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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케혀 Aug 17. 2021

피고 지는 것

 외할머니는 요양 병원에 계신다. 시골에서 가끔 볼 일이 있을 때나 (보통 병원 진료 목적) 부산, 진해에 있는 자식들 집에 오시는데 볼일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시골로 내려가셨다. 하루만 더 있다가 가시라고 해도 ‘아파트는 너무 답답해’, ‘시골집에 고추며, 깨며 할 일이 많다’ 등 여러 이유를 대시고 결국은 시골로 다시 내려가신다. 물론 당신의 집이 제일 편한 이유기도 하겠지만,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불편함을 주지 않게 하기 위함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요양 병원에 계신 외할머니와 영상통화를 했다. 나의 이름을 얘기하자 ‘XX 아들 누구’하며 말씀하신다. 이제 내가 한 얘기를 누군가 귀 옆에서 크게 다시 한번 얘기해주지 않으면 의사소통이 어려울 정도다. 나는 핸드폰 화면 속 할머니를 보면서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저 영상 속의 할머니를 바라볼 뿐이었다. 


 초등학교 방학 때 형과 나는 외갓집에서 보낸 적이 더러 있다. 추운 겨울 시골 장날이 되면 외할머니는 형과 나를 데리고 먼길을 걸어가서 양말과 내복을 사주시곤 했다. 언제는 제사에 올릴 생선을 사고 집에 돌아와서 생선 입안을 가득 채운 새우나 작은 물고기를 (판매 시 무게를 늘릴 목적으로 넣은 것으로 보이는) 끄집어내면서 “망할 놈들!” 하며 혼자 억척스럽게 욕을 해대시는 외할머니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나도 이제 청년이라고 불리기엔 억지스러운 나이가 되었고 조카 중 한 명은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나와 형이 방학 때 외갓집에서 시간을 보냈을 때도 초등학생 무렵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성장을 보는 것은 그 나름 흥미롭지만 지는 꽃을 마주하는 일은 몇 번을 반복해도 적응이 되지 않는 듯하다. 비록 그게 자연의 섭리라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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