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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 Oct 04. 2018

아이의 첫 동화책.

구도 노리코, <기차가 덜컹덜컹>

 내가 출산을 한 병원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출산 후 의료진들이 모두 퇴실한 분만실에서 아기와 산모, 보호자가 30분에서 1시간 정도 되는 시간을 사적으로 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선생님들은 나가기 전 아이를 내 가슴팍께에 올려주었다. 좀 이상한 말이지만 그때 “세상에, 인간이란 사실 이렇게 좋은 거잖아.” 그런 생각을 했었다. 갓 태어난 보드랍고 따뜻한 아기랑 맨 살을 맞닿고 있으면 사람이 그렇게 된다.

 문제는 그때부터 휠체어를 타고 입원실에 가 누워있기 까지의 기억이 온전치 않다는 거다. 분만실에서 우리 아빠랑 통화도 하고 남편이랑 같이 계획한대로 동화책도 읽었다는 데 아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튼 남편 말에 의하면 그랬단다. 그러니까 우리가 실물(!) 정바당과 함께 제일 먼저 한 일은 동화책 읽기였고 그 역사적인 책이 바로 구도 노리코의 <기차가 덜컹덜컹>이다.



기차가 덜컹덜컹, 구도 노리코


 <기차가 덜컹덜컹>은 내가 다니던 어린이 도서관의 베스트셀러였다. 임신 중에는 그냥 좀 웃긴 책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아이랑 함께 읽으면 읽을수록 애들이 이 책을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알겠다.

 이 책은 재밌다. 정말 재밌고...음 재밌다!

 

 <기차가 덜컹덜컹>은 작가 구도 노리코의 연작인 “우당탕탕 야옹이” 중 한권이다. 우당탕탕 시리즈는 “말썽꾸러기 야옹이들이 대형 사고를 친다.”는 간명한 구조이고 글밥도 많지 않다. 사실 나의 동화책 고르기란 그렇게 체계적인 것은 아니어서 서점들에서 표기하는 연령 구분들을 거의 따른 적이 없다. 이 책 역시 4세 유아 그림책으로 분류되어 있긴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아이가 신생아 때부터 보여줬다. 아이가 워낙 좋아해 꾸준히 읽어준 책이라 아이가 책을 막 찢던 시기도 있어서 보수도 여러번 했다. 오히려 신생아 때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가만히 있었지만 양손과 양발의 자유를 얻은 후에는 서 너장 보는 게 전부기도 했다. 그래도 그냥 종이책을 익숙하게 해주고 싶었고 꼭 보드북이나 사운드북같은 것만 보여주지는 않았다.


 아이를 키울수록 구도 노리코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 뭔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야옹이들, 기차, 팝콘, 펑! 하는 클라이막스. 그리고 무엇보다 의성어와 의태어.

<기차가 덜컹덜컹>, <초밥이 빙글빙글>, <빵공장이 들썩들썩>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에는 온갖 재밌는 의성어와 의태어들이 나온다. 양육자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이들은 소리를, 모양을 본딴 말들을 유독 재밌어한다. 단조롭지 않아서일지 말소리가 특이해서일지 모를 일이지만 하여튼 정바당도 마찬가지였고 이제 책의 몇 문장들을 외우는 지금까지도 가끔씩 까르륵 까르륵 넘어간다.

  

 게다가 보시라, 이 미친 디테일!!!

솔직히 동화책이라는 게 아이가 읽는 책이긴 하지만 동시에 내가 읽는 책이기도 하다보니 내 입장에서도 좀 볼만한 구석이 있어야 손이 가는 게 사실이다. 내게 책 고르기의 선택권이 있을 때(대부분 없다...) 구도 노리코의 책을 한 권 정도는 꼭 포함하는 편이다. 리듬감있는 대사들 덕분에 읽어주기에도 수월한 것은 물론이고 그림들이 귀여우면서도 굉장히 공들여진 것들이라 한 장 한 장 살펴보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만화책 읽는 기분이랄까. 물론 “이건 뭐에요?” “쟤는 누구에요?”라는 질문들에 대답해주다 보면 한 장 넘기는데 오 분 십 분 걸리는 게 예사지만...ㄱ, 그래도 조, 좋아합니다...




갓 낳은 아이에게 읽어줄 책으로 이게 최선이었을까? 우리가 왜 (하필) 이걸 골랐었지? 남편이랑 그런 얘길 한 적 있었다. 정바당이 클라이막스인 “펑!!!” 부분에서 꺄르륵 대다가 막 다 때려부술 기세로 달리며 돌고래 소리를 내던 시즌인 것으로 기억한다...뭔가 좀 메시지가 있는 책이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었던거다. 기왕이면 환영이나 사랑의 메시지가 담겨있는 걸로. 우리의 첫 만남이 좀 더 근사한 얘깃거리가 될 수 있게 말이다. 근데 이건 정말로 내 욕심이고 무엇보다 이 글을 쓰다보니 우리가 그 순간에 그저 재밌고 또 재밌는 얘기를 했다는 게 나름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의외로 이렇게 우당탕탕 거리며 읽고 깔깔 떠들 수 있는 책이 그렇게 많지 않다. 무엇보다 우리 셋 뿐이었던 분만실에서 나와 남편이 “야옹야옹” “칙칙 폭폭 칙폭칙폭” “덜컹 덜컹 덜컹” “영차! 이영차!” “치익 치익 치이이이익”하고 있었다는 걸 떠올리면 자꾸 웃음이 나온다. 비록 기억은 잘 안 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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