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사회생활을 돕는 책들
아이가 기관생활을 시작한 지 이제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아이는 우리의 예상보다 빠르게 적응했다. 등하원도 일주일만에 익숙해져 2주차부터 정규 시간표대로 원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조금 얼어있긴 했지만 점점 나아지더니 어느 새 오로지 나만이 아는 아이 특유의 표정을 보여줬다. 마음을 살짝 놓았을 무렵, 하원길에 선생님께서 이야기를 꺼내셨다.
바당이가 행동 반경이 좀 넓은 편이에요.
오늘 블럭을 양 옆으로 휘둘렀는데 친구 한 명이 거기에 스쳐서 울었어요.
세상에! 정말 걱정스러웠다.
혹시 친구를 때린거 아닐까? 선생님이 수위를 조절하시는 것 아닐까? 온갖 생각이 들어 차근히 여쭤봤지만 그런 일은 아니라고 하셨다. 아마 블럭 놀이를 같이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그냥 친구들 옆에서 막 흔들었던 것 같다고. 친구들은 당연히 이해할 수 없으니 무시했고 바당이는 그럴수록 더 과장되게 행동했던 것 같다고 말이다. 선생님이 그렇게 얘기해주시는데도 여전히 걱정스러웠다. 남편이랑도 한참 어떡하지, 왜 그러지, 어떻게 해야 하지. 했다. 왜냐면 우리는 사실 아이가 '그런 문제'를 일으킬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혹스럽달까. 최근에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긴 했지만 지금 개월 수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고 문제적 범주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바당이는 뭐랄까, 사실 조금 내향적이랄까 수줍음도 많고 조심스러운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우리 부부는 처음에 '공격적 행동'에 초점을 맞췄다. 일단 우리 아이 때문에 다른 아이가 어쨌든 울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 계속 마음에 쓰였다. 아이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친구들이랑 놀 때는 어떻게 해야 한다, 친구가 울면 이렇게 해야 한다 얘기하게 됐다. 아이는 아직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 듯 때에 따라 알겠다고 했다가 또 모르겠다고 했다가 하겠다고 했다가 하기 싫다고 했다가 급기야는 자긴 친구는 싫고 혼자 놀고 싶다고 항변(?)했다. 출발이야 어쨌건 결국 다그치는 모양새가 된 거다. 아이는 아이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이건 아닌 것 같다는 마음에 분위기가 퍽퍽해지곤 했다.
다행히 담임선생님께서 방향을 제대로 잡아주셨다. '아이 마음을 먼저 챙겨주라'는 얘길 여러 번 해주셨다. 바당이는 아마 지금 좀 속상할 거라고. 자기 딴에는 친구랑 놀고 싶어서 액션을 취한 건데 친구가 싫다고 하니까 당황스럽기도 하고 속상할 거라고 말이다. 선생님은 이건 '공격'이라기 보다는 '서투름'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하셨다. 아이는 아마 지금 혼란스러울 거라고. 나는 같이 하고 싶어서, 친구가 좋아서 안다가 힘 조절이 안 된 것 뿐인데, 어떻게 같이 놀자고 해야 하는지 몰라서 블럭을 흔든 것 뿐인데. 친구는 왜 싫어하고 선생님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는걸까? 엄마랑 아빠는 왜 자꾸 친구한테 미안하다고 하라고 하지?
그 이야기들을 가만히 듣다보니 아이한테 좀 미안해졌다. 그치, 그게 되게 어려운거지. 돌이켜보면 인생을 삼십년도 더 산 나도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게 여전히 참 어려운 일인데 아이는 오죽하겠나.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고 서로 지켜야 할 선을 지키고 상대방 기분을 헤아려 적절하게 대응하고 내가 잘못한 일이 있다면 유야무야 넘어가지 않고 사과하는 것. 그게 참 어린이들의 세계에서 뿐만이 아니라 모두의 인생에서 정말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들이란 데 생각이 미치자 아이 마음이 조금 이해가 갔다.
아이에게 뭐가 올바른지 백날 입으로 말해봐야 혼나는 느낌만 들겠다는 생각에 집에서는 동화책의 도움을 빌리기로 했다. 검색과 추천을 통해 여러 권의 책들을 받아보게 되었는데 그 중 아이가 가장 흥미를 갖고 지금 아이의 상황에 딱 필요한 책은 바로 이것이었다.
