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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현기 Feb 24. 2024

미움받을 용기 (부족을 인정하는 기술)

어제의 눈물이 오늘의 환희로

(2023년 11월 05일 21시 46분 )


 올해 다짐했었던 수필 쓰기 50개가 이미 넘었다. 사실 비공개로 쓰다가 덮어둔 글까지 세면 300 편 정도 된다. 어쩌면 그만큼 참기 힘든 억울함이 더 많았는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건 글을 쓰는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많았다는 거다. 첫 집 장만했을 때도 적었고, 직장 동료가 험담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마음을 조용히 옮겨 적었다. 지하철 유리창에 붙은 전단을 보고 적은 날도 있다. 2023년은 말 그대로 글쓰기의 해였다.


그런 나였는데 요즘은 늦은 밤에도 잠에 빠지기 힘들 정도로 마음이 불편하다. 괜히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다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책상에 앉아 덮어놓은 노트북을 연다. 그럼 새벽 1시다. 그 상태로 정신없이 자판을 두들기다 보면 한두 시간은 훌쩍 지난다. 문제는 이 상태가 벌써 한 달째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직장에 출근해서도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점심시간에는 생전 하지 않던 낮잠까지 자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 일이다. 이런 불편한 마음의 이름은 어쩌면 외로움이라는 이름은 아닐까 했다.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마음. 글을 쓸수록 마음이 가벼워지던 올해 초와는 다르다. 아직 만나지 못한 내 마음속 깊은 곳으로 빠져드는 기분.


 며칠 전 일이 생각났다. 차라리 글과 관련된 일을 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인터넷을 뒤적거린 날이었다. 한참 동안 직업을 다시 생각해보고 있는데 과연 이 선택이 나에게 맞는 일일이 싶었다. 그만큼 내가 글쓰기에 능력은 있을까? 글을 쓰지 못하는 날에는 돈을 벌지 못하는 건 아닐까? 등의 수많은 걱정이 더 머릿속을 채웠다.


 이런 생각은 한참 운동에 빠져 전업 운동코치로 직업을 바꾸느냐는 고민을 했었던 기억과 이어지기도 했는데, 늘 선택의 최우선은 ’과연 내가 돈을 벌 수 있을 만큼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가?‘ 였다. 삶은 늘 선택의 순간이라고 하는데 나는 매번 다른 지금까지 걸어온 길의 연장선을 이어가는 중이다. 만약 내가 지금 직장을 그만둔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은 무어라고 말할까?


 부모님께서는 ’왜 좋은 직장을 그만두냐‘ 라고 대번 그러실 거고, 험담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또 뭐라고 하려나.

유독 나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선배 한 명이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너는 뭐 한다고 글을 쓰냐?. 돈 벌려고?, 아님. 뭐 인정이라도 받고 싶어서?"

그말을 듣는 순간, 목구멍으로 신물이 올라와 입 밖으로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사람이 갑자기 지금까지 하던 일 대신 다른 일을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물론 대부분은 걱정과 격려를 보내겠지만 누군가는 순수한 궁금함에 ’왜 그걸 해? ‘라고 물을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뒤에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지도 모른다.


 내가 선택한 삶 중에서 적어도 글 쓰는 일 만큼은 '왜?‘ 로 시작하는 질문에 그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려는 것 보다 오로지 나를 위한 일임은 틀림없다. 위로를 건네기 위해 쓸 때도 있고, 자신을 격려, 축하 할 때도 있었으니까.


 글을 쓰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느낄 수 있는 건 외로움에 대한 인식이다. 남들과 거리가 생기면 외로움이지만, 내가 거리를 두면 그건 스스로 만들어낸 고독이니까. 외로움을 직접 맞서 싸우는 것만큼 '인 자강'이 또 있을까. *인자강 : '인간 자체가 강하다. '라는 뜻


 2024년도의 다짐을 이곳에 남겨볼까 한다. ‘남들에게 이해받는 사람보다 내 삶을 성실하게 기록하는 사람이 되자.’ 이 과정을 비슷하게 설명하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매슬로라는 상담학자다. 사람은 관계를 맺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정받을 욕구라는 심리가 우리의 저차원적 욕구에 속한다고 한다.


 이것은 자신을 성장시키는데 지극히 방해되는 요소다. 자꾸 남의 눈치와 판단에 나를 가져다 맞추어야 하고 내가 '왜'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계속 이어나가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셈이니까. 차라리 말 대신 글로 써 놓으려 한다. 이 과정이 내가 사는 길이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원활하게 유지될 기회 (자기반성과 성찰이 대부분이지만) 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혹여 또 누군가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험담을 하더라도 나는 묵묵히 선택의 기로 앞에서 뒤를 돌아 글을 쓰겠다. 나의 선택이 아직은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만큼의 뛰어난 업적이나 성공을 이루지 못했을지라도 내가 내 성장을 알고있지 않은가. 굳이 내 삶의 방향을 남들이 시선에 맞추려 노력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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