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투명서재 Jun 07. 2019

영화 기생충 속 반지하가 낯익다. 스포 많음

We respect money? 리스펙트 봉준호!!

박기복 작가님의 기생충 리뷰 글을 읽었다.
개인적인 경험과 함께 핵심을 짚으신 글이 인상적이었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내가 반지하 방에 살았던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
영화를 보고도 기억을 못 하고 있었다.
박 작가님의 글을 읽고서야 내가 반지하 방에서 살았던 시간이 새삼 떠올랐다.
나는 그 반지하를 무의식의 지하에 가두어놓고 싶었나 보다.

20대 초반 대학원에 합격하고 상경해야 했다.
친구가 서울에서 직장을 다녀야 했고 나도 학교 때문에 서울에 있어야 하니까
같이 집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방을 구하러 다녔다.
서강대와 홍대 근처 집들을 봤는데 우리가 갖고 있는 돈은 없었다.
부모님께 손을 벌려야 하는 상황에서 각각 500만원?씩으로 전세금을 마련했다.
그러자 선택권은 남가좌동 모래내 시장에 있는 반지하방밖에 없었다.
그 방을 보고 나와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우리가 부모님도 넉넉지 않은 형편에 가능한 적은 금액으로 계약해야 하지 않겠냐
나는 여기가 제일 싼 것 같은데 결정하자고.

그렇게 친구와 둘이 반지하 방에서 살았다.
밤에 누워 있으면 또각또각 퇴근하는 구두 소리, 아침이면 골목길의 빗자루질 소리까지 생생히 다 들렸던 그곳
비가 많이 오면 창문으로 비가 흘러들어올까 봐 조마조마하게 바라보던 곳
현관문부터 인사하듯 고개 숙이고 들어와 신발을 놓고 계단 내려가듯 발을 내디뎠던 곳
바퀴벌레가 있어 밤에 자다 불을 켜면 빛보다 빠르게 어두운 곳으로 숨던 녀석들
영화 기생충보다 거실 장면을 카메라로 위에서 잡았는데
소파에 박사장 내외가 누워있고 테이블 밑에 기택네 가족이 있을 때
소리 없는 움직임이 그들이 술 마시며 말했던 바퀴벌레처럼 느껴졌다.
주인이 깨면 안 되게 조심조심 숨어 있다가 자는 걸 틈타
어둠 속에서 벌레처럼 기어 나와야 하는 상황

기택 부인의 말이 씨가 되어 그들이 그림자처럼 슬며시 빠져나오는 상황이
참 씁쓸했다.
사람을 벌레에 비유해 술병을 깬 기태가
장난한 것처럼 웃지만 진심이 묻어났다고 생각한다.
그 속은 그저 부인하고 싶은 마음뿐만.
본인도 가장으로서 자존심이 상하고 그런 상황들이 편치 않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 물론 그것이 가족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속이고 있었다는 것
그러다 박사장의 냄새에 불쾌해하는 태도에
그 순간만큼은 자신을 속일 수가 없었다.
작렬하는 태양빛 아래 자신에게서 지울 수 없는 그 냄새에 대해
역겨워하고 경멸하는 태도를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열심히 살고자 애썼던 지난 세월들이
냄새 하나로 대변되는 것 같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영화 속에서 약자들의 선함, 죄책감이 마음에 와 닿았다.
그들도 돈만 있었다면 끝까지 착했을 것이다.
기우가 술에 취해 자신의 집 앞에서 꼭 일을 벌이고 가는 남자에게
갈 때 돌을 들고나가려 하자 아빠가 돌 대신 물통을 들려준다.
소파에서 술 마실 때 아빠인지, 기우인지 먼저 젊은 운전기사를 걱정한다.
새로 일자리를 구했겠지? 한다.
그러자 기정이 구했겠지 하면서 그보다 자기를 걱정하라는 듯 말한다.
기정도 심란하여 술을 더 마신다.

가정부였던 문광은 남편에게 하는 말이
언니가 착한데 나를...이었나 였다.
사실은 착한데... 본인들이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그다음 날 박사장 아들의 생일 아침
기정은 가정부 부부에게 가져갈 음식을 챙기며
잘 이야기해보겠다고 한다.
감독이 말하는 약자들끼리의 치열한 생존 다툼에서
그들의 말과 행동 속에는 싸우고 싶지 않은 마음이 느껴졌다.
진심으로 이렇게까지 서로 할퀴고 상처 주고 싶지 않은
그들도 자신들과 비슷하기에.

