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한 단주모임

- 회복의 시작점에서 마주한 빛

by 회색달

그날, 회복 모임 장소로 향하는 발걸음은 천근만근이었다. 마치 죄인이 재판장으로 끌려가는 기분이었다고 할까. 아니, 그보다 더했다. 스스로에게 너무나 실망하고 지쳐서, 더 이상 나 자신을 마주할 용기조차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나를, 나의 가장 추악하고 부끄러운 부분을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야 한다는 생각에 온몸이 떨렸다. 어색함과 창피함이 뒤섞인 감정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모임 장소의 문고리를 잡는 순간, 수십 번도 더 도망칠까 고민했다. '그냥 돌아갈까? 아프다고 핑계를 댈까? 아니면 다음 주로 미룰까?' 머릿속은 온갖 회피하고 싶은 생각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동시에,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절박함이 나를 붙잡았다. 그림자 속에서 혼자 썩어가는 대신,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붙잡아야 한다는 본능적인 외침이 있었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삐걱이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작은 방 안에는 이미 몇몇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낯선 얼굴들. 모두들 어딘가 불안해 보였고, 동시에 경계하는 기색도 역력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온몸의 세포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내가 왜 여기 있지? 나는 이런 곳에 올 사람이 아닌데.' 아니, 속으로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 와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나의 30대를 집어삼켰던 알코올 중독이라는 그림자, 그 그림자 속에서 허우적대며 모든 것을 잃어가던 내가 결국 도착한 곳이 바로 여기였다.


어색함은 극에 달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아니, 말을 할 수는 있을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내 무릎만 바라봤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저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실패자라고 생각하겠지? 의지박약이라고 비웃겠지?'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내 안의 수치심은 거대한 괴물이 되어 나를 짓눌렀다.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보다 나아 보였다. 적어도 이들은 용기를 내어 이곳에 왔고, 자신의 문제를 인정할 준비가 된 사람들 같았다. 나는 그럴 준비가 되었을까? 여전히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때,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가 겪었던 고통, 실패, 그리고 다시 일어서고 싶은 작은 소망까지. 그의 이야기는 마치 내 속마음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나만 그런 줄 알았던 경험들, 나만 느끼는 줄 알았던 감정들을 그는 너무나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가 끝나자, 다른 사람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거나, 작은 탄식을 내뱉었다. 비난이나 판단의 시선은 없었다. 오직 깊은 공감과 이해만이 그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그 순간, 내 안의 어색함과 창피함이 조금씩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아, 이곳은 나 혼자 아파하는 곳이 아니구나. 나처럼 그림자 속에서 힘들어했던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곳이구나. 그제야 주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모두들 각자의 사연과 아픔을 가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다시 살아보겠다는 간절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 눈빛 속에서 나는 희미하지만 단단한 희망을 보았다.


나도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고, 준비했던 말들은 뒤죽박죽 섞여 나왔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들은 나의 완벽한 문장이 아니라, 나의 진심에 귀 기울여 주었다. 알코올에 지배당했던 나의 30대, 가족과 친구들을 실망시켰던 순간들, 매일 밤 술 없이는 잠들 수 없었던 고통, 그리고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절규까지. 나의 그림자 속 이야기를 쏟아냈다. 말을 하는 동안 눈물이 흘렀지만, 아무도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오히려 몇몇 사람들은 함께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야기를 마쳤을 때, 깊은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이야기해주셔서 감사해요. 정말 용기 있는 분이세요." 그 말 한마디가 나의 얼어붙었던 마음을 녹였다. '용기 있는 분이라니... 나는 그저 실패자일 뿐인데.' 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그들은 나의 실패가 아니라, 다시 일어서려는 나의 작은 노력에 박수를 보내주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회복 모임에 꾸준히 나가기 시작했다. 모임은 나에게 단순한 '중독 치료'의 장소를 넘어섰다. 그곳은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였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했고,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 주었다. 누군가 술의 유혹에 흔들릴 때, 우리는 함께 그 유혹을 이겨낼 방법을 찾았다. 누군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서로를 다독였다.


사람을 믿는다는 것의 의미를 나는 그곳에서 배웠다. 그것은 상대방의 완벽함을 믿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상대방의 약함과 부족함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믿어주는 것이었다. 나의 가장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냈을 때, 비난 대신 이해와 지지를 보내주는 사람들. 그들의 믿음이 나에게는 세상 어떤 약보다 강력한 힘이 되었다.


나의 중독은 나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림자 속에서 나를 꺼내줄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 과정이었다. 회복 모임 사람들은 그 손길이 되어주었다. 그들의 응원과 믿음 덕분에 나는 다시 한번 힘을 낼 수 있었다. 술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던 내가, 이제는 술 없이도 하루하루를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여전히 힘든 순간들이 있지만,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나를 지탱해 주었다.


평범했던 30대의 그림자는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그림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림자는 빛이 있기에 존재하며, 내가 사람들과 함께 햇살 아래 서 있다면 그림자는 결코 나를 집어삼킬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회복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믿음과 의지, 그리고 그 속에서 얻은 응원의 힘은 나의 가장 큰 자산이 되었다. 나의 중독은 끝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혹독한 과정이었고, 그 과정에서 나는 사람을 믿는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배웠다. 이제 나는 그 힘으로 나의 그림자 진 마음에 따스한 햇살을 쬐어주려 한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가, 어딘가 그림자 속에서 힘들어하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작은 빛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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