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한동안 생각이 많아졌다. 고통의 의미를 찾으려는 그 책의 메시지는 강렬했지만, 정작 내 삶은 여전히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다. 술을 끊고 나니 감춰져 있던 감정들이 하나둘 얼굴을 드러냈다.
‘나는 왜 이렇게 불안하지?’, ‘관계에서 왜 자꾸 힘들어할까?’ 그런 질문들이 가라앉지 않고 떠올랐다.
그 무렵 인문학 책들이 내게 큰 도움이 됐다. 다만 단순한 취미나 정보 습득이 아닌, 전혀 다른 방식의 독서가 필요했다.
자격증이나 필수 교육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공부한 적은 있었지만, 스스로의 갈증을 풀기 위해 자발적으로 책을 찾아 읽은 건 처음이었다.
첫째, 능동적으로 질문하며 읽었다. 작가의 주장에 머무르지 않고, “이 문장은 내게 어떤 의미일까?”, “내가 저 상황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생각을 메모하고 필사하면서 책의 문장을 내 언어로 바꾸었다.
둘째, 나의 삶과 연결하며 읽었다. 책 속 이야기와 인물의 감정이 내 경험 중 어느 지점과 닿아 있는지 자주 되짚었다. ‘나도 저런 감정을 느낀 적 있었지’ 하며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됐고, 점점 책은 내 삶의 거울이 되어갔다.
셋째, 글쓰기로 정리했다. 책을 덮은 직후 몇 줄의 감상을 써두는 일이 생각보다 큰 힘이 됐다. 글을 쓰는 행위는 머릿속을 정리할 뿐 아니라, 복잡한 감정을 해소하는 데도 효과적이었다.
그렇게 나는 어두운 동굴을 헤매듯 내 안을 비추는 여정을 시작했고, 상처와 두려움, 그리고 숨어 있던 강점까지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특히 두 권의 책이 중요한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의 『미움받을 용기』다.
『데미안』은 싱클레어라는 소년이 자기 안의 빛과 어둠을 모두 마주하며 어른이 되어가는 성장 소설이다. 나는 알코올 중독을 겪으며 느꼈던 혼란과 방황이 싱클레어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술에 기대었던 시간은 내 안의 어둠을 외면하던 시간이었다. 금주 이후에야 나는 그 어둠과 마주했다.
“알을 깨고 나오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이 문장은 전율처럼 다가왔다. 알코올이라는 껍질을 깨기 위해 몸부림쳤던 시간들이 떠올랐고, 내 안의 부끄럽고 어두운 면까지도 나의 일부로 품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데미안』은 나에게, 과거를 부정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줬다.
『미움받을 용기』는 아들러 심리학을 바탕으로 한 철학적 대화 서다. 나는 ‘관계를 정리하고 싶다’, ‘부담스럽다’는 감정들을 오랫동안 끌어안고 있었다. 타인의 기대와 시선은 늘 짐처럼 느껴졌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나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하는 법을 배웠다. “타인에게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은 충격이었지만 동시에 위로였다.
인정을 받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내 행복을 기준으로 행동하는 삶. 그것이 진짜 용기라는 걸 알게 됐다. 이 깨달음은 내 안의 수치심과 창피함을 녹이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낼 힘을 주었다.
두 책은 전혀 다른 언어와 작가의 글이지만, 나 자신을 이해하는 데 서로 맞물리는 퍼즐 조각 같았다.
『데미안』이 내면의 그림자를 직시하게 해 줬다면, 『미움받을 용기』는 그 그림자까지 포용한 ‘나’를 세상 속에서 건강하게 지켜내는 방법을 알려줬다.
독서는 지식 습득에 그치지 않았다. 나를 이해하고, 삶의 방향을 정비하는 결정적인 도구가 되어주었다. 특히 세 가지 측면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
첫째, 감정의 언어를 배울 수 있었다. 책 속 인물들의 감정을 통해,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던 내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이해하게 됐다. 감정을 알아차리는 순간, 그것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둘째, 생각의 틀이 확장되었다. 책은 내가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시각과 사고방식을 제시했다. 다양한 철학과 사상을 접하며, 내 가치관을 재정비할 수 있었다.
셋째, 삶의 나침반이 생겼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단어들이 있었다. 진정성, 자유, 성장 같은 것들. 그것들이 나만의 기준이 되었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흔들릴 때마다 내 길을 밝혀주는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나는 오늘도 책을 읽고, 조용히 글을 쓴다. 혼란스러운 마음이 들 때마다, 책은 내 안을 가장 정직하게 비춰주는 거울이 되어준다.
당신도 지금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 있다면, 책장을 열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 안 어딘가에, 잊고 지냈던 당신의 모습이 조용히 숨 쉬고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