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정답' 대신, 나만의 '태도'로 걸어갈 때
처음 이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솔직히 좀 막막했다. 막다른 골목에 선 기분이었다.
내 지난 시간을 글로 옮기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특히 알코올이라는 깊은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렸던 날들을 떠올리는 건 고통스러운 과정을 넘어, 마치 썩어 문드러진 상처를 다시 찢는 듯한 아픔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들을 마주해야만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더 이상 도망칠 곳도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에, 나는 용기를 냈다. 떨리는 손으로 펜을 들고, 내 안의 가장 어두운 곳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 들어갔다.
나는 오랫동안 삶에 정답이 있다고 믿었다. 마치 수학 문제처럼, 정확한 공식에 대입하면 딱 떨어지는 답이 나오는 것처럼, 내 인생에도 분명 성공하고 행복해지는 '정답'이 있을 거라고 말이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그렇게 배워왔잖아? 좋은 대학, 안정적인 직장,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배우자, 차, 집... 이런 것들이 인생의 완벽한 정답이자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그 정답을 찾아 헤맸다. 남들이 말하는 '좋은 길'을 따라가려 했고, '옳다고 여겨지는' 방식대로 살려고 발버둥 쳤다. 내 몸과 마음은 늘 긴장 상태였고, 혹시라도 그 '정답'에서 벗어날까 봐 노심초사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내 삶은 공식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공식이 아예 없는 것처럼 보였다.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고, 아무리 노력해도 풀리지 않는 난관에 부딪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좌절했고,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원망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이 닥치는 걸까?’, ‘나는 왜 남들처럼 쉽게 행복해질 수 없을까?’ 이런 생각에 갇혀 스스로를 더 깊은 절망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 모든 고통과 불안에서 도피할 유일한 출구처럼 보였던 것이 바로 알코올이었다. 처음엔 잠시의 위안을 주던 술은, 어느새 나를 집어삼키는 깊고 어두운 나락이 되어버렸다.
술에 의존하며 보낸 시간들은 마치 끝없는 어둠 속을 헤매는 것 같았다. 내 몸과 마음은 병들어갔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는 망가졌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밀어냈고, 나 자신마저 증오하게 되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내가 알던 내가 아니었다. 초점 잃은 눈빛, 텅 빈 표정, 삶의 의지조차 희미해져 가는 그림자 같은 존재. 그때 나는 육체는 자유로운 공간에 있었지만, 생각과 삶의 의지를 스스로 가두어 버린 상태였다. 마치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힌 죄수처럼, 내면의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 나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문득, 아니 어쩌면 필사적인 몸부림 끝에, 독서와 글쓰기를 만나면서 조금씩 변화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시간을 보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술에 취하지 않은 맨정신으로 홀로 버티는 시간이 너무 고통스러웠으니까. 그래서 무작정 책을 펼쳤고,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들을 끄적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책 속의 문장들이 하나둘씩 내 마음에 박히기 시작했다. 특히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 책은 단순히 한 사람의 경험담이 아니라, 내 삶의 지독한 미로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실마리를 던져주었다.
그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마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함께 갇힌 듯한 생생한 기분을 느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사람들, 매일같이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모습,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극한의 상황들... 저자의 담담한 서술 속에서 나는 깊은 슬픔과 함께 알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그곳이야말로 물리적으로 인간의 육체를 완벽하게 가두어둔 곳이었다. 자유는 박탈당했고, 생존의 희망조차 희박한 곳. 내가 갇혀있던 보이지 않는 감옥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실제 지옥이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저자는 수용소 안에서조차 절망하지 않고 삶의 작은 이유라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목격했다. 그들은 내일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버텨냈다.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찾으려는 그들의 모습은 내게 큰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도대체 어떻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나도 저자처럼 '어떻게 그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그 '정답'이 궁금했다. 나 역시 지금의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정답'을 원했다. '술을 끊는 완벽한 방법', '다시 행복해지는 확실한 지름길'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책을 끝까지 읽고 나서 깨달았다. 세상은 수학 공식이 아니며, 삶에 '정답'이란 건 없다는 것을. 1+1이 2라는 명확한 정답이 있는 수학과 달리, 우리 삶은 매 순간 예상치 못한 변수로 가득하다. 정답을 찾으려 할수록 우리는 좌절하고, 스스로를 비난하게 되는 것이다.
삶에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해답'이었다. 무엇이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지를 따지는 대신, 어떤 상황이 내 앞에 펼쳐지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해결해나가려는 노력. 이것이 바로 나만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고, 삶을 대하는 '태도'라는 것을 말이다. 외부 환경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어도, 그 환경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온전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라는 것. 이 깨달음은 내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더 이상 완벽한 정답만을 찾아 헤매는 대신,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행동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술에 의존하는 대신, 책을 펼쳤고, 머릿속 생각을 글자로 옮겼다. 비록 서툴고 보잘것없을지라도, 무언가를 하려고 노력하는 그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 실패해도 괜찮았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고 나만의 해답을 찾아 나서는 '태도'였다.
수용소에서 죽음만 기다리던 사람들과 극한의 상황에서도 삶의 이유를 찾으려 했던 사람들의 차이는 바로 '태도'에 있었다. 외부 환경은 똑같이 지독했지만, 삶을 대하는 내면의 태도가 그들의 운명을 갈랐던 것이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보려 하고,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찾으려 하는 태도. 그것이 그들을 살게 했다. 이 깨달음은 내게 엄청난 용기가 되었다. 프랭클 박사님이 그 지옥에서도 가능했다면, 나도 내 삶의 시궁창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삶의 의미를 명확히 깨닫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일 수 있다. 깊은 철학적 사유가 필요할 수도 있고, 오랜 시간을 들여 스스로를 탐구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태도를 갖는 것은 그보다는 훨씬 쉬운 일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왜냐하면 태도는 외부 환경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나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아무리 절망적일지라도, '여기서 나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이 상황을 통해 나는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긍정적인 면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이 증명했듯, 인간은 생각보다 훨씬 강인한 존재다. 어떤 고난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한 가닥 희망이라도 붙들고 나아가려는 의지만 있다면 말이다. 그리고 그 의지는 바로 '긍정적인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러니 우리도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그들처럼,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삶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긍정적으로 가져가자. 완벽한 정답을 찾기보다, 매 순간 나만의 해답을 만들어가는 용기를 내자. 삶은 정해진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는 여정이니까. 그리고 그 여정의 가장 중요한 나침반은 바로 우리 마음먹기에 달린 '태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