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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의 나이

by 회색달

보름 밤 병실에 누워 천장만 봤다.

허리가 끊어질 듯, 삶도 부러진 듯


익숙한 냄새가

새벽공기를 비집으며 났다.


바로 옆 병실 침대의

아저씨 숨결에 섞인 쓰디쓴 취기였다.


낯설지 않은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술잔 든 아버지,

변신하던 얼굴.


어릴 적 나는

두 주먹 꼭 쥐고 다짐했다.

절대, 저렇게 살지 않겠다고.


어른이 되면

술 따윈 모르는 사람 되겠다고.


삶은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

십 년 넘은 직장에서

번아웃이란 괴물에게

무너지는 날 일으켜 세운 건

한 잔, 두 잔, 채워진 술잔이었다.


내 삶도 그렇게 서서히 취해갔다.


중독센터 문턱을 넘고

관리라는 이름의 평생 짊어질 짐은

완치 없는 불치병이라더라.


그땐 몰랐다.

아버지의 그 밤들을

왜 그렇게 술로 찌들어 사셨는지.


이제 내가 그 나이가 되어보니

조금은 알 것도 같아.


처음 살아보는 삶이

얼마나 어색했는지.


해결되지 않는 답답함 속에서

무엇에라도 기대고 싶었을 마음이었을까.


지금의 아버지도 관리 중이라는데,

망가진 몸으로 후회하고 계신다니


차마 못한 말들 가슴에 담고

집에 가면 그저 묵묵할 뿐.


그래, 남자의 삶이란 게 참 무겁더라.


나도 그 무게를 짊어지고 걷다 보니

뒤늦게 이해가 된다.


그 쓸쓸한 등 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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