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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서재 Jun 05. 2019

unwanted baby - 환영받지 못한 아이

과거가 아닌 현재로 살기

상담을 하면 내담자들 중 출산 자체를 환영받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다.
어머니 뱃속에 정착하자마자 어머니가 아기를 떼어놓고 싶어 하는 경우 말이다.
남편과의 관계가 좋지 않거나 경제적 형편이 어렵거나 아기의 모체인 어머니가 아플 때가 해당된다.
안타깝지만 어떤 이유든 어머니의 심리적인 거부는 어떤 흔적이라도 남기고 만다.
나는 부모님께 감사하게도 환영받는 아기였다.
어머니께서 내가 태어나기 전 유산을 경험하셨기에 성별과 상관없이 탄생을 고대하셨다.

이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두 가지다.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이 엄마의 삶도 불행하기 때문이다. 그 이후 태어난 아기는 평생에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태어난 생명에 의미가 없다는 얘기가 전혀 아니다.
우주는 참 신비로워 각 생명의 소중함, 태어난 데에는 반드시 이유와 목적을 갖는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원치 않는 아기를 지우자는 얘기가 아니다.
원치 않는 아기라도 낳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임신 기간 동안 마음공부하며 다스리는 걸 하자는 얘기를 하고 싶다.
마치 싹이 트면서도 짙은 그림자로 인해 잘 자라지 못하는 게 눈에 보여 안타까움에 글을 쓰게 되었다.

김은성 작가의 웹툰 내 어머니 이야기에 나온 이야기다.
작가는 육 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는데 어머니께서 작가 임신 2개월쯤 가정형편이 어렵고 전쟁 후 줄줄이 다섯 아이를 돌보는 데도 힘겨워 병원 의사에게 낙태 수술을 부탁하셨다.
의사가 2개월 된 태아도 생명이라며 거절하셨단다.
그래서 태어난 작가, 현재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치매 증상이 있는 어머니를 돌보시는 것 같다.

어느 집단교육에서 생각나는 걸 이야기해보자 했더니 한 여성이 구전된 자신의 첫 기억을 이야기했다.
태어나자마자 딸이라고 씻기지도 않고 죽으라고 배냇저고리에 쌓여 방구석에 방치해놓았다는 이야기 말이다.
그 여성은 중성적이서 마치 남성처럼 외모를 하고 남성의 역할로 살고 있는 듯했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 에서는 케빈의 엄마 에바(틸타 스윈튼)가 자유분방한 여행가였는데 어느 날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에 명확히 나오는 건 아니지만 그녀는 아기를 가질 준비가 되지 않았었다.
케빈은 엄마가 자신을 진정 사랑하는지 끊임없이 시험한다.
버림받지 않기 위해 애쓰다 결국 자신을 버리지 못하게 행동한다.
이 영화는 끔찍할 정도로 어머니께 집착한다. 이런 사례는 일반적이지 않다.

보통 사람들은 부모님께 인정받기 위해 자기 삶을 통째로 바치는 것처럼 희생하기도 한다.
어려서부터 자기 앞가림을 알아서 하며, 혼자 크는 것처럼 순하고 착하게 살아간다.
마치 태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부모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남에게 폐 끼치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것처럼 애쓴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무의식적으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
자기가 없는 것처럼 부모의 딸, 아들 노릇 역할에 치중하기에 외로움과 공허감이 뿌리 깊게 느껴진다.

수정란이 엄마의 자궁 외벽에 착상했다.
약간의 피가 날 정도로 파묻힌다.
깊이 묻힐수록 안전하다.
엄마의 마음이 느껴진다.
나는 널 원하지 않아.
이제 막 심어진 씨앗은 좌절감이 든다.
환영받지 못한 아이는 전 생애에 걸쳐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새싹이 자라기도 전에 그늘진 땅에 심어진 모양새다.
이 그림자는 나무가 자랄수록 햇볕으로, 긍정의 빛으로 점점 옅어진다.
이제 그림자가 뭔지 알아볼 시간이다.

변상규 교수 <자아상의 치유>에 나오는 구절이 있다. (인용 구절 생략)
환영받지 못한 아이는 왠지 자신이 부모에게 짐처럼 느껴진다. 누가 된다고 생각한다. 신세 졌거나 폐 끼친다고 여긴다. 빚을 갚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으려고 한다.
실제로 내 내담자 중에는 스무 살까지만 부모 도움을 받고 그 이후에는 학비, 용돈을 감당했다. 어떤 사람은 돈이 갑자기 필요한데도 '가족'에게 그런 부탁하고 싶지 않다며 전혀 내색하지 않기도 했다. 어떤 청소년은 부모를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 자살 시도 전에 자기가 죽고 싶다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한 여성 내담자는 위의 언니 둘에 셋째 딸로 태어났는데 자신의 임신한 셋째를 지우고 급성불안과 죄책감에 상담센터에 내방했다.

