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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케혀 Dec 17. 2019

생에 첫 대게

7번 국도 여행 

올해는 사정이 생겨 해외로 휴가를 떠나지 못했다. 아쉬움을 접고 국내 어디가 좋을지 고민하던 중 동해 바다와 닿아있는 7번 국도를 따라 강릉 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지금 아니면 언제 또 가보겠냐는 생각에서였다. 최종 목적지도 없이 7번 국도를 따라 올라가면서 중간중간 맛있는 음식을 먹고, 멋진 풍경을 보며 무리하지 않고 쉬어가는 것이 우리가 정한 유일한 기준이었기에 첫째 날 숙소만 정한 채 우리는 아무것도 정하지 않고 차에 올랐다. 언제나 그렇듯 여행은 비행기표를 끊고 숙소를 예약하면 알아서 시작된다.



울산 고속도로를 나와 국도를 따라 올라가다 처음 만난 곳이 영덕이었다. 그렇다 대게의 고장이다. 나는 안타깝게도 이때까지 대게를 먹어보지 못했다. 물론 뷔페에 가면 볼 수 있는 킹크랩 살 점이 들어간 샐러드나 삶은 대게 다리 정도는 먹어봤을지는 몰라도 한 마리 통째로 쪄서 먹어본 적은 없었다. 단지 비싸다는 얘기만 어디서 들은 적이 있었다. 여행은 낯선 것과의 만남이다. 일상생활에서 느끼지 못하는 낯선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그래서 대게를 먹기로 했다. 여행지에서 '할까 말까' 고민이 될 때면 나는 'Now or Never'를 떠올린다. 지금 아니면 영영 못하지 않을까 생각하면 답은 빨리 나온다. 일단 하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맛이 없으면 이후부터는 사 먹지 않으면 그만이다. 투자를 하지 않고 어떤 결과를 얻어내고자 하는 것도 어찌 보면 도둑놈 심보라는 생각이 든다. 



대게 모형이 건물마다 걸려있고, 찜통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앞치마에 장화를 신은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차를 향해 손짓한다. 길 입구부터 차는 길게 늘어져 주차장이 되어버렸고 거북이걸음으로 조금씩 나아가니 가게 입구에서 손님을 모으는 아주머니, 아저씨들을 피할 수가 없었다. 때론 운전석 가까이 다가와 차문을 노크를 하기도 했는데 "삼촌 싸게 맞춰줄게. 들어오세요." 정면을 보며 딴청을 피우기도 했다. 오기 전 '영덕대게'를 검색하여 여러 리뷰를 찾아보았다. 신기하게도 식당마다 상차림 구성이 비슷했다. 대게와 회 그리고 대게를 이용한 여러 요리들이 나왔는데 상다리는 휘어질 듯 푸짐했지만 젓가락이 가고 싶은 곳은 몇 곳 없어 보였다. 나와 여자 친구는 갓 스팀 샤워를 마치고 빨갛게 달아오른 대게만 배불리 먹고 싶었지, 대게에 치즈를 올리고 다른 기교를 더한 음식은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기교가 조금 더해진 것들로 인해서 가격도 더 부담스러워지는 듯했다. 



어렵사리 주차를 하고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리뷰에서 본 식당들도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시장을 만났다. 시장을 만나면 갑자기 목소리가 커지고 동작이 빠릿빠릿해지며 흥분되기 시작한다. 여행지에서 시장은 비용 대비 만족도가 높고 실패 확률도 낮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이 즐겁다. 입구부터 덩치 큰 게들이 수족관을 가득 채우고 있고 매대에는 바닷가재, 킹크랩, 그리고 이름 모를 많은 해산물로 가득이었다. 게들의 종류와 가격을 물어보고 응근슬쩍 만져보기도 하면서 우리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시장을 몇 바퀴 돌았다. 그러다 한 매대에서 10 kg 즘 되는 덩치 큰 대게 두 마리를 골랐다. 영덕대게는 다리에 완장을 차고 있다. 우리가 고른 게는 영덕대게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외국 바다에서 잡힌 대게인 듯했다. (가격 흥정 후 알바생을 따라 가면 식당이 나오는데 거기서 만원을 내면 찜을 해서 내어 주는 시스템이었다.) 대형식당들에 비해 가격은 절반 정도였다. 우리는 꽤 괜찮은 선택한 것에 흡족해하며 알바생을 따라갔다. 





알바생이 식당에 게를 넘긴다. 게가 스팀샤워를 하는 동안 여자 친구에게 물었다. "과연 어떨 맛있까?" 대게를 먹어본 적 있는 그녀가 답했다. "게맛살 맛이야." 정말 김 빠지는 대답이 아닐 수 없다. 게맛살을 먹기 위해 10만 원도 넘는 돈을 투자하다니. 30분가량 스팀 샤워를 마친 대게는 배테랑 아주머니들의 손놀림으로 먹기 좋게 잘라져 상에 오른다. 흥분되는 순간이다. 첫 경험은 언제나 설레는 법이다. 다리의 살을 빼서 입에 넣었다. 드라마틱한 맛은 아니었지만 자주 먹을 수 있는 게가 아니었기에 살 한 점 남김없이 먹고 게딱지에 붙어있는 게의 내장에 밥도 비벼 먹었다. 게딱지는 나중에 밥을 비벼 먹을 것을 고려하여 처음에는 나오지 않는다. 살을 다 먹고 밥을 비벼달라고 하면 주방에서 만들어서 가져다주신다.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아주머니에게 게딱지 둘 중 하나는 게살에 소스 삼아 찍어 먹을 수 있도록 같이 내어 달라고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역시 처음은 어설프다. 그래도 이제 나는 대게를 먹어본 놈이 되었다. 



  

 

정재승 교수는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이유를 우리가 시간의 흐름을 사건의 축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렸을 때는 온통 새로운 사건뿐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되면서 새로운 사건을 접하기보다는 익숙한 것에 둘러싸여 있다. 낯선 환경에 자신을 두고 새로운 사건을 경험하기에 여행만큼 좋은 것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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