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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서재 Mar 16. 2019

눈물을 참을 수 없던 날

상담하면서 이렇게 울었던 건 처음

* 지선님은 가명입니다.


눈물을 참을 수 없었던 날 


지선님은 갑작스레 친정어머니 상을 치르고 이주 만에 오셨습니다. 

지선님은 친정어머니께 오랜 기간 감정적인 학대와 폭력을 당해왔습니다.

친정어머니에 대한 사별 감정이 얼마나 복잡하실지 저는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전 상담에서 친정어머니가 병환 중이거나 위독하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어요. 저는 아직 가족의 사별 경험이 없었고 예상치 못한 일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막막함에 질문할 수도 없었고요. 지선님 말씀을 잘 들어야지 싶었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듣다 보니 울컥 차오르는 눈물에 당혹스러웠습니다.

상담하면서 그렇게 눈물을 참기가 힘든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잠깐 방심한 사이 눈물이 한 방울 흘렀습니다. 저는 눈물에 대한 통제를 놓아 버렸습니다. 저희는 그저 울고 또 울었지요. 우리 둘만 상담실에서 상가의 구석으로 공간 이동한 듯했습니다. 


지선님의 한 섞인 통곡이 한차례 폭풍처럼 지나가고요. 저 또한 많은 감정들이 뒤섞여 하나로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갑작스러운 사별에 대한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이었어요.

어머니 돌아가실 때 말씀하셨어요. “엄마, 나한테 왜 그랬어. 엄마가 나한테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엄마 사과를 직접 못 들어서 나는 억울해.” 그 때 의식 없는 친정어머니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습니다.


사람이 사망할 때는 청각 반응이 제일 늦게 마지막으로 사라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사람이 죽을 때 가족, 친구들의 목소리와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주지요. 저는 지선님이 하신 말씀에 잘 했다, 못 했다 판단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그 사람을 대신해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이죠. 


물론 친정어머니도 지선님만큼 학대당하며 컸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학대도 대물림되니까요. 하지만 상담에 오신 건 지선님이기 때문에 친정어머니를 이해하기 이전에 지선님의 상처를 치유하는 게 우선이었어요.


이십대 초반의 일을 말씀해주셨어요.

지선님이 면접을 보러 가는 어느 날이었어요. 지선님이 기억하는 정당한 혹은 짐작 가는 이유도 없지만, 그 날도 어머니께 얼굴을 맞아 멍이 든 채로 면접에 갔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최성애 조벽 교수의 ‘청소년 감정코칭’에서 초감정의 예시로 나온 사례가 생각났어요. 한 아버지께서 늦은 밤 귀가한 딸에게 폭언과 폭행을 가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누나가 딸의 나이 정도에 한밤중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성폭행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례처럼 어머니의 핵심적인 상처가 건드려져서 폭력적인 행동이 나오지 않았을까 짐작해봅니다.


친정어머니께서도 당신의 부모에게 폭력과 학대를 당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물림은 그만큼 끈질깁니다. 나는 부모님처럼 키우지 않을 거라고 굳게 다짐하더라도 무의식은 힘이 셉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절감합니다. 내가 사랑을 받은 만큼 줄 수 있다는 것을요. 내가 사랑을 받았던 방식 그대로 배우자와 자녀에게 준다는 것을요. 내가 상처를 겪었던 나이와 방식이 유사하며, 그 때 느낄만한 핵심감정도 소름 끼칠 만큼 비슷하다는 거예요. 부부상담을 받았던 남편은 자신이 아내에게 이혼하자고 이야기했을 때가 자신의 부모님이 이혼했던 나이와 같은 나이였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 양육을 맡겼지만 아이에게는 어머니에게 받았던 눈빛, 냄새, 스킨십이 남아 있습니다. 친어머니의 성정과 비슷한 여자를 골라서 결혼하기로 선택합니다. 이마고 부부치료이론에 나오는 것처럼 부모의 부부관계를 자신의 부부에서 재현하며 갈등이 생기자 이혼을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자녀가 어머니께 버림당할 것 같은 공포감, 외로움을 대물림으로 겪게 합니다. 다행히 이혼결정을 하지 않았지만, 부인은 남편의 이혼요구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런 경우 부인이 전부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남편의 어린 시절 상처가 원인일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게 좋습니다. 


지선님 친정어머니도 독립하려는 시기에 어떤 상처가 건드려져 폭발적인 행동으로 이어졌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친정어머니 성정이 육아에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어떤 어머니입니까?>에서 나온 권력형 어머니와 가까웠습니다. 사소한 행동의 통제, 폭력의 동원, 사생활 영역의 침범, 칭찬의 부재가 특징입니다. 어머니의 행동은 여기에 거의 해당되었습니다. 이런 어머니의 자녀들은 자신감 상실, 자기주장이 부족했습니다.


권력형 외에 희생형, 자기도취형, 애정결핍형 어머니들도 자녀를 건강하게 키우는 것이 힘들죠. 

우리나라 어머니들은 아이를 자기에게 포함시키는 행동을 하기 때문에 친정어머니의 언행은 한국적인 모성과 다르게 느껴집니다. 한 연구결과에서 자녀를 생각할 때, 외국의 어머니들은 타인을 떠올릴 때 쓰는 뇌 부분이 활성화됩니다. 반면 우리나라 어머니들의 자기를 떠올릴 때 쓰는 뇌 부분이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김은희 선생님의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에 나온 것처럼 우리나라 엄마들은 포함행동을 하기 때문에 아이와 분리가 어렵습니다. 제 짐작으로는 우리나라에서는 희생형 어머니가 압도적으로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담센터에 오는 내담자들의 어머니들은 대부분 네 가지 유형 중 하나에 해당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만큼 여성들이 성에 대해서도 상처를 훨씬 많이 갖고 있고 자라면서 불평등에 존중, 배려를 받고 자라지 못했기에 많다고 느껴집니다. 


내담자 입장에서는 내가 왜 이런 어머니에게 태어났을까? 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합니다.

주위 어머니들과 얼마나 비교가 되겠어요? 심지어 차라리 엄마가 없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님이 계시지 않았던 분들이 들으시면 분노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그만큼 이런 유형의 어머니 밑에서 생존하는 것이 괴롭고 어려웠다는 겁니다.


신체적인 생명을 유지할 수 있지만 심리적으로 착취당하며 살아가는 건 자기 존재를 부정당합니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아 공허한 느낌이 듭니다. 아무리 먹어도 배고픈 심리적 허기 상태가 됩니다. 그러니 저는 감히 말씀드려요.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라고요.  

살아 있어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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