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기 배우님을 떠나보내며
아침에 카페에 출근해서 안성기 배우님의 별세 소식을 들었다.
구울 디저트가 많아 바쁜 월요일 아침이지만 그 소식을 듣자 잠시 멈추게 되었다.
내가 그를 알게 된 영화는 <투캅스>였다.
능구렁이 같은 선배 형사 역할이었는데, 범인을 취조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취조실에서 갑자기 머리를 타자기에 박는 장면과 함께 그가 내뱉은 대사였던 "이 놈이 경찰 팬다"가 아직도 선명하다. 그리고 영화의 또 다른 장면인 살인 현장에서 사체를 보며 태연한 척하던 모습도 기억난다.
물론 또 다른 주연이었던 박중훈 배우님과 케미스트리가 만들어낸 명장면이었다.
그다음으로 그의 얼굴을 다시 보게 된 건 <인정사정 볼 것 없다>였다.
그는 이 영화에서 사건의 주범으로 나온다. 하지만 이 영화와 그를 기억하게 된 것은 단연코 인트로 시퀀스였다. 예기치 못한 소나기가 내리는 인트로, Bee Gees의 'Holiday'가 흐르는 가운데 일어난 살인 사건.
아마도 한국 영화에선 보기 드문 인트로 시퀀스였다.
세월이 흘러 <실미도>에서 다시 만났다.
최재현 준위 역으로 나온 그는 심지가 굳은 군인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 냈다.
특유의 목소리 톤으로 "날 쏘고 가라."는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 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안성기 배우를 잊고 살았다.
그러다 이순신 3부작에서 다시 얼굴을 마주했다.
<한산: 용의 출현>과 <노량: 죽음의 바다>. 그의 주름은 한층 깊어졌지만 목소리 톤과 연기는 여전했다.
이 영화를 볼 때만 해도 이제 마지막 일 줄을 생각지 못했다.
이 글을 쓰면서, 그의 필모그래피를 찾아봤다.
그가 출현한 작품은 총 137편.
한산, 화려한 휴가, 노량, 신의 한 수, 한반도, 실미도, 사자, 아라한 장풍대작전, 퇴마록 등등.
내가 본 영화가 이렇게나 많았다.
영화 리스트들을 보니 더더욱 묘한 감정이 든다.
어렸을 때부터 스크린에서 봐온 분이라서 그런 걸까.
그의 부고를 들으니 이상하게 내가 나이를 더 먹은 것 같다.
난 아직 어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봐온 배우들이 하나둘 떠나는 걸 보니, 어쩌면 그건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그의 웃음도, 연기도, 목소리도 더는 새롭게 볼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남긴 137편의 작품 속에서 그는 여전히 살아 숨 쉴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