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한 번, 써볼까? 충동이 일다

by 회색달

글을 멀리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한때는 글을 통해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삶의 순간을 기록하며 살아갈 힘을 얻었다. 알코올 중독이라는 어두운 시절을 견딜 때, 책 한 권 읽는 것조차 버거웠지만, 글쓰기는 유일한 숨구멍이 되어주었다. 작가의 문장과 조용히 대화하며 내 안의 이야기를 꺼내 적는 그 순간만큼은, 나 자신에게 조금 더 솔직해질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시간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회사 일에 치이고, 스마트폰이 던져주는 빠른 자극에 길들여지면서 글쓰기는 점점 내 삶의 변두리로 밀려났다. 퇴근 후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와 펜을 드는 대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게 훨씬 편하고 즉각적인 위안을 줬다. 그렇게 글과 멀어지면서,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비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매일이 비슷비슷했고, 그냥 흘러가는 시간 속에 내가 점점 잊혀 가는 것 같았다.


어느 저녁, 침대에 누워 무심히 화면을 넘기던 순간이 떠오른다. 손가락은 계속 움직였지만 마음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손에 쥔 이 기계가 주는 자극이 더 이상 나를 채우지 못하고, 오히려 더 큰 허전함만 남긴다는 걸. 그 순간, 희미하게나마 예전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적으며 느꼈던 몰입, 그 충만함이 잔상처럼 스쳤다. 그리고 마음 깊은 데 있던 목마름이 다시금 차올랐다. 행복은 어쩌면 내가 이미 알고 있던 곳에 있었다. 글쓰기가 주던 행복은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었다.


그건 충동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조용한 갈망에 가까웠다. 다시 써보고 싶다는, 내 이야기를 꺼내보고 싶다는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물론 두려움도 있었다. 예전처럼 계속 쓸 수 있을까, 금세 또 포기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밀려왔다. 그래도 그 마음은 불안보다 더 컸다. 글쓰기가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나를 다시 불러들이는 기분이었다.


다시 글을 쓰면서 느낀 가장 큰 변화는, 마음이 조금씩 정리된다는 것이었다. 머릿속을 떠돌던 복잡한 생각들이 종이 위에 올려지는 순간, 신기할 만큼 또렷해졌다. 예를 들어, 퇴근길 버스안에서 마주친 낯선 표정에서 느꼈던 묘한 감정이나, 업무 중 사소한 갈등이 남긴 답답함 같은 것들. 그냥 머릿속에만 두면 무겁고 흐릿했는데, 글로 꺼내 적으면 그제야 모양을 갖췄다. 마치 엉킨 줄을 천천히 풀어내듯, 마음속 매듭이 조금씩 풀리면서 답답함도 덜해졌다. 반대로, 뜻밖의 즐거움이나 아름다움을 만난 날에는 글로 적으며 그 행복을 오래 붙잡을 수 있었다. 글쓰기는 그냥 감정을 쏟아내는 걸 넘어서, 내 마음을 스스로 읽어내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리고 글쓰기는 ‘나만을 위한 시간’을 만들어줬다. 단 몇 분이라도, 스마트폰 알림이나 남의 시선에서 벗어나 오롯이 내 안에 집중할 수 있었다. 혼자 있는 방, 혹은 조용한 카페 구석에서 펜을 들거나 키보드를 두드리는 순간만큼은 세상 모든 평가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 시간 동안만큼은 나한테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뭘 느끼는지, 뭘 원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더 분명히 알게 됐다. 그게 바쁜 일상에서 잃어버리기 쉬운 나의 중심을 다시 잡아줬다.


많은 작가들이 글쓰기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메리 올리버는 “글쓰기는 마음의 정원에 물을 주는 일”이라고 했고, 루이자 메이 올컷은 “글쓰기는 혼란을 정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정말 그랬다. 쓰는 동안 머릿속이 차분해지고, 감정이 가라앉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매일 조금씩 써가면서 내 안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그걸 보듬을 힘을 배웠다. 글쓰기는 단순히 기록이 아니라, 나를 다시 살피게 하고, 다시 숨 쉴 수 있게 해주는 일이었다.


글쓰기 시작할 때 막막하거나, 좌절을 느끼는 건 결코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많은 작가들이 비슷한 길을 걸었다. 스티븐 킹은 첫 소설 ‘캐리’를 출판하기 전까지 30번 넘게 거절당했다고 한다. 원고는 쓰레기통에 버려졌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글쓰기는 그에게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삶을 이해하는 수단이었다. “거절은 글쓰기의 일부일 뿐, 포기는 끝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실패 속에서도 펜을 놓지 않았던 그의 이야기가 그걸 증명한다.

한국의 김영하 작가도 처음부터 확신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글을 쓰면서 여러 번 회의감과 실패를 겪었지만, 자신만의 언어로 세상을 보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결국 그의 솔직하고 담백한 문장은 많은 독자에게 큰 공감을 주었다. 글쓰기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쌓아가는 길이라는 걸 그의 경험이 보여준다.


이처럼 실패와 좌절은 글을 쓰는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동반자다. 중요한 건 그 안에서도 계속 쓰는 것이다. 글을 통해 스스로를 표현하고, 삶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얻는 것. 글쓰기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삶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드는 도구다.


다시 글에 대한 갈망이 피어올랐다. 대단한 결심이라기보다는, 잊고 지낸 일상의 한 조각을 다시 찾고 싶다는 마음에 가깝다. 글을 쓴다는 건 거창한 작업이 아니다.


그냥 무심히 흘려보낸
하루의 느낌, 스치는 감정을
붙잡아두는 일이다.

텅 빈 화면 앞에서 막막해질 때도 있겠지만, 그 갈망은 결국 나를 다시 나로 돌아오게 할 거라는 걸 안다. 혹시 당신 안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들린다면, 그건 다시 일상의 리듬을 찾아보라는 작은 신호일지 모른다. 글쓰기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우리 삶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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