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투명서재 Dec 19. 2018

13. 부모님을 원망하는 내담자에게.

부모 안에도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있어요.


(내담자는 심리상담을 받기 위해 상담센터에 내방하는 분들을 말합니다.)



딩동! 제가 주문한 책이 도착했습니다.

아이가 <당신은 어떤 어머니입니까> 제목을 읽더니 바로 “당신은 나쁜 어머니입니다.” 합니다. 아이는 그런 식으로 저에 대한 불만을 표현했어요. 그렇게 해도 엄마가 자기를 혼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웃으면서 한 이야기였어요.

심리상담을 받으면 초반에는 부모를 원망하고, 왜 나를 이렇게밖에 못 키웠냐 비난하고 싶습니다. 내가 이렇게 된 게 모두 부모 탓이며, '부모를 바꿀 수만 있다면. 인연을 끊을 수만 있다면.‘ 하고 바랍니다. 내담자 분들 중에 실제로 부모와 연락하지 않거나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서로 모르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상담 처음에는 부모에게 있는 그대로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분노하고 부모의 단점만 들춰내지만요.

이럴 때 처방은 ‘부모도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하는 한 인간으로 이해하는 거예요. 그러면 부모에 대한 미움은 조금씩 줄어듭니다. 대부분의 내담자들은 처음에는 인정하기 어려웠지만 상담 중후반에 가서는 부모님도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였답니다.

상담자는 부모를 미워하게끔, 그리고 부모와 자녀를 무조건 분리시키려는 목적으로 상담하지 않습니다. 어릴 때 상처가 대부분 가족에게서 받았기 때문에요. 또 우리가 맺는 다양한 인간관계의 뿌리, 원형이 바로 부모-자녀관계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내담자 스스로 유리멘탈이라 부르며 심리적으로 연약해져 상담실에 방문합니다. 약한 내담자들이 처음에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부모에게 받은 상처에 원인을 돌리고 부모 탓을 하는 거예요. 부모 된 죄로 상담실에서 가해자로 둔갑합니다. 하지만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듯, 장점이 뒤집으면 단점도 되듯. 부모님께서 나에게 준 상처처럼 느껴지는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있습니다. 부모님이 자주 싸우니 눈치가 늘었다는 사람도 있고 부모님께서 동생에게만 집중하시니 자기는 오히려 자유롭게 일찍 독립할 수 있었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편 부모님들은 ‘상담을 받으면 애 버린다. 이상해졌다. 부모한테 대들기만 한다.’는 생각에 심리상담이 효과가 없다고 여기게 됩니다. 상담자는 내담자 부모에게 비난의 화살을 맞기도 합니다. 상담이라는 과정 자체가 자기를 돌아보는 과정이니 내담 아동이나 청소년은 부모에게 직면하는 말이나 질문을 합니다. 내담자의 부모님들이 상담 그만 받으라고 하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끔 억울하기도 합니다. 상담자인 제가 부모에게 반하는 언행을 부추긴 것도 아니고, 부모 입장에서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그게 상담 초반에는 빛을 발하지 못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나의 뿌리인 부모를 평범한 사람으로 보는 것, 다양한 시각으로 조망하는 게 필요합니다. 공주 역사박물관에 가면, 어머니의 일생이 계단에 조형물로 있습니다. 우리 엄마 1살, 7살, 20살, 30살, 70살 이렇게 모형이 세워져있습니다. 그 계단을 오르면서 어머니의 어린 시절과 창창했던 젊은 시절을 상상해 봅니다. 어머니를 이해하면 할수록 어머니와 나를 수용할 수 있습니다.

우연히 내담자가 부모님 옛날 사진을 갖고 있는 걸 보았어요.

젊은 시절 두 분이 웃고 계시더군요. 그 시절을 살아보지 않았다면 그 두 분을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없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전쟁, 민주화 과정 등 어려웠던 시대적 배경을 경험하지 못한 우리로는 세대차이가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 번 부모님의 옛날 사진을 한 번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울컥 하고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이 가슴 속에 쑥 들어오는 느낌을 받으실 수 있어요. 사진 속 어린 나를 보는 눈빛에서 꼭 껴안은 엄마의 몸짓에서 말이에요.