버니의 생활 습관 놀이책 시리즈(총 세 권) 중 2권 친구랑 같이 놀자, 3권 예쁘게 말해봐.
이건 뭐랄까. 약간은 어린이 세계의 자기계발서(?) 실용서(?)같은 느낌이 있다. 그런데도 내가 이 책을 베스트로 꼽은 건,
1 이야기 구조가 간결하면서도 아이들이 흔히 맞닥뜨리는 갈등상황과 바람직한 대응을 제시해주고
2 주인공 버니와 다른 동물 친구들의 대화체라 역할극처럼 읽어주기가 용이하고
3 팝업북/플랩북 형태라 아이가 일종의 놀이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상황이 간결하게 제시되는 게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은유적인 이야기(타인을 존중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서사들, 바바빠빠라든가)는 아직 아이의 개월 수에는 맞지 않아 보였다. 그것보다는 아이가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단서가 되어줄 수 있는 이야기였으면 했다. 버니의 생활 습관 책 시리즈는 친구의 것을 빌리거나 나누고 싶을 때,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친구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 때, 친구가 부탁을 해왔을 때 알맞게 대응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내가 원하던 아이에게 힌트를 주는 이야기였다.
무엇보다 아이가 흥미를 갖고 읽어서 하루에도 한 두번씩은 꼭 보게 되니 좋았다. 아마 이 이야길 그냥 대화로 풀고자 했다면 아이나 나나 스트레스가 꽤 컸을텐데 그런 일이 없었다. 일종의 플레이북이라 아이가 직접 당기고 밀고 떼었다 붙이면서 역할 놀이 하듯이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양육자도 아이도 큰 에너지 소모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아이가 뭔가를 배우고 있다는 압박감 없이, 뭔진 정확히 모르겠지만 하여튼 왠지 혼나는 것 같다는 느낌 없이 읽는 다는 게 중요했다.
아이를 키울수록 올바름에 대해 설명한다는 게 참 어렵게 느껴진다.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 어려서부터 다른 게 아니라 그런 걸 알려주는 게 정말 중요한 일 같은데 쉽지가 않다. ‘배려’, ‘존중’같은 말은 아직 아이가 이해하기엔 너무 어렵고 아이 말높이에 맞춰 설명하다보면 전부 ‘사이 좋게’가 되고 만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정말 그게 아니다. 나는 아이가 모두와 ‘사이 좋고’, ‘어른들 말씀 잘 듣고’, ‘착한 아이’가 되길 바라지 않는다. 아이도 다 자기 생각이 있을 거고 착한 아이보다는 자기 감정과 의견을 타인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 아이가 되길 바란다.)
그래서 굳이 구구절절 말로 하지 않아도 아이가 보고 들으며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아이의 마음 속에 ‘씨앗’처럼 남는 이야기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아이를 올바르고 따뜻한 방향으로 ‘슬쩍’ 밀어주는 이야기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심어둔 씨앗이 있다면 거기에 물을 주어 싹을 틔우는 일 정도는 내 몫으로 남겨둘 수 있을 테니까.
PS 친구를 사귀고 친구 마음을 헤아리는 방법에 대해 트위터에서 추천받았던 책들 중 마음에 와닿았던 책들과 제가 아이와 함께 봤던 책들 중에서도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함께 리스트업해둡니다. 글밥이 꽤 되는 책들도 있고 직접적이라기보단 간접적으로 다른 친구들, 존재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연령별로 또 아이의 책버릇 별로 구분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이들의 고단한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최숙희, <나랑 친구 할래?>
가사이 마리/기타무라 유카, <친구가 미운 날>
아네트 티종/탈루스 테일러, <바바빠빠>
토리고에 마리, <또르의 첫 인사>
샐리 그린들리, <미안해, 친구야!>(*절판도서라 도서관 등을 이용하셔야해요.)
쓰쓰이 요리코/하야시 아키코, <우리 친구하자>
앤서니 브라운, <우리는 친구>
토베 얀손, <무민의 단짝 친구>
미야코시 아키코, <비밀의 방>
와타나베 아야, <친구야, 미안해>
와타나베 아야, <고마워, 토마토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