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할 수 없는 고장은 없습니다. 단지 시간과 노력이 조금 오래 걸릴 뿐
토요일 오후, 자동차 점검 소에 들러 정기 검사를 받았다. 값비싸고, 성능 좋은 차량은 아니지만, 올해로 만 10년째 나의 두 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동안 큰 고장 없이 잘 타고 다녔다. 하지만 주행 중 차량 하부에서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소음이 들려 거슬렸던 차에 정비까지 받기로 했다.
차량의 시동상태와 전조등, 그 외에 여러 가지 검사를 마치고 받은 검사결과는 ‘합격’. 소음 문제도 해결했는데, 자동차축과 바퀴를 이어주는 고무가 닳아 추가로 교체했다는 대답을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거짓말처럼 이전의 소리가 나지 않았다. 오래된 차량이어도 검사받고, 소모품 교체만 잘하면 오래 탈 수 있다. 잘 타고 다니던 차량에서 경고 신호등을 확인했을 때,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차량의 느낌을 받았을 때 작은 소모품을 교체하는 것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
낡고 오래된 차량처럼, 살다 보면 사람 마음과 기억에도 좋지 않은 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제때 정비하지 않으면 우울증이라는 병으로 번진다. 미리 예방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바쁜 일상을 보내다 뒤늦게 알아차린다.
혹여 부끄러운 내 마음을 누가 알아차리기라도 할까 봐 전전긍긍할 때 도움 되는 마음 정비방법이 있다.
쓰기다. ‘스스로 지금 내 마음을 돌아보는 단계’가 바로 글쓰기다. 스마트폰을 열어 SNS에 ‘위로’,‘격려’,‘응원’,‘우울’ 같은 단어 몇 글자만 입력하기만 하면 많은 글을 만나 볼 수 있다. 그만큼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려는 연습하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통계에 따르자면, 24년 한 해에만 출간된 책이 수 만권이라고 한다. 하루 몇백 권의 이상씩 출간되고 있는 셈이다.
가족이라는 주제로 공저 작업에 참여 중이다. 5월 말이면 원고를 완성해 투고 예정이다. 지금껏 약 7년 동안 천 편 이상의 글을 써왔지만 가장 어렵고 힘들었다. 다른 작가들의 초고를 살펴보니 행복한 기억이 많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을 고스란히 받아낸 기억은 악몽이었고, 화목한 가족이라는 말은 나와는 손톱만큼도 상관없었다.
어떻게든 독자를 위한 메시지를 남겨야 했다.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덜어주어야 했다.
작가의 흘린 땀방울만큼 독자의 눈물을 덜 기회였고, 특권이었으니까.
원망은 결국, 자신을 갉아먹는 악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장 나지 않는 기계가 없는 것처럼, 내 삶도 그럴 수 있다고 자신을 위로했다. 작은 부품 하나를 교체하여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처럼 망가진 기억에 다가가 볼펜으로 색을 칠하기로 했다.
수리란 상품을 새것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제 기능을 찾아 주는 역할이다. ‘나’의 제 기능을 찾는 수리방법이기 도 했다.
열 명의 공동저자가 모여 자신만의 마음 수리를 시작했다. 행복했던 추억, 눈물로 얼룩진 기억, 아찔했던 사고의 경험,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이별의 악몽 등. 지난 한 달여 동안 옮겨진 글은 40편이 모였다.
A 작가는 어린 시절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지내며 있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를 들려줬는데, 나 또한 큰 고모 댁에서 지낸 기억이 있어 그때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이 되기도 했다. 이런 경험은 단순히 기억을 떠올리는 것을 넘어 부모님과 떨어져 지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되짚어 보는 초고의 밑바탕이 됐다.
작가는 케이블 타이 같은 존재다. 각기 다른 기억을 연결하고 사람의 마음을 묶는다. 나를 비롯 공저 열 명의 작가 모두, 사람의 이야기로 추억을 키우고, 상처를 치유하는 삶을 꿈꾸며 글을 모았다.
자신의 기억을 글에 옮기려거든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기억 하나에 붙은 마다 사연이 있다. 오랫동안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만 있던 기억을 내 손으로 직접 쓰고,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때의 나와, 원망했던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다.
초고를 마친 작가들의 소감도 그랬다. ‘쓰다 보니 그때의 남편이 이해가 됐습니다.’ ‘악몽 같았던 기억이 지금 돌아보니 행복이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라는 말을 들으며 나 또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삶은 공장에서 만들어져 나오는 완제품이 아니다. 벽돌 하나하나 쌓으며 나만의 울타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만약 바람에 밀려 쓰러졌다면 다시 정비하는 과정에서 삶은 더 단단해진다. 과거의 상처도 손 보면 스스로 서는 인생을 만들 수 있다.
기억을 수리할 수 있는 이 일을 계속하며, 좋은 사람들과 계속 작업하고 싶다. 또 많은 사람이 마음을 돌아보는 글 쓰는 일을 해봤으면 한다. 각자의 기억에서 수리를 마친 추억이 더 많이 생겨나 행복이 자리 잡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