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아이를 만나고 싶다면, 가능한 생생하게!
저의 가장 어린 내면아이는 여덟 살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부부싸움을 크게 하시고 어머니가 친정집에 하루 다녀오셨던 날, 부엌에 계셨는데요. 엄마를 하루만에 만나는 거라 반갑지만 동생처럼 바로 달려가 안기지 않고 어정쩡하게 서있는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내면아이가 치유되기 전에는 그 장면이 머리에 스치기만 해도 눈물이 났습니다. 제 내면아이를 돌보기 시작하자 좀 울컥하다가 이제 이런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 말해도 아무렇지 않게 되었습니다.
책 <서늘한 신호> 초반에 저자가 자신의 어머니가 남편에게 총구를 겨누고 쏘는 과정까지 미세한 0.5센티미터의 중대한 움직임까지 읽어내어 상세하게 묘사해놓았습니다. 그 글을 읽는 내내 어떤 스릴러 영화보다 긴장하고 숨을 죽였어요. 이쯤이면 제가 구체적으로 묘사한 의도를 눈치채셨을 거라고 짐작해요.
우리는 상처 받은 내면아이 치유라는 말을 종종 들어봤습니다.
지금 처음 듣는 분이라고 해도 대체 그게 무슨 얘긴지, 그걸 어떻게 하라는 건지 선뜻 그림이 그려지지 않습니다. 마거릿 폴의 <내면아이 상처 치유하기> 책에서 나온 <내면아이란 우리 인격 중에서 가장 약하고 상처 받기 쉬운 부분으로 감정을 우선시하는 직감적인 본능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태어났을 때의 본래 모습이자, 핵심적인 자아, 타고난 인격인 셈>입니다.
마거릿 폴은 <내면적 유대감 형성을 통해 어린 시절에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바로 우리 안에 존재하는 내면아이와 성인자아 사이에 사랑스러운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 관계를 통해 우리는 혼자 있을 때나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 자기 자신을 잘 돌볼 수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내담자 분들은 상처가 난 그 나이에 머물러 있습니다.
가족이나 중요한 누군가와의 헤어짐, 사별, 각종 사건 사고를 겪은 시점이요.
제가 상담할 때는 상처받은 내면아이(Inner Child)'를 발견하고 그 아이가 두려워했던 것과 원했던 것을 자각하여 직접 말로 해보거나 심상 기법으로 그 상처와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상상합니다. 어떤 내담자는 일하는 엄마에게 학원에 대해 의논하고 싶어 몇 차례 시도로 연결된 통화 해서 네 맘대로 해! 하면서 일방적으로 끊는 장면에서 엄마와 자기 사이에 셔터가 내려지는 것 같았다고 묘사합니다.
다른 분은 가정폭력을 당한 어머니가 아버지의 물벼락에 온몸이 젖어 있어 떨고 있기에 드라이기로 말려주는 상황을 떠올립니다. 그때 어머니에 대한 진한 연민, 내가 가족을 지켜야겠다는 결의, 아버지의 폭력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를 함께 지켜봅니다. 어떤 이는 부부 싸움하는 부모를 말리기 위해 자신이 끼어들었다가 아버지께 맞고 어머니께 위로를 받으러 갔는데 혼자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자기 방으로 돌아와 자신 역시 홀로 눈물을 삼켜야 했습니다. 얼마나 복잡다단한 감정이 들었겠어요?
내담자가 5-6살쯤 동생과 처음 이모 댁에 가야 하는데 무섭지만 티 내지 않고 어떻게든 동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으로 끝까지 찾아갔던 장면에서도요. 그 당시엔 어리고 긴장을 많이 한 상태라 모든 것이 기억나진 않습니다.
그런 나를 한 발짝 떨어져 보면 바로 그 장면에서의 자기 공감과 함께 어른이 된 시선으로 객관화, 두 가지 작업을 모두 이룰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어떤 감정과 생각이 드는지 묻고 지금 이야기나 행동해주고 싶은 게 있다면 상상 속에서 그렇게 합니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그려졌다면, 이제는 그때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거나 어떻게 해주고 싶은지 상상해도 됩니다. 현재의 내가 옆에 가고 싶은지, 말없이 지켜주고 싶은지, 안아주고 싶은지 느껴봅니다.