저도 그런 경험이 있어요. 어머니의 젊은 시절 챙 넓은 모자에 통 넓은 나팔바지를 입고 한껏 멋 부린 사진을 보니 천생 여자였습니다. 예쁘게 꾸미시는 걸 좋아하셨는데 그런 욕구도 참으면서 사셨다고 생각하니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대부분의 자녀들은 부모님이 어떤 사랑과 상처 경험이 있었는지 뭘 좋아하시는지 자녀에게 어떤 걸 바라고 계신지는 잘 모릅니다. 그러니 가능한 사진을 보면서 떠올려 보거나 직접 부모님께 여쭤보면 말씀해 주실 거예요. 부모님의 성장사를 알면 알수록 이해의 폭이 넓고 깊어집니다.

단, 여기엔 조건이 붙어요. 상담에서 부모님에 대한 좋지 않았던 감정이 어느 정도 해소된 다음에 이런 작업을 하는 걸 추천합니다.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려면, 이전에 미움과 증오감을 비우는 게 중요합니다.

상담 후반으로 갈수록 부모님에 대한 감정이 정리되면 아버지께서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싶어질 거예요. 아버지, 어머니와의 깊은 대화를 통해 내담자들이 바라는 가족의 변화도 조금씩 이뤄질 거라고 봅니다.

많은 내담자들이 종국에는 부모를 이해합니다. ‘그 때 당시에는 우리 어머니도 많이 힘드셨겠지요. 아버지도 어쩔 수 없으셨을 거예요.’ 라고요.

심리상담 효과 중의 하나는 가족에 대한 시각 변화입니다.

부모가 나에게 했던 말을 나 또한 어머니에게 반복하고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한 내담자는 내가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아버지와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부모를 볼 때 측은지심이 들게 됩니다. 부모도 외롭고 나와 가까워지기 위해 애를 많이 쓰는 걸 알게 되는 거예요. 어릴 때와 달리 작아지고 완벽하지 않은 아버지, 사회 속에서 갖은 풍파를 겪으며 어떻게든 가정을 지키려고 살아내는 어머니로 달리 보입니다.

상담 초반 부모는 아직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가까워지고 이해하게 됩니다.

부모는 자식 바라기인데 내담자들은 부모가 내 편이라는 엄연한 진리를 종종 잊어버립니다. 마치 세상 혼자 사는 척하는 청소년기처럼요. 중학생 내담자는 상담센터에 오기 전의 부모는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상담이 진행되면서 부모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은 들어주려 노력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다른 한 고등학생은 예고에 재학 중이었는데 부모에 대해 불만만 토로하다가 상담 종결쯤 부모님의 경제적인 여유, 선택권을 주는 것이 다른 친구들 가정과 다르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 상담 때 아이가 상담선생님과 이야기하다 보니 엄마, 아빠한테 고마운 것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내담자 분들께 하나 당부하고 싶었던 건 처음부터 가족에 대한 이미지를 단번에 변화시키기는 어려워요. 가족상담이나 연극치료 같은 한 회에 가족역동과 분위기를 직면하지 않는 이상, 그건 과한 욕심입니다. 원하는 사람을 한 명씩 진행하는 거예요. 어머니를 어머니대로, 아버지를 아버지대로 관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치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 보는 거죠.

부모 사이가 좋지 않았을수록 어머니를 생각하면 아버지가 안타깝고, 아버지를 생각하면 어머니가 걸립니다. 부부싸움이 잦았거나 이혼한 가정 말이에요. 둘 중 한 편을 들어야 할 것 같은 느낌과 죄책감을 호소합니다. 나와 어머니, 나와 아버지 각각 따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족의 복잡한 역동은 제외하고 나와 부모, 형제, 자매와의 관계방식을 하나씩 정리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어머니인 경우, 아들이나 딸은 희생하는 어머니 편을 들고 밀착합니다. 분리가 어렵죠. 가정폭력 가해자인 아버지께는 공격하거나 매몰차게 대할 수 있습니다. 가해자에 대응해 힘을 합쳐 한 편이 되어 공격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가해자 대부분은 유약한 사람들입니다. 가족이기에 균형 잡힌 시각을 갖기 어렵기 때문에 일대일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부모에 대한 지각은 입체적이지 않고 평면적이었습니다.

