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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 Apr 23. 2020

<면역에 관하여>에 관하여

저널리스트로서, 어머니로서 바라본 면역에 관한 이야기

 이 책에 대해 처음 들은 건 3-4년 전이었다. 그 후로 믿을만한 이들에게서 아주 좋은 책이란 평을 여러 번 듣고 내 마음 속 “언젠간 읽으리” 리스트에 올려두었지만 그 리스트에 있는 많은 책들이 그랬듯이 이 책도 그 리스트에 오랫동안 머물게 되었다. 그러다 올해 2월,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면역, 바이러스, 백신같은 키워드들을 연일 접하다보니 이 책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세상에, 이 책은 그런 책이 아니었잖아!”하며 첫 장부터 빨려 들어갔다.



 책은 아킬레우스 신화로 시작한다. 아킬레우스의 어머니는 아들을 불사의 몸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당연하게도 그 모든 노력은 성공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율라비스는 이렇게 썼다.


 “아들이 태어나자 나는 내가 지닌 힘과 내가 지닌 무력함을   예전보다  과장해서 느끼게 되었다.”


나는  문장에 밑줄을 쳤다. 아이를 낳아 품에 안자마자 내가 거의 본능적으로 느꼈던 어떤 감정,  아이를 지켜야겠다는 아니 럴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상한 만능감, 동시에 도저히 그럴 수는 없을 것이라는 무기력감이기도 했던  감정들이 되살아났다.


 무엇보다 나는  저자의  사려깊음이 좋다. 결코 어머니들을 비난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느껴질정도로 율라 비스는 접종반대나 수두파티처럼 집단면역과 공중보건 체계에 흠집을 내는 이들에 대해 얘기할 때조차 주의를 기울인다. 그들을 바보라고 손가락질하는 대신에  그들이 그렇게 되었는가,  그들이 냉소주의와 불신에 빠졌는가에 대해 톺아본다. (하퍼스와의 인터뷰에서 율라비스는 직접적으로 털어놓기도 한다. https://starlakim.wordpress.com/2017/02/07/eula-biss-on-on-immunity/)

 

 율라 비스는 아이와 관련된 문제에 있어 대체의학이나 접종반대론자들의 의견에 이끌리기도 했던 일화들을 털어놓기도 한다. 아이의 수술실에서 마취의사와 설전을 벌이는 장면(율라비스는 아이가 수술실에서 마취할 때 옆에 있고 싶어했는데 그를 두고 마취과 의사가 그래봤자 애는 기억도 못할 거라며 빈정대자 내가 기억하겠죠, 라고 대응한다), 아이가 쓰던 매트에서 어떤 화학물질이 발견됐다는 걸 알게된 날 패닉에 빠지던 경험 등은 즉각적으로 나와 내 주위의 어머니들의 어떤 날들을 떠올리게 했다. 아이를 둘러싼 거의 모든 것이 위협으로 느껴져 한밤 중에 자는 아이 옆에 누워 검색의 검색을 거듭하던 날들. 기저귀에서 다이옥신이, 분유에서 세슘이 나왔다고 하던 날 이리저리 바빴던 기억들. 아이가 해열제를 먹고도 열이 내리지 않을 땐 또 얼마나 두려웠던가. 백신을 맞출 때 내가 맞을 때와는 달리 왜 그렇게 부작용이나 잘못될 가능성들에 대해 천착했던가.


 어떤 어머니들이 하는 경우에 유난이며  어머니들이 멍청하고 비이성적이며 과학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일축될  있을 그런 일들. 하지만 그녀는  책에 그런 것들까지 모두 포함시켰다. 저널리스트이기도 하고 이 책을 준비하며 수많은 과학적 데이터와 논문, 통계들을 살펴봤음에도 어머니라는 자신의 정체성 또한 귀하게 여기는 작가, 그리고 그런 경험을 기꺼이 풀어놓는 이에게 마음을 내주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책을 처음 들어봤던   전이 아니라 어머니-되기 경험 이후에 읽게 되서 다행이라고 느꼈을 정도다.


