떨고 있기에 드라이기로 말려주는 상황을 떠올립니다. 그 때 어머니에 대한 진한 연민, 내가 가족을 지켜야겠다는 결의, 아버지의 폭력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를 함께 지켜봅니다. 어떤 이는 부부싸움하는 부모를 말리기 위해 자신이 끼어들었다가 아버지께 맞고 어머니께 위로를 받으러 갔는데 혼자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자기 방으로 돌아와 자신 역시 홀로 눈물을 삼켜야 했습니다. 얼마나 복잡다단한 감정이 들었겠어요?

내담자가 5-6살쯤 동생과 처음 이모 댁에 가야 하는데 무섭지만 티내지 않고 어떻게든 동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으로 끝까지 찾아갔던 장면에서도요. 그 당시엔 어리고 긴장을 많이 한 상태라 모든 것이 기억나진 않습니다.

그런 나를 한 발짝 떨어져 보면 바로 그 장면에서의 자기 공감과 함께 어른이 된 시선으로 객관화, 두 가지 작업을 모두 이룰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어떤 감정과 생각이 드는지 묻고 지금 이야기나 행동해주고 싶은 게 있다면 상상 속에서 그렇게 합니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그려졌다면, 이제는 그 때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거나 어떻게 해주고 싶은지 상상해도 됩니다. 현재의 내가 옆에 가고 싶은지, 말없이 지켜주고 싶은지, 안아주고 싶은지 느껴봅니다.

예를 들어 "네 잘못이 아니야, 괜찮아, 애쓰지 않아도 돼." 속엣말이 나옵니다. 그대로 지켜본다거나 안아주거나 토닥여주거나 아니면 내담자 편들고 대신 싸워주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영화 <키드>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8살 때 자신의 모습을 보고 뭐 때문에 안면경련이 생겼는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을 안아주며 달랩니다. 자기가 듣고 싶었던 말을 직접 하고 받고 싶었던 위로를 해줍니다.

그 장면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미 다 컸지만, 성인의 몸이어도 내 안에는 정신적으로 여린 어린이가 들어있습니다. 내면아이와 대화하고 웃겨주고 엉덩이나 어깨를 토닥여주는 것들이 어른이어도 여전히 필요합니다.

지그문트 프로이드는 '한 때 우리 자신이었던 어린아이는 일생 동안 우리 내면에서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중학교 시절로 소환되어 중학생의 감각과 감정을 되도록 있는 그대로 느껴보려고 이 글을 썼습니다.

그 날의 내가 원했던 게 뭐였지? 싶어요. '무시당해서 참 불쾌했지? 환영까진 바라지 않아도 어리니까 그럴 수 있겠지, 실수할 수도 있지 좀 받아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순수하게 저희를 존중해주길 바랐습니다.

외모나 출신지역, 학교가 아닌 평범한 청소년 그 자체로 봐주길 원했습니다.

정혜신 선생님 책 <당신이 옳다> '찬찬히 물으며 함께 그 뒤를 바짝 따르다'에 40대 남자 창민이라는 사례가 나옵니다. "투석을 받으러 가는 날 집을 나설 때부터 다시 돌아올 때까지 열네 살 창민이의 뒤를 밟듯 천천히 하루의 동선을 얘기해 주세요. 우선 창민이는 몇 시에 일어나죠?"라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열네 살 창민이 뒤를 따라가다 보니 어떤 느낌이 들어요?"라고 묻습니다. 이렇게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섬마을 집에서 육지에 있는 병원까지 투석을 받으러 가는 자신의 모습을 정선생님은 따라 갑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많이 긴장했던 거 같아요. 혼자 모든 걸 다 처리했어야 하니까. 다시 떠올려보니 너무 외로웠던 것 같아요. 하며 마지막엔 자신을 진심으로 대견해했답니다.

기특함을 듬뿍 담은 눈으로 자신을 지켜보고 낯선 길 가는 동안 외로움, 지루함, 피곤함을 여러 감정과 생각을 하나 하나 어루만져 줍니다. 그러면 열네 살에서 좀 더 성장한 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글을 읽는 분들도 고요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싶을 때 시도해보세요.

지금 나이가 25살이라면, 가장 최근의 힘들었던 경험을 떠올리면 됩니다. 인생의 최초 기억은 가장 어릴 때이지만 내면아이를 찾을 때는 역순으로 가봅니다.

내면아이 치유 작업을 하고 싶다면, 글쓰기, 그림 그리기, 점토나 찰흙으로 그 때의 상황이나 나를 만들어보기를 해도 좋습니다. 원래 공상을 잘 하시는 분들은 그냥 상상해도 잘 됩니다. 하지만 강하게 직면하긴 부담스럽다면 어떤 도구(글, 그림, 나의 경험과 비슷한 걸 재현해놓은 영화나 작품)가 있는 것이 안전한 편입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어떻게요?

가능한 생생하게요.

마치 <잃어버린 아이를 찾습니다.> 할 때의 아이처럼 그 때 입었던 옷, 그 날의 날씨, 누구와 어디에 어떻게 있었는지 결국 상황은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말이에요.

아마도...

처음엔 '이게 뭐야?'하고 어색하고 낯간지럽겠지만 내면아이가 두려워했던 것을 알고 듣고 뭘 원했는지 질문해 봅니다. 나도 모르게 아주 단순한 답이 나올 거에요. 어쩌면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릴지도 모르겠어요.

우리 안에 잃어버린 내면아이를 찾고 보살펴주자고요. 그러면 실제 내 가족과 자녀를 더 잘 살필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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