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휴식과 스스로 감정, 충동 조절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요즘 아동, 청소년들의 유행은 뭘까요?
초등학생들은 친구끼리 만나서 혹은 카톡으로 욕 베틀을 하거나, 청소년들은 좀 더 과장해서 칼을 들고 자기 손목을 긋습니다. 자해 자국을 바코드라고 하죠. 관심 받고 사랑 받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바코드는 더 깊고 많아집니다.
뭐 때문에 그럴까요?
제가 보기엔 어린 시절의 감정, 욕구, 충동이라는 것들이 잘 담아지고 조절되어 본 경험이 부족해서라고 봅니다. 어머니의 공포감, 불안, 우울감이 깊은 경우 아이들의 감정을 돌볼 여유가 없기도 하고요. 부모가 그것을 알아주고 담아줄 경우 아이들이 더 자기 마음대로 하고, 더 흥분되고, 스스로 조절을 못할까봐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거든요. 복잡다단한 마음을 알아주기만 해도 자기가 뭘 원하는지, 또 어떻게 해야 그걸 얻을 수 있는지 잘 찾아갑니다.
제가 15년전쯤 상담했던 학생이 있었습니다.
정말 똘똘한 친구였어요. 내면에 부모에 대한 애정결핍이 심하고, 분노감이 많았지만 하는 말마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어요. 그만큼 자기와 가족, 세상을 보는 눈이 정확했답니다. 학교는 공장 같다. 자기들은 콘테이너 벨트 위에 똑같이 만들어지는 상품이라고 했었지요. 그 녀석의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제가 반박하기 어려웠습니다. 상담자인 내가 학교 제도를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녀석의 분노감만은 살살 달래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때 배웠던 이론이 수용전념치료(ACT)입니다. 아이의 욕구와 충동은 받아주되, 행동은 제한한다. 아이의 말을 계속 들었습니다. 학교에서 행동화하는 아이들은 그 의도가 관심을 끌거나 자기 감정을 조절하지 못 하기 때문입니다. 이 친구는 가정에서 느끼는 분노감을 처리하지 못 해 학교에서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 만나고 부부관계를 개선시키고자 노력했지만 솔직히 그건 잘 되진 않았습니다.
이 친구의 화만 다루고 들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느 날은 학교에서 이 친구가 상담자인 저처럼 하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학교 변기에 핸드폰을 빠뜨려서 실의에 빠진 친구에게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했답니다. 살면서 실수도 하는 거라고. 그 얘길 듣고 얼마나 웃음이 나오던지요.
또 다른 남자 중학생도 비슷한 사례였어요.
어머니가 키워주지 않으셨고 우울한 이모님이 키워주셨습니다. 이모님이 이 친구 아기 때 자꾸 안아 재우려 하고 실제로 같이 잠을 많이 잤다고 합니다. 이 친구는 상담실에 처음 와서도 자려고 했습니다. 애착을 맺는 방법이 함께 살을 맞대고 자는 거였으니까요. 상담만 시작하면 상담방에 수면제를 증기로 뿌려놓은 듯 졸리다고 말했어요. 자신이 이모와 애착을 맺던 똑같은 방식으로 저에게도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 라포를 맺으려고 했던 거예요. 발을 쓱 내밀고 제 다리라도 대고 잠을 청했습니다. 이 분야에 계신 분들이 뭐 그런 것도 상담이라고 하냐고 말하자면 변명할 길을 없습니다.
저는 이 친구가 필요한 초기 애착의 재경험이었기에 몇 분 동안은 허용했습니다. 제가 좀 꺼려지는 게 있긴 했지만요. 지금 생각하니 닿았던 신체 부위가 그나마 다리였기 때문에 괜찮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
그렇게 몇 세션을 10~20분 정도 잤습니다.
그러더니 보드게임을 하자고 합니다. 이 친구는 엄마에 대한 분노로 왔거든요. 자기가 필요할 때는 일하고 정작 독립해야 할 중학교 때는 직장을 쉬겠다고 했습니다. 유아기에 엄마의 애착이 맺어지지 않은 채로 초등학교 때부터 학업에 대한 압박만 주니 이 친구도 엄마에 대한 반감이 쌓여갔습니다.
