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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케혀 Nov 06. 2019

엄친아가 될 뻔했는데

한 달 전 어느 대기업의 하반기 경력사원 공개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을 했다. 마감 기한을 코 앞에 두고 자기소개서를 쓰게 되면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것을 예상했기에 일찍이 조금씩 글을 쓰며 살을 붙여 나갔다.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면서 '그간 내가 한 것 없이 시간만 축내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시작은 했으니 끝을 보자는 심정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어렵사리 마무리를 하고 지원서와 함께 제출했다.  



엄친아들만 간다는 대기업이었기에 별 기대를 안 하고 있었다. 그래도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어디 그렇나. '신입이 아니라 경력이다 보니 지원자가 수가 적지 않을까' '그래도 자기소개서를 나름 정성껏 적었으니 연락이 올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해당 기업 인사팀에서 면접 일정을 알리는 문자가 진동과 함께 나의 애플 워치 화면에 뜨는 것이 아닌가. '내가 대기업 1차 서류 심사에 합격을 하다니, 할렐루야!' 이어 온라인 인성 평가를 마무리하고 면접날을 기다렸다. 대기업에 걸맞게 면접도 서울 본사에서 한다고 통보가 왔다. '역시 대기업은 다르군' 





면접 당일 ktx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1차 서류 전형에서 합격한 후 장차 내가 다닐 수도 있는 회사의 연봉과 규모, 계열사 등을 서칭 해보고 대기업을 다니고 있는 미래의 나를 상상해 보았다. 김칫국을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럴 때 "Don't count your chickens!"이라고 한다던데 나는 새 차를 타고 있는 나, 사무실에서 정장을 입고 멋들어지게 일하고 있는 나,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고 해외로 출장을 가는 자신 등 무수히 많은 닭을 세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면접을 보면서 발생했다. 경력 면접이니 만큼 압박 질문이나 외국어로 답하는 질문을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문제였다. 예상과는 다르게 역시나 숨기고 싶은 부분, 묻지 말아 줬음 하는 질문이 어김없이 날아들었다. 나에게 있어 그것은 '중국어'였다. 많이 미흡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간 보완하지 않고 아주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던 것이 노란 고름처럼 곪아 터져 나왔던 순간이었다. 한 면접관의 질문에 중국어로 대답하는 것이었는데 제대로 된 문장을 구사하지도 못했고, 동문서답을 하여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너무 자신이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면접이 끝나고 지원자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데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왜 최선을 다해 준비하지 못했는가' 어디서 나온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어설프게 면접을 준비했는지 자신에게 화가 났다. 언제 다시 올 줄 모르는 기회였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국어를 전공으로 하였지만 부족한 것을 알고도 차일피일 공부를 미루다 정작 기회가 왔을 때 잡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이번 면접을 계기로 '부족한 것을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부족한 것을 메우는 행동이다'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보다 나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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