 면역에 관하여(On Immunity). 어쩌면  제목이 모든  말해주는지도 모르겠다.  면역에 대하여가 아니라 관하여일까? 궁금했었는데  책을 읽을수록 정확한 언어였단 생각이 든다.  책은 면역에 대해 말하는 과학서가 아니다. 물론 면역과 백신의 역사, 그리고 그와 관련된 주요 논쟁들에 대해서 다루지만 그건  작가가  책을 쓰는 재료일  주제는 아니다. 그보다  책은 면역과 관계를 맺은 거의 모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것들이 뭐냐면 그야말로 거의 모든 것들이다. 우리의 ,    편을 따질  없는 바이러스, 공중보건,  몸의 타자성을 일깨워주는 미생물이라는 존재, 자연은 선이라는 환상, 건강이라는 위치재, 때로는 자본주의, 인종주의 그리고 가부장주의까지.


 팟캐스트 혼밥생활자의 책장에서 책 이야기를 한 것이 2주 정도 됐는데 그 때부터도 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민자의 나라였던 미국은 이민을 당분간 막는다고 하고 스웨덴의 집단면역은 성공이냐 실패냐를 두고 여전히 논란이다. (그런데 이게 과연 성공/실패로 말할 수 있는 문제일까? 코로나 바이러스는 연령별로 치사율이 굉장히 큰 차이를 보이는데 그런 취약계층의 죽음에 대해 취하는 태도들을 보면 어딘지 공리주의가 떠오른다. 어쨌든 스웨덴은 집단면역 실험제에서 지금은 느슨한 봉쇄체제로 변경했다.)


 요즘은 코로나19 보다도  코로나19 시대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선진국이라는 개념이 거의 사멸하는  지켜보는 느낌이기도 하고 유럽의 사례들을 볼수록, 세계시민임을 자처하던 국가들이 사실은 세계시민으로서의 감각이 굉장히 떨어지고 그들이 말했던 세계가 아주 좁은 개념이었다는  매일매일 확인하는 기분이다. 율라비스의 말대로 우리의 몸이 타자와 연결되어 있다면  과연  타자어디까지로  것인가에 관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해야  때가 됐다는 인상이다. 많은 인문학자, 사회학자들이 천착해온 ‘타자성’이라는 주제가 바이러스를 통해 이야기 되고 있다는 것은 흥미롭기도 하고 의미심장하기도 하다.

 

 궁금한 게 있다면 이 책이 지금 미국에서는 어떻게 읽힐까 하는 점이다. (My body my choice와 트럼프2020이 나란히 써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 중단요구 시위대의 사진을 보는 심경이란.) 면역이라는 공동의 정원을 가꾸어 가자는, 우리 몸의 타자성과 공공성에 대해 생각하자는 율라 비스의 말이, 여전히 어떤 힘을 가질 수 있을까?



아킬레우스 신화로 시작한 책은 나르키소스 신화로 끝이 난다. 자신의 아름다움에 취해 연못에 빠진 나르키소스. 율라비스는  신화에 대해 이렇게 해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자기에게만 과도하게 몰두하여 남들의 아름다움을 음미할  모를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경고하는 이야기”.

 그러니까 아마도 우리는 반대의 경우는 잘 잊고 사는 것 같지만 타인이 나에게 환경이듯이, 나 역시 타인의 환경이라는 것이다. 그 말이 말 그대로, 온몸으로 느껴지는 시기다.



[혼밥생활자의 책장] 149화 면역에 관하여

https://podcasts.apple.com/kr/podcast/%ED%98%BC%EB%B0%A5%EC%83%9D%ED%99%9C%EC%9E%90%EC%9D%98-%EC%B1%85%EC%9E%A5/id1084649528?l=en&i=1000470836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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