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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 Jun 21. 2020

어린이를 위한 동의

 '나의 몸은 나의 것'이라는 당연한 말  

 작년에 책을 출간한 후 책 내용 일부를 카드뉴스로 제작해 활용해주셨던 인연으로 올해 젠더온의 모니터링 작업을 하게 됐다. 젠더온(http://genderon.kigepe.or.kr/)은 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성평등 콘텐츠 플랫폼인데 강의안에서부터 동영상, 웹툰, 웹드라마, 인터뷰 등 다양한 형식의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어 여러가지 장면에서 활용가능한 콘텐츠들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여튼 기존 콘텐츠에 대한 자문과 함께 새로 제작되었으면 하는 아이디어 제안 등을 하고 있는데 브런치에서는 유아동 양육자 분들이 참고하면 좋을만한 콘텐츠들을 하나씩 소개해보려고 한다. 이번에 고른 것은 “어린이를 위한 동의(consent for kids)”라는 애니메이션이다.


http://genderon.kigepe.or.kr/geme/brd/selectContentBoardArticle.do?bbsId=&nttId=812&keyword=&contentGroupDetail=&=&frstRegisterNm=&password=&loginSns=&contentType=BABY%2CCHILD%2CYOUTH%2CYOUNG%2CADULT%2CJOBGROUP&regularType=&civilType=&=&content= 


1,2편으로 제작된 이 영상은 무엇보다도 어린이들과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한 편 당 영상이 2분 남짓인데다 자극적이지 않고 단순한 그림체로 텍스트와 함께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한다. 오리지널 영상 제작사인 blue seat studios의 모토인 "Educate with humour"라는 말 그대로 너무 딱딱하거나 무겁지 않게 ‘동의’라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동의에 속하고 무엇이 동의에 속하지 않는지를 어린이의 관점에서, 어린이가 자주 처하는 상황을 예시로 들어 설명한 점이 인상적이다. 어떤 일들에는 상대방의 동의가 꼭 필요하며 동의를 구하는 물음에 "응!, 좋아!"라고 대답한 것만이 동의라는 설명도 명쾌하다. "안아도 될까? 물었을 때 "응, 좋아!"만이 동의이고 '음...글쎄?'라고 하거나 물어보면서 선물을 주거나 겁을 줬다면 그것 역시 동의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Yes means Yes! No means No!)


 덕분에 바당이 정도의 어린이(만 48개월)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고 영상을 함께 보면서 또 본 이후 이야기를 나눈다면 메시지가 충분히 전달될 만한 수준이다. 왜 나의 허락없이는 누구도 나에게 스킨십을 하고 또 그것을 요구해서는 안 되는지와 함께 모르는 어른 뿐 아니라 내가 알고 나와 가까운 어른의 요구일지라도 나의 기분과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거절해도 된다는 것을 설명한다. 사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어린이들에겐 당연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어린이의 감정은, 어린이의 몸은, 어린이의 말은 온전히 존중받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친밀감의 표현으로 어린이에게 스킨십을 하고, 스킨십을 요구하는 것, 어린이가 주춤거리는데도 계속하는 것, 어린이의 '싫다'는 말을 부끄러움의 표현이나 애교로 치부하는 것. 이런 경험들은 모두 별로 좋지 않은 메시지가 된다.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어른이 요구하면 싫더라도 응해야 한다는 생각, 다른 사람이 나의 몸을 만지거나 내게 스킨십을 해도 괜찮다는 생각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좀 복잡한 마음이 되기도 하는데 이런 콘텐츠가 계속해서 필요하고 또 중요한 것과는 별개로 이것이 과연 어린이들에게만 가르쳐서 될 문제인가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종류의 콘텐츠들은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꽤 제작되고 있다. 아이들 그림책에서도 친구의 몸을 함부로 보거나 만지면 안 된다, 가족이 뽀뽀를 요구해도 거절해도 된다, 정도의 메시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아방지교육에서도 어른이 도움을 요청하면 응하지 말고 다른 어른에게 전달하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과연 어른들은 그만큼 배우고 있는걸까? 바당이와의 경험들을 돌이켜볼수록 이건 사실 어린이교육보다도 어른 교육이 시급한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싫어!"라는 말을 앙탈이나 애교쯤으로 여기며 무시하고 끝끝내 자신의 뜻대로 아이의 볼을 만지작 거리던 사람들, 아이에게 젤리를 주며 뽀뽀해달라고 하던 사람들, 아이가 '별로 안 하고 싶은데...'라며 말 끝을 흐리면 너무 서운하다며 한 번만 해달라고 조르듯 이야기해 아이를 난처하게 만들던 사람들. 이 영상은 for kids라고 붙어있긴 하지만 사실 어린이들만을 위한 영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린이의 자기결정권 그리고 경계존중에 대한 내용은 책에서도 짧게나마 다뤘었는데 "나의 몸은 나의 것"이라는 것. 이 당연한 말이 어린이들의 세계에서도 당연해질 수 있도록 어른인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일상에서 어린이들을 만났을 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내 나름대로 세운 기준은 ‘이 행동을 아이가 아닌 성인에게도 할 수 있나?’이다. 길을 지나가는 모르는 성인에게 다가가 뽀뽀해달라고, 너무 예뻐서 그런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싫다고 거절하면 서운하다고 한 번만 해달라고 계속 조를 수 있을까? 사실 모두들 마음 속으로는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성인에게는 해선 안 되지만 아이에게는 해도 되는 행동 같은 건 없다는 것을. [남자아이가 아니라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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