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연봉협상을 했다. 10년 가까이 지금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항상 협상은 내가 '을'이라는 사실을 한 번 더 각인시켜준다. 말만 협상이지 통보에 가깝다. 협상 테이블에 앉으면 이미 다음 해의 연봉은 측정되어 A4 용지에 적혀있고 하단에 을의 사인만 들어가면 계약은 성사된다. 맞은편에 사장이 얘기한다. "사인해줘" 계약서상의 어떤 내용이 있는지 따져보고 싶어도 읽을 시간이 충분치 않으며,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한 해 동안 수고했어. 알다시피 경기가 좋지 않아서 내년에는 허리띠를 졸라매어야 할 거 같아." (ㅅㅂ 언제 경기가 좋았던 적은 있었냐!) 연봉 협상 테이블에 앉기 전 미리 생각해두었던 몇 안 되는 문장을 입 밖으로 꺼내보지도 못한 채 바보처럼 싸인만 하고 나왔다. 이럴 거면 연봉협상이 아니라 연봉 통보라고 이름 붙여야 할 정도다. 어떤 기준으로 지금의 연봉이 산출되었고 근거는 무엇인지 알고 싶었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윗사람들 한테 찍혀서 불이익을 당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땅히 알아야 할 내 권리 조차 그들의 손에 있는 거 같았다. 무엇이 나를 작게 만드는 것일까.
답답한 마음에 유튜브에서 '협상 잘하는 법'을 찾아보았다. 아래는 동영상 내용 요약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nZTp499Y3hE
1. 정보의 확보
가능한 많은 정보를 확보해 두어야 한다. 예를 들면 이직 시 전임자의 월급이라 던 지, 회사 내부의 연봉 체계를 선점하고 있다면 먼저 제시하는 것이 유리하다. 정보가 빈약하다면 상대방의 제시하는 금액을 들어 보는 것이 알맞다.
2. 목표 설정
협상 전 수치화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거래 성사 지점, 판단 유보 지점, 거래 결렬 지점) 이 중 거래 성사 지점과 결렬 지점은 반드시 수치화되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월급이 인상되어 300만 원 이상 이면 사인을 하고 270만 원 이하면 협상 결렬, 중간이면 유보하는 것이다.
3. 감정
우리는 감정적인 이유로 결정하고 논리적인 이유를 댄다. 의사결정을 할 때 감정적인 부분이 많은 영향을 미친다. 너무 논리적인 접근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상대방을 인정해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4. BATNA - Best Alternative to Negotiated Agreement (협상 결렬 시 대안)
만약 회사에서 터무니없이 낮은 금액을 부르고 협상의 여지가 보이지 않을 때 나의 대안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더불어 상대방(회사)의 BATNA가 무엇인지도 미리 생각해야 한다.
5. 신뢰
궁극의 협상 전략은 협상을 하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이다. 신뢰도가 높지 않으면 의미 있는 비즈니스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모든 협상은 두 가지를 남긴다. 하나는 수치로 나타낼 수 있는 협상 결과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관계이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얻는 것이 성공한 협상이다.
아래는 각 항목에 대한 나의 처지이다.
1. 정보 확보
개인 입장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계가 있다. 정보의 불균형이 심하다는 뜻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같은 직급의 주변 사람들이 얼마를 받고 있고 나는 적어도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상사가 넌지시 흘리는 말을 그대로 믿을 뿐이다. 회사가 어떤 체계로 연봉을 산정하는지 알기 어렵다. 작은 회사일수록 정도가 심하다.
2. 목표 설정
개인적으로 명확한 목표가 없었다. 대충 주는 대로 받고 만족했고, 금액이 적을 때도 이유를 묻거나 나의 퍼포먼스를 어필하지 못했다. 그리고 목표치에 미치지 못하는 제안을 받았을 때 대안이 없기에 회사 문을 박 차고 나갈 수도 없었다. 딜레마다. 회사에서 내 밥그릇을 먼저 챙겨 주는 일은 없다. 역시 자기 밥그릇은 자기가 알아서 챙기는 것이다.
3. 감정
서로 업무적으로 대할 뿐 마음속으로는 서로 존중하지 않는다. 뒤에서 욕하기 바쁘다.
4. 협상 결렬 시 대안
보통 회사의 인력자원은 대부분 대체 가능하다. 내가 일을 잘하는 것 같고 내가 없으면 일처리에 문제가 있을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회사는 잘 돌아갈 것이다. 회사의 BATNA는 언제나 준비되어있다. 대체인원 채용이 될 가능성이 크고, 나는 다시 구직을 해야 하는데 지금 몸 담고 있는 회사만큼 돈을 주고 업무 환경이 괜찮은 곳은 보이지 않는다. 나의 BATNA 부재가 문제이다.
5. 신뢰
서로 간의 신뢰는 깨진 지 오래다. 서로 마주치는 것조차 꺼려한다.
회사가 개미핥기라면 개인 하나하나는 작은 개미처럼 느껴졌다. 무릇 좋은 사회란 개인이 별다른 노력을 안 해도 개인의 안전과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라고 들었다. 하지만 개인이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으면 우리의 권리를 다 빼앗기고 마는 사회에 지금 우리는 살고 있다. 결국은 자신의 실력 키우기 뿐인가. 그놈의 자기 계발은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