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는 것조차 버거웠던 때가 있었다. 진짜루. 가만히 있어도, 그냥 숨만 쉬고 있는데도 몸이 무거웠다. 아침에 눈뜨는 게 고문 같고, 밤엔 잠드는 게 전쟁 같았다. 알콜이든 약물이든, 뭐라도 들이붓지 않으면 하루가 안 됐다. 그게 없으면 내 하루는 뚝 끊겨버리는 느낌이었으니까. 머리는 항상 뿌옇고, 마음은 텅 비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또 미쳐버릴 거 같고. 그게 반복이었다.
매일이 똑같았다. 어제랑 오늘이랑 내일이 구분이 안 됐고, 그냥 계속 '이 상태'로 흘러간다는 공포. 그게 더 무서웠다. 이러다 진짜 끝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고. 아니, 차라리 끝났으면 싶기도 했고. 머릿속은 ‘왜 살지’가 아니라 ‘왜 태어났지’까지 갔다. 하루하루가 지옥이라는 표현도 그땐 너무 약했다. 하지만 그건 그냥 현실이었다.
거울 보면 낯선 사람이 서 있었고, 내 목소리 듣는 것도 싫었다. 진심으로. 사람들 만나고 싶지도 않고, 연락 오는 것도 싫고, 심지어 핸드폰 벨소리조차 신경을 긁는 느낌. 무슨 말을 해도 다 위선 같고, 누가 뭐라 해도 결국 다 떠날 사람들 같았다. 세상한테 진 빚이 너무 많다고 느껴졌고, 그 빚은 도저히 못 갚을 거 같았다. 그냥… 그냥 다 놓고 싶었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도망치고 싶었다. 아주 멀리. 아무도 모르게.
그러다 단주 모임을 참석했다. 누가 끌고 갔던 것도 아니고, 그냥 들어갔다. 기대는 1도 없었다. 사실은 안 가려고 몇 번이나 핑계 댔고, 겨우 나섰다. 거기 도착해서 문 열자마자 후회했다. '여긴 또 뭐야…’ 싶은 묘한 공기. 이상하게 고요한데, 그 고요함이 되게 낯설었다. 말소리 들리긴 하는데, 하나도 안 들어왔다. 머리랑 귀가 따로 노는 느낌.
그냥 앉아 있었다. 가만히. 그러다 어떤 아저씨가 눈에 들어왔다. 50대쯤? 말도 별로 안 하시고, 조용한데 이상하게 눈에 띄었다. 웃고 있었는데, 그 웃음이 이상하게 가짜가 아니었다. 진짜로 평온해 보이는 눈빛. 이상하게 거슬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게 좋았다. 그 사람을 보고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별 기대도 없었는데, 이상하게 그 순간엔 조금 마음이 움직였다고 해야 하나. 그건 진짜 오랜만이었다.
몇 번 모임 나오고, 아저씨랑 말 섞기 시작했는데… 충격이었다. 나랑 똑같은 사람이라니. 그 사람도 한때 술 없으면 잠도 못 잤대. 아침에 눈 뜨자마자 술부터 찾고, 오후엔 약도 섞고. 결국 가족들도 떠났고, 일도 다 잃고, 한동안 노숙도 했다고 했다. 그런 분이 지금은 작가고 강연도 다니신다고. 웃기지 않냐고? 나도 처음엔 웃었지. 근데 그 사람이 진지하게 말하는데… 거짓말 같지 않았다.
“나도 예전엔 내가 고장난 사람인 줄 알았어.
근데 여기 나와서 남들 얘기 듣고 나니까 그게 아니더라고. 나는 그냥, 부족했을 뿐이었더라고.”
아저씨의 한 마디가 뼈를 때렸다. 잘못이 아니라 부족이라는 말. 그 차이가 그렇게 큰 줄 몰랐다. 부족하니까 망가졌고, 망가진 채로 방치했으니까 더 깊어졌던 것이다. 그걸 인정하고 조금씩 뭔가를 채워가다 보니까, 살만해졌다고 그렇게 말했다. 웃기게도, 그 말 듣고 나니까 내가 조금 덜 외로웠다.
아저씨가 책을 추천해줬다.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제목부터 너무 무거워서 처음엔 손이 안 갔는데, 어느 날 밤 그냥 펼쳐봤다. 아우슈비츠. 거긴 진짜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상상 그 이상. 근데 거기서도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다. 어떻게? 이유가 있었다. 살아야 할 이유.
프
랭클은 말했다. 인간에게서 모든 걸 빼앗아도, 하나는 절대 못 뺏는다고. 바로 태도를 선택할 자유. 상황은 바꿀 수 없어도, 그 상황을 대하는 자세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거. 그 자유를 끝까지 붙잡았던 사람들이 살아남았다고.
돌아가야 할 가족, 끝내야 할 원고, 전하고 싶은 이야기. 각자가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가졌고, 그게 그들을 붙잡아 줬대. 그 문장 읽는데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나한텐 그런 게 없었거든. 왜 살아야 하는지, 뭘 해야 하는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조차 없었다. 그냥 살아 있는 게 죄처럼 느껴졌고, 계속 존재하는 게 실수 같았다.
책을 덮고 나니까 머리가 띵 했다. 뭔가 한 대 맞은 기분. 아, 그냥 숨 쉬는 게 사는 게 아니구나. 사는 이유가 있어야 그게 삶이 되는 거구나. 그동안 내가 왜 그렇게 흔들리고 망가졌는지, 이제야 좀 알 것 같았다.
난 잘못된 게 아니라, 이유가 없었던 거다. 왜 사는지 모르니까 무너지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니까 헤매고. 내가 나를 계속 잡아끌고 무너뜨리고 있었던 거지. 아무도 아닌, 바로 내가.
이유. 그게 필요했다. 거창하지 않아도 됐다. 그냥, 내일 눈 뜰 이유. 누군가에게 전화할 이유. 내가 좋아하는 노래 한 곡 듣기 위해 살아도 된다는 거. 그런 이유 하나만 있어도 괜찮다는 걸,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이제는 나도 내 이유를 찾으려 한다. 아직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다. 그냥 조금씩 걷다 보면, 언젠간 보일지도. 아니, 안 보여도 괜찮다. 그걸 찾으려고 걷는 지금 이 순간, 그게 이미 의미 있는 거니까.
아직 완전히 괜찮아진 건 아니다. 가끔은 여전히 흔들리고, 불안하고, 한밤중에 눈 떠서 이유 없이 눈물도 난다. 근데 이제 예전처럼 그게 끝이라고는 안 느껴진다. 다시 시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중요하다.
바람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는 나무처럼, 나도 이제는 중심 잡고 서고 싶다. 흔들릴지언정, 부러지진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삶은 거창하지 않은 거니까. 그냥, 내가 내 발로 걷고 있다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나의 이유는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