마치 어린 시절 갖고 놀던 종이인형 사람이었지요. 거기에 숨결을 넣어 우리 부모도 어떤 욕구가 있었고 어떤 상처를 받았고 어떤 꿈을 가졌었는지 그려보는 거예요. 어느 곳에서 들었는지, 책에서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한 여성 내담자가 자신이 임신했을 때 친정 집이 주택이었는데 옥상에 올라가자 아버지께서 더울까봐 물을 호스로 미리 뿌려놓으셨다는 이야기, 언제 도착할지 몰라 집 밖에서 자녀를 한참 기다렸다는 이야기 등은 부모님 시대에 내려온 묵묵하고 묵직한 표현하지 않는 사랑법이었습니다.

현대 서양식처럼 미주알 고주알 사랑한다고 이야기하고 껴안기가 일상적인 인사고 오버액션처럼 상대방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기는 참 어색합니다.

상담이 이어질수록 내담자는 부모가 자신에게 주었던 상처보다 애정 어린 언행을 더 잘 기억합니다. 특히 부모의 사랑 방식이 나와 달랐을 뿐이지, 부모가 진정으로 나를 사랑했다는 걸 가슴 깊이 느낍니다.

그 사랑의 표현은 부모가 겪은 상처와 열등감을 자녀가 똑같이 경험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감에서 시작합니다.

자식에게 좋은 걸 주려하는 것도 사랑이지만 일생 통털어 가장 아프고 힘들었던 경험을 주지 않으려는 것도 사랑입니다

부모는 자신이 깊이 경험한 트라우마를 자녀가 겪지 않게 하려 한 것뿐입니다. 부모의 열등감(콤플렉스)을 자녀에게 투사하여 다시 비슷한 걸 겪지 못하게 하는 거예요. 공부에 한이 맺힌 부모가 자녀의 학업에 매진합니다. 어린 시절 성폭행 피해를 당했던 어머니가 딸에게 속옷을 여러 벌 입힙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굶주리고 돈에 대해 수치심을 느꼈던 아버지가 자수성가해서 돈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직장에서 영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해 창피와 수모를 겪었거나 영어의 필요성을 절감한 부모가 엄마표 영어나 영어 사교육에 올인합니다. 대학 문턱에 가는 것이 소원이었던 부모가 자녀에게 4년제 대학을 고집합니다. ‘감정코칭’ 책에 나온 사례처럼 누나가 늦게 귀가하는 길에 성폭행당한 시점부터 가정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던 아버지가 딸에게 이른 귀가를 종용합니다. ‘당신이 옳다’ 책에 나온 어떤 아버지는 자신이 대학 때 수영을 못해 자신을 제외한 남학생들이 합심해 다른 학생을 구하자 자책합니다. 부모가 되자 아이에게 수영 강습을 강요합니다. 전세를 전전해 서러움을 겪은 부모가 자녀의 집에 대해 집착하게 됩니다.

또한 우리는 살면서 그 때 부모가 왜 그랬는지 의중을 더 받아들이게 됩니다. 엄마는 딱 아이가 커가는 시절만큼만 체감합니다. 엄마의 나이가 되어서야 엄마를 알게 되는 거죠. 노경실 작가의 <사는데 꼭 필요한 만큼의 힘>에서 이런 내용이 있어요. ‘십육 년 전 엄마는 저 두 아주머니와 비슷한 연세였다. 아, 그때 나는 왜 단 한 번도 엄마에게 묻지 않았을까? 얼마나 아픈지, 언제부터 그랬는지, 병원에 같이 가자는 말도, 혼자 아파하지 말라는 위로도 왜 하지 못했을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부모 나이가 되어봐야 몸으로 비슷한 걸 겪으며 이해할 수 있어요.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누군가에게 자주 풀어놓으면 어느 순간 딱 멈춰질 때가 있어요. 부모님의 부족했던 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어느새 나에게 사랑과 좋은 것을 주었던 추억이 떠오르거든요.

아니면 속내를 비치실 수 있는 자리를 자주 마련해도 좋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 활동을 함께 한다거나 여행을 가서 이야기할 여유를 만드는 거죠.

이 글을 읽은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부모는 가까이 하기엔 먼 당신일까요? 선택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12. 잃어버린 내면아이를 찾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