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조용한 카페에서 끄적거리기,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해안길 걷기, 새벽이 아침으로 바뀌는 순간을 천천히 즐기기 등등. 내가 평화를 느끼는 순간이다. 생각이 많아 마음이 시끄러운 나는 ‘나’라는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평화를 찾았다.
고등학생 때에는 시를 적었고 친구들과 떠들었다.
20대 초중반에는 사실 ‘나’라는 모습을 잃어버린 채 이리저리 흔들리며 사치스러운 만개의 순간을 가지기도 했다. 그러다 돈을 벌기 시작한 순간, 사회에 나를 진짜로 내놓은 순간에 나는 다시 ‘나’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엄밀히 말하면 사회에서 ‘나’를 까발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밖으로는 괜찮은 사람이었지만, 스스로에게는 가혹한 사람이 되었다.
높은 기대치와 낮은 실행력, 9개를 잘하고 1개를 못하면 그 1개를 바득바득 찾아내 나의 가치를 손상시키고 그게 나의 한계라며 나를 나무랐다. 그러면서도 남들보다 앞서나가야 한다며 더 빨리 뛰지 못하는 나를 보며 실망하고 좌절했다.
사회 초년생이던 3년차까지는 평화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조차 가질 수 없었던 것 같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에 급급해서 마음이 전쟁통에 있는데 무시하고 지냈다.
그리고 그때에는 이런 생각을 자주 했었다.
이게 뭐가 힘들다고, 다른 사람들은 더 힘들어도 잘만 해내는데.
평화를 찾겠다는 건 사치이자 유약함이 아닐까.
그러다 뻥하고 터진 마음이 주체를 못하고 흘러내려 쿰쿰하게 곯은 마음이 몸까지 힘들게 만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필사적으로 평화를 찾았다. 시작은 명상과 글쓰기였고, 혼자 여행을 가고, 마음이 놓이는 카페를 찾아가서 혼자 조용히 커피를 마시고 가장 좋아하는 딸기 생크림 케이크도 먹었다. 그 별거 아닌 것들이, 무겁게 웅웅대던 내 마음을 가라앉혔다.
남들이 더 힘들다고 해서 내가 덜 힘든 건 아니다.
이 생각을 마음에 새겼다. 평생 남들과 비교해 나의 행복과 불행도 눈치 봤던 나에게 ‘평화선언’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금도 가끔 이런 평화로움에 죄책감이 드는 순간은 있다. 하지만 이제는 죄책감이 아니라 평화를 누릴 수 있게 해주는 것에 대한 감사함을 가지려고 한다. 그리고 함부로 남들의 행복과 불행을 평가하지 않는다. 나와 같이 그 누구의 감정도 가벼운 것은 없기에.
오늘도 나는 감사와 함께 스스로에게 평화를 허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