예를 들어 "네 잘못이 아니야, 괜찮아, 애쓰지 않아도 돼." 속엣말이 나옵니다. 그대로 지켜본다거나 안아주거나 토닥여주거나 아니면 내담자 편들고 대신 싸워주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영화 <키드>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8살 때 자신의 모습을 보고 뭐 때문에 안면경련이 생겼는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을 안아주며 달랩니다. 자기가 듣고 싶었던 말을 직접 하고 받고 싶었던 위로를 해줍니다.
그 장면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미 다 컸지만, 성인의 몸이어도 내 안에는 정신적으로 여린 어린이가 들어있습니다. 내면아이와 대화하고 웃겨주고 엉덩이나 어깨를 토닥여주는 것들이 어른이어도 여전히 필요합니다.
정혜신 선생님 책 <당신이 옳다 126~127p.> '찬찬히 물으며 함께 그 뒤를 바짝 따르다'에 40대 남자 창민이라는 사례가 나옵니다. "투석을 받으러 가는 날 집을 나설 때부터 다시 돌아올 때까지 열네 살 창민이의 뒤를 밟듯 천천히 하루의 동선을 얘기해 주세요. 우선 창민이는 몇 시에 일어나죠?"라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열네 살 창민이 뒤를 따라가다 보니 어떤 느낌이 들어요?"라고 묻습니다. 이렇게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섬마을 집에서 육지에 있는 병원까지 투석을 받으러 가는 자신의 모습을 저자는 따라갑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많이 긴장했던 거 같아요. 혼자 모든 걸 다 처리했어야 하니까. 다시 떠올려보니 너무 외로웠던 것 같아요. 하며 마지막엔 자신을 진심으로 대견해했답니다.
기특함을 듬뿍 담은 눈으로 자신을 지켜보고 낯선 길 가는 동안 외로움, 지루함, 피곤함을 여러 감정과 생각을 하나하나 어루만져 줍니다. 그러면 열네 살에서 좀 더 성장한 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글을 읽는 분들도 고요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싶을 때 시도해보세요.
지금 나이가 25살이라면, 가장 최근의 힘들었던 경험을 떠올리면 됩니다. 인생의 최초 기억은 가장 어릴 때이지만 내면아이를 찾을 때는 역순으로 가봅니다.
내면아이 치유 작업을 하고 싶다면, 글쓰기, 그림 그리기, 점토나 찰흙으로 그 때의 상황이나 나를 만들어보기를 해도 좋습니다. 원래 공상을 잘 하시는 분들은 그냥 상상해도 잘 됩니다. 하지만 강하게 직면하긴 부담스럽다면 어떤 도구(글, 그림, 나의 경험과 비슷한 걸 재현해놓은 영화나 작품)가 있는 것이 안전한 편입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어떻게요?
가능한 생생하게요. 마치 <잃어버린 아이를 찾습니다.> 할 때의 아이처럼 그 때 입었던 옷, 그 날의 날씨, 누구와 어디에 어떻게 있었는지 결국 상황은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말이에요.
아마도...
처음엔 이게 뭐야? 어색하고 낯간지럽겠지만 내면아이가 두려워했던 것을 알고 듣고 뭘 원했는지 질문해 봅니다. 나도 모르게 아주 단순한 답이 나올 거예요. 어쩌면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릴지도 모르겠어요.
우리 안에 잃어버린 내면아이를 찾고 보살펴주자고요. 그러면 실제 내 가족과 자녀를 더 잘 살필 수 있답니다.
질문 1. 당신은 몇 살 때의 내면아이를 만나고 싶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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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2. 내면아이가 있는 상황과 장면을 한 번 묘사해볼까요? 사실과 달라고 괜찮습니다.
눈을 감고 가능한 생생하게 떠올려보고 가감 없이 한 번 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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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3. 자신의 내면아이를 보면 어떤 마음이 드나요? 기특하고 미안하고 안쓰럽고 장한 느낌, 무엇이든 여기에 한 번 털어놓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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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4. 과거 상황에서 내가 내면아이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나 행동이 있다면 그려봅니다.
또한 어떤 건 바뀌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장면이 있다면 각색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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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5. 현재의 내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만나는 상상을 해도 좋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용기 있는 대상이나, 지혜로운 대상, 따뜻하게 보살피는 대상 중 하나를 골라 연상해봅니다.(그 대상은 사람일 수도 신이나 영화나 드라마 속 캐릭터여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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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6. 마지막으로 글쓰기가 어렵다면, 그림을 그리거나 점토로 만들어 내면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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