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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mm Jun 22. 2019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리뷰

김혜리 만점 영화 01

한편의 영화가 꿈꿀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가진 영화 (김혜리 영화평론가)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하나 그리고 둘>을 만든 에드워드 양 감독의 작품으로, 역대 최고의 영화를 꼽는 리스트에도 항상 포함되는 공인된 걸작이다. 처음이라 다짐하는 마음으로 일부러 긴 영화를 고르기도 했고, 김혜리 평론가님이 <하나 그리고 둘>과 함께 올타임 베스트 1위로 꼽은 작품이기도 해서 이 영화를 첫 번째 영화로 정했다. 


나온 지 30년 가까이 된 4시간짜리 대만 영화이기에 장벽이 높은 영화가 아닐까 걱정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반대로 앞의 조건들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전혀 지루하지 않다는 점에서 에드워드 양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을 실감하게 했다. 4시간짜리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쓸모없는 장면이 하나도 없고, 모든 장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긴장감을 유지한다. 손전등, 야구 배트, 총, 칼 등 소품 하나하나도 쉽게 쓰이지 않고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렇게 4시간을 따라가다 보면 1960년대 전후 대만의 사회가 시간을 매개로 개인들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알게 된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한 사회의 공기가 개인들을 어떻게 만들어나가는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사실 '사회의 공기'라는 말은 무척 애매한 말인데, 이렇게 손에 잡히지 않는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  오히려 이 영화가 훌륭한 이유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글로 설명하는 것은 나 같은 영알못뿐 아니라 평론가들조차도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다른 매체로는 표현할 수 없고 오직 영화이기에 가능한 지점들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건 영화를 봐야만 알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영화 속 사회는 억압적이지만 정작 직접적인 폭력은 모두 억압하는 이들이 아니라 억압받는 이들 사이에서만 발생한다는 점이다. 학교의 선생이나 영화 세트장의 감독, 심지어 샤오쓰의 아버지를 취조하는 이조차 직접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저 학교에서 군대처럼 줄을 서거나, 서로 싸우다가도 군인들이 지나갈 때는 숨죽여 있는 모습, 샤오쓰의 아버지가 우연히 본 얼음 위에서 누군가 취조를 받는 장면 등으로 암시될 뿐이다. 반면 학생들 사이에서는 서로 죽이기도 하고 벽돌로 얼굴을 치는 등의 끔찍한 폭력들이 발생한다. 심지어 선생과 학생 사이에서도 폭력을 가하는 쪽은 선생이 아니라 학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만들어내는 어떤 공기를 통해 영화를 보는 이들은 영화 속 중심 인물들이 시종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대만 사회의 불안을 야기한 또 다른 이유로는  사회에 발붙이지 못한 다양한 문화들의 공존도 있다.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영화는 이 부분을 너무 탁월하게 묘사해낸다. 일본의 칼과 미국의 총, 일본의 음악과 미국의 음악 등 다른 나라에서 흘러들어온 것들이 혼재하며, 외성인과 본성인 사이의 갈등도 존재한다. 아무래도 당시 대만의 역사를 알고 보면 본성인과 외성인 사이의 갈등이 있던 당시 사회 분위기와, 그러한 갈등을 상징하는 듯한 학생 갱단 사이의 싸움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미장센의 교과서로 불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나도 인상적인 장면들이 많았는데,  특히 빛(과 그림자)의 쓰임이 놀라운 장면들이 많았다. 이 영화는 영화 세트장이 나오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영화 자체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는데, 영화를 보다 보면 감독님이 생각하기에 영화를 찍는 일은 손전등을 비추는 일과 같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초반의 어둠 속에서 키스를 하는 연인에게 비추는 손전등부터 시작해서 손전등을 비추면 보이지 않는 것이 드러나게 되지만, 2시간 20분쯤부터 시작하는 통째로 아름다운 장면 끝에 손전등의 빛으로 인해 샤쓰오가 그림자로만 존재하는 장면이 보여주는 것처럼, 무언가에 빛을 비추는 일, 다시 말하면 영화를 찍는 일이 가지는 양면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영화를 찍는 데 있어 모든 빛에는 그림자가 있다고 말하고, 그에 대한 대답으로 <하나 그리고 둘>의 아이가 '나머지 절반의 진실'을 보여주기 위해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은 게 아닐까 하는 망상을 해보았다.


빛과 관련해서 사소해 보이지만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다. 인물들을 찍는 대신 문에 비친 흐릿한 잔상을 찍은 장면인데, 엄청 아름답다고 느꼈다. 아래 해당 장면을 캡쳐했는데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카메라 : 방 안>


1) 샤오쓰가 방에서 나감.

2) 샤오쓰가 오른쪽으로 걸어감. 그 모습이 거울을 통해 비침.


<카메라 : 방 밖>


3) 밍이 방 밖으로 나옴.

4) 밍이 왼쪽으로(샤오쓰가 있는 곳으로) 걸어감.

5) 카메라가 밍을 따라 왼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오른쪽에 있는 문을 비춤. 샤오쓰와 밍이 대화하는 30초 내내 샤오쓰와 밍이 아닌 문에 비친 잔상을 비춤. 

6) 그들이 다시 프레임 안으로 들어와 계단 아래로 내려가는 것까지 한 테이크로 찍음.




이런 식으로 미장센 하나하나가 놀라운 장면이 많았다. 이런 것들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 일단 아모르문디 영화 총서를 읽어봐야겠다.



여성 캐릭터들과 남성 캐릭터들의 대비되기도 한다. 이 부분은 김혜리 평론가님이 필름클럽에서 말한 부분을 인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비교해보자면, (샤오쓰의) 가족 중에서 여성 캐릭터들, 그러니까 엄마나 누나는 훨씬 현실적이죠. 아버지나 아들은 뭔가 세상은 이런 걸 거야 하고 막 구조를 만들었다가 그게 무너졌을 때 감당을 못하는 반면, 엄마나 누나는 훨씬 변화에 빨리 적응을 하고, 삶을 일원화하지 않고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서, 이 영화는 당연히 감독이 남성이기 때문에 남성 에고의 비극으로, 대만을 넘어서 보편적인 남성 에고의 성장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마무리하는 방식까지 무척 훌륭했던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쉽다. 영화관의 어둠 속에서 보았을 때 이 영화의 이미지들에 제대로 압도될 수 있었을 것이다. 재개봉을 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완전한 어둠이 보장된 상태에서 한 번 더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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