학교에서 여자친구들과 관계가 상당히 좋지 않았습니다.
여자친구들에게 일방적으로 맞았던 때도 있었지요.
이 친구가 여자친구들에게 좋지 않은 얘기나 장난을 걸면 여자 친구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으니까요. 스무 번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스스로 그걸 깨더니 여자친구를 사귄 거예요.
그것도 엄마가 저에게 전화해서 하소연할 정도로요.
여자친구랑 몇 시간씩 통화하다가 어마어마한 통화료가 나왔다고요.
부작용이지만 기뻐하실 일이라고 말했답니다.
사실 전화로 얘길 듣는데 브라보! 라고 외치고 싶었어요.
여성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야 나중에 연애도 결혼도 할 거 아니에요! (결혼이 마냥 좋다는 건 아닙니다만.......)
두 가지 사례로 볼 때, 아이들의 사랑을 담을 만한 그릇이 비어 있다고 느끼면 관심 받기 위해 어떤 일이든지 합니다. 부모-자녀 관계에서 사랑의 결핍, 애착을 박탈당했다고 느끼는 경험은 내면이 텅 비어 있는 근원적인 공허함, 허무감을 줍니다. 살아갈 희망과 사랑할 자신이 없는 거지요.
부모에게 자신의 생각, 느낌이 받아질 것을 기대했다가 좌절하는 경험이 반복되면 어느새 자포자기, 체념의 상태가 되면서 조금씩 부모에 대한 반항심, 분노가 생깁니다. 내가 그렇게 날 봐달라고 속으로 외쳤는데, 내가 그렇게 관심 가져달라고 애썼는데... 하면서 실망감과 불신으로 넘실넘실 차오릅니다.
부모에 대한 불만은 학교 체제, 선생님에 대한 불신으로 연결되어 권위에 대한 불화, 수동공격적인 태도들로 나타납니다. 두 아이들이 가정에서 느꼈던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들이 학교생활에서도 이어지면서 학교에서도 어려움을 겪거든요. 첫번째 친구는 특히 여자 선생님에게 툭 하면 딴지를 걸어 혼이 나거나 선생님의 미움을 샀고요. 두번째 친구는 여자 친구들을 놀리거나 수동공격하여 오히려 여자 친구들에게 단체로 괴롭힘과 폭력을 당해 상담실에 왔거든요. 부모-자녀와의 관계 방식은 학교 안에서도 반복입니다.
우선, 부모가 먼저 자신의 감정을 잘 조율하고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자녀의 심신을 돌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것들 수용할 만한 그릇을 크게, 울타리도 넓게 만들어놓으면 아이도 그 안에서 마음껏, 자유롭게 이 감정, 저 감정, 이 생각, 저 생각을 풀어놓을 수 있을 거예요.
실제로 많은 청소년들은 피곤에 쩔어, 심신이 지쳐서 상담실에 옵니다.
여기서 조금만 자고 가도 되냐고 묻습니다. 5분, 10분만 자도 개운해 합니다. 어머니들이 아신다면 고가의 상담비에 펄쩍 뛸 일이지만, 상담실 안에서 안전하고 평안한 분위기에서의 쉼은 정말 필요합니다. 내담자가 먼저 이야기 꺼냈을 때, 그리고 15분 이상 넘기지 않습니다. 그 이상 시간을 자게 되면, 잠에서 깨기 어렵고 치료로 전환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 친구들에게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 시간이 없는 겁니다.
안타깝습니다. 심신이 편안한 상태에서 집중이 제일 잘 되고, 긍정적이고 유쾌한 기분에서 학습이 제일 잘 됩니다. 그러니 공부를 놀이처럼, 놀이를 공부처럼 하는 것이 유아기, 초등기에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저희 아이와 ‘잔소리 없는 날’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을 읽더니 하루를 정하자고 해서 실험해 보았습니다. 정말 어렵더라고요. 평소에도 아이에게 공간과 시간을 허용하는 것, 자기가 계획과 목표를 정해서 해보는 것, 이런 것들이 엄마의 기다림, 믿음, 인내로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으로 긴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