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케혀 Oct 05. 2021

그 나물에 그 밥

 나이를 먹어가면서 만나는 인간관계는 줄어든다. 물리적 거리가 멀어서  수도 있고 하는 일이 달라서  수도 있다.  때는 매일 봤던 친구도 어떤 사건을 계기로 또는 뚜렷한 이유는 없지만 자연스럽게 멀어져 간다. 코로나 시대의 장점 중에 하나는 회식과 같이 원하지 않던 관계를 억지로 맺지 않아도 돼서 좋다.



 나는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오락실에 모여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죽이는 것이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그렇다고 생산적인 것을 한 것은 아니지만). 몇 달 전 혼자 있는 시간이 지겨워질 때 즘 같이 계를 하자는 친구의 부름을 날름 받아먹었지만 몇 달 되지 않아 단체 카톡방에서 나왔다. 친목도모를 위해 계비를 모으고 한 달에 한 번 맛있는 걸 먹자는 취지의 계였는데 모임은 역시나 재미가 없었다. 30대가 모여서 하는 얘기란 게 다 비슷해서 누구는 결혼해서 어디에 살고, 누가 외제차를 몰고 누군가는 끝을 알 수 없는 지하로 떨어져 허덕이고 있다는 류의 것들이었다. 남이 잘 된 것을 부러워하거나 시기하고, 누군가 시궁창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그래도 나는 그럭저럭 괜찮은 삶을 살고 있지 않나 하고 스스로 위안 삼는 것이 다였다.



 30대는 문제의 연속이다. 삶의 모든 것이 문제로 다가오는 시기이다. 20대 때 울타리 안에 있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직업, 일, 연애, 결혼 등 모든 것이 실질적으로 삶 깊숙이 파고 들어온다. 누구 하나 고민과 문제가 없는 사람이 없다. "Life is suck." 인생은 만만하게 아니니까. 회사의 상사가 쓰레기라서, 과연 결혼은 할 수 있을까, 마땅한 직장이 없어서, 모은 돈이 없어서 등 고민의 종류는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이렇게 친구들과 고민 보따리를 안고 소주잔을 기울여도 속 시원한 답을 얻기는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비슷한 사람끼리 만났으니 친구가 되었을 것이고 너 나할 것 없이 똑같은 돌대가리니 신세한탄으로 끝나고 마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고민과 문제를 가까운 사람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속이 시원함을 느낄 수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이 아닌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인생은 어차피 문제 해결의 연속이고 문제를 보다  풀기 위해 나는 퇴근  친구들과 만나서 술자리를 가지는  보다 책을 보거나 운동을 하는 것을 택했다. 물론 그런 자리가 재미가 없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친구들보다는 책이 나에게 보다 괜찮은 답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은 나보다 먼저 비슷한 고민을 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언가를 실행에 옮긴 사람들,  같은 길을 먼저  사람이 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술은 마시면 숙취를 기지만 운동은 하면 할수록 근육과 자신감이 붙는다. 건강한 생각과 정신은 건강한 몸에서만 생길  있다는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흔이 넘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친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잘못 생각했던 거죠. 친구를 덜 만났으면 내 인생이 더 풍요로웠을 것 같아요. 쓸데없는 술자리에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했어요. 맞출 수 없는 변덕스럽고 복잡한 여러 친구들의 성향과 각기 다른 성격, 이런 걸 맞춰주느라 시간을 너무 허비했어요.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이나 읽을걸, 잠을 자거나 음악이나 들을걸. 그냥 거리를 걷던가. 20대, 젊을 때에는 그 친구들과 영원히 같이 갈 것 같고 앞으로도 함께 해나갈 일이 많이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손해 보는 게 있어도 맞춰주고 그러잖아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은 많은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더군요. 그보다는 자기 자신의 취향에 귀 기울이고 영혼은 좀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게 중요한 거예요.



<말하다>_ 김영하




 친구 따위는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어차피 혼자 존재할  없고 관계를 맺고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또한 자주는 아니지만 좋아하는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과 술을 나눠먹거나 때로는 여행을 함께 즐긴다. 하지만 인생의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고 나름의 길을 찾기 위해서는 친구에게 기대는 것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스스로 답을 찾아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인생의 문제는 친구가 아닌 내가 풀어야 하니까. 그리고 친구가 아니라 내가  인생에 책임을 져야 하니까.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은 외롭고 깜깜하다.  속에서 혼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답을 구해야 한다. 그것이 책이  수도 있고 먼저  길의  사람들의 강연을 듣는 것도 방법이   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서로의 에너지를 갉아먹는 친구보다 자신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주고 성장을 돕는 친구를 만난다면  좋을 것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괜찮은 놈이 되어 있어야겠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