그들의 전쟁에서 서로 통한 한 마디
대만 카스텔라 가게 망한 이야기
그것이 그들을 묶게 했다고 본다.
기택이 그에게 동일시한 것은
나도 사채를 썼다면 그처럼 거기에 있어야 했을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실제로 그가 나간 자리에 그가 또 기약 없는 세월 있게 되었다.
선택은 자명했다.
그가 있어야 할 곳은 단 하나로 명확해졌다.

다시 반지하 방 이야기로....
낮에도 햇볕이 들지 않는 반지하 방에서 있다 보면
절로 우울해지는데
지면이 창으로 올라온 만큼 내 자존감은 딱 그만큼 떨어졌다.
그림검사에서 집은 자기 자신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집이 자신감에 주는 영향은 상당하다.
오래전 상담했던 내 내담자도 전세를 전전하다 몇 년 전 아파트를 매매해서 이사했는데
그러고 나니 자존감이 자연스레 올라간 것 같다고 한다.
집은 어쩔 수 없이 생존 터전이자 자신과 밀접한 공간이기에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의 존재감을 낮추기도 높이기도 한다.
그때의 난 누군가를 집으로 초대할 수 없었고 어디에 산다고 말하기도 부끄러웠다.
술 마시면 누군가는 소리를 지르고
밤에 골목길을 다니면 전경? 같은 사람들이 돌아가며 순찰을 도는
우범지역이었던 곳

그곳이 뉴타운으로 재개발되면서 철거되는 집들이 하나둘씩 늘어갔는데
내가 이사 나오기 직전에는 정말 버려진 집처럼 창문이 깨져있거나
사람들이 살지 않는 집들이 생겼다.
하나 둘 그러니 순식간이었다.
나도 친구가 결혼해 나가니까 혼자 쓸쓸해서 집을 옮기고 싶었다.
다행히 신길동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에 원룸을 구해 이사를 가게 되었다.
엘리베이터 키가 있어서 그 키가 있는 사람만 2층 이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낡은 건물이었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면서 거처를 옮겼다.

현재 남가좌동은 가재울 재정비 촉진지구로 재개발이 한창이고
그 근처에 브랜드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다.
돈의 힘으로 가난한 동네가 마치 없었던 것처럼 다 허물고
그 자리에 삐까뻔쩍한 아파트가 산처럼 세워졌다.
가난을 없는 것처럼 하는데 우리나라만큼 선수가 있을까?
돈 없는 게 죄인양, 올림픽 때는 판자촌을 없애버리고
달동네도 부숴버린다.

부자들의 의식에 자꾸 가난이 비치면 불편해진다.
그들의 눈에 보이면 안 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그렇게 보일만한 게 있으면 다 없앤다.
어느 자치구가 거리를 깨끗하게 한다고 쓰레기통 없애는 꼴이다.

빈부격차는 점점 더 심해지는데
부자인 사람들은 SNS 등으로 낱낱이 뭘 마시고 입고 보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없는 사람들은 마치 정말 없는 듯 지하로 점점 사라진다.
처음부터 그들이 없었던 것처럼 존재감이 없어지는 것이다.
기택이 자신의 존재가 마치 없는 것처럼
아들 생일을 기쁘게 해주는 기쁨조 하나의 수단으로 있다
특유의 '냄새'로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자
걷잡을 수 없는 모멸과 분노 등에 사로잡히지 않았을까.

기택과 박사장이 미제 텐트 주변에 인디언 분장을 하고 있었다는 것도 상징적이다.
미제라는 말 한마디에 빵 터졌다.

가정부 남편과 맞서 싸우는 것이 기택 부인
피자나라 아가씨와 담판 짓는 것도 기택 부인
남편을 위해 헌신하는 가정부도 여성
가난한 가정에서 가장의 권위와 힘은 조금씩 줄어들어
여성들이 가정의 기둥이 되어 여성성으로 가족들을 먹여 살린다.
문광이 남편에게 무언가 먹이는 장면도 충격적

봉 감독이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게 만드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결과는 대성공!
어제 자려다 자꾸 한 장면이 떠올라 잠이 늦게 들었다.
자기 전 명상하는데도;;
오늘도 일찍 자긴 글렀다.

작가의 이전글 진이, 지니-정유정 장편소설(2019)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