이런 자녀들은 어린 시절 순하다, 착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태중에서부터 있는 듯 없는 듯 입덧 한번 없이 태어났을 수 있다. 태어나서도 가족 안에서 투명하게 살기도 한다. 효녀, 효자로 성장할 수 있다. 물론 모두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무언가 하면서 어떤 존재감을 느낀다. 태어나면서부터 어떤 조건이 붙어있는 것처럼. 부모가 아기를 낳음으로써 기대하는 바가 삶의 전제가 된다. 있는 그대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기대하기엔 죄책감이 든다. 그렇게 해서 한 가정의 일꾼, 귀염둥이, 해결사, 등 역할로 굳어진다. 이미 나는 태어난 원죄가 있다. 그러니 면제를 받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조건이 생긴다. 그래서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원죄가 있다는 종교적인 신념을 다른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쉽게 받아들인다. 부모의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원가족의 경제적인 뒷받침을 하거나 집안의 기둥처럼 희생하는 경우도 있다.

존재에 대한 뿌리 깊은 불안이 있다.
무의식적으로 삶과 생명에 대한 회의감이 들 수 있다.
시작부터 삶의 바탕색이 어두운 것이다.
이런 불안은 청소년기에 다시 의식으로 올라오게 된다.
깊은 무의식 속에 있다 자신에 대한 의문이 든다. '나는 누구지?', '나는 왜 살지?', '죽으면 어떻게 되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사람도 있었다.

이는 어머니(모체)의 갈등 아기를 낳을까, 말까에서부터 시작한다.
사느냐 죽느냐가 자신의 결정이 아닌 어머니의 선택에 의해 시작되는 수동태의 입장으로 말이다.
청소년기의 알 수 없는 우울감으로 표현된다. 요즘 청소년들 중에 이유를 모르는 무기력감, 무망감으로 자해나 자살 시도를 하는 경우가 있다. 자기에 대한 무가치감, 나와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이 깔려 있다.
내 존재 이유는 부모가 나를 낳기로 결정한 이유와 연결된다.

그래서 어쩌라고? So what? 하는 물음이 자연스레 생긴다.
나는 생존하기 위해 부모가 원하는 것을 선택했을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좋겠다.
내가 원하는 것과 부모가 원하는 것이 혼재되어 혼란스럽다.
내가 원하는 것을 헷갈려할 수 있다. 원하는 게 뭐냐고 물으면 멍해지거나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상담센터에서 생애 처음으로 그런 질문을 받은 사람도 있었다.
나의 욕구, 필요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나를 찾는 시작이다.
'나 여기 있어.'라는 내가 나를 볼 수 있으면 된다.
내 존재가 여기 있는데 없는 것처럼 지냈기에 내가 원하는 것부터.
마치 아기 때 내 초음파 사진을 들여다보듯, 내 존재에 대한 확실한 감각이 필요하다.
나는 이렇게 건강하고 소중한 생명체라는 것
거울이나 어린 시절의 사진을 봐도 좋다. 목욕할 때 주의를 기울여 낸 몸을 만져보는 것도 좋다.
아, 내가 이렇게 있네! 오감각을 총동원해서.
20대 내담자가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내가 이렇게 다 컸지만 엄마가 나 아기 때처럼 온몸을 다 껴안아주면 좋겠어요.
온몸으로 자기 존재에 대한 확인을 받고 싶은 것이다.

부모, 가족 사이의 스킨십이나 마사지도 좋다.
말없이 고요하게 안아주는 것, 편안하게 느끼는 강도로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의 안김은 내 존재감을 느끼는 데 중요하다. 내가 나를 담아주는 것.
요가, 명상, 호흡 자각이 도움이 된다.
존재한다는 것은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내가 혹시 원치 않는 아기였어? 하더라도 좌절할 게 없다.
그건 바꿀 수 없는 과거다.
예전에는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정신과 상담 중에 엄마한테 가서 물어보라고 한 적도 있었단다.
태어나기 전에 낳기 싫었는지 엄마에게 직접.
이런 잔인한 경우가...
어떤 이는 모르고 지나가도 잘 사는데 상처가 된 경우도 있었다.

아는 순간부터 내가 '존재에 대한 감각'을 기르면 된다.
내가 나를 잘 기르는 것
엄마 뱃속에서 다시 시작할 수는 없지만
내가 나를 인식하고 요구를 들어주는 것부터 시작이다.

먼저 나를 본다.
시각적으로 보는 것도 있지만 내가 나에 대한 인식
아,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나는 건강하게 존재한다는 자각이다.
이게 잘되면 스스로에 대해 사고, 감정, 동기 등으로 여러 가지 통합적인 이해가 될 거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나만 이렇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라며.
원치 않는 아기를 임신한 여성이라면,
낳기로 결정했다면,
내 아기는 소중하며 내가 안전하게 지킬 거라는 마음가짐을 단단히 하는 게 좋다.
아기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엄마가 보고 듣고 먹고 만지는 감각 경험은 아기에게도 똑같이 경험된다.
심리상태도 공유된다.
그러므로 아기를 가졌다면,
옛말처럼 태교하면 된다.
엄마 마음 편안하게 심신 건강에 신경 쓰고
좋은 걸 먹고 좋은 걸 보고 좋은 걸 듣고 좋은 걸 경험하면 된다.
아기와 감정도 나눈다.
임신한 여성이 가능한 긍정적이고 밝은 감정을 가질 수 있도록 가족들이 주위 사람들이 배려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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