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는 게 버거웠다. 아니, 차라리 숨통이 끊어졌으면 싶었다. 서른 줄에 접어든 나는 누가 봐도 '인생 망한 놈' 그 자체였다. 그냥 오늘 하루, 간신히 버틴 회사 문을 나와 저녁에 마시는 술에 힘을 빌려 버티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였다.
주변에서는 걱정 어린 시선으로 나를 봤다. 그리고 조언했다. 병원엘 가보라고, 상담을 받아보라고. 그럴 때마다 속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불쾌감에 몸서리쳤다. '병원? 상담? 나를 정신병자 취급하는 건가? 그래, 나는 망가졌어. 하지만 정신병자는 아니라고!' 애써 외면했다. 애써 괜찮은 척, 강한 척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 자신만 더 비참해졌다. 사람들을 피했다. 그들의 걱정 어린 시선과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처럼 느껴졌다. 동정 같기도 했고, 비난 같기도 했다. 나는 동정도 비난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사라지고 싶었다.
밑바닥이었다. 더 이상 내려갈 곳조차 없어 보였다. 알코올에 찌든 몸과 마음으로 방 안에 틀어박혀 있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진짜 끝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아무것도 없는 건가?' 삶의 의지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다. 절망의 무게에 짓눌려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하지만 희미하게, 아주 희미하게, 마음 한구석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한 감기에 걸리면 병원을 찾아가 약을 먹고 주사를 맞듯, 지금 내 마음속 깊이 병든 나를 치료해야 한다는 목소리였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그래야만 다시 숨이라도 쉴 수 있다는 절박한 외침이었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게 당연한 것처럼, 마음이 아픈 나를 치료하는 것 또한 당연한 일 아닐까? 애써 외면하고 부정했던 현실을 마주해야만 했다. 그래, 나... 아프구나.
그렇게 찾아간 곳이 알코올 중독 치료센터와 정신과였다. 솔직히 처음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누군가 나를 알아볼까 봐, 손가락질할까 봐, 아직도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까 봐 너무 창피했다. 내 인생의 치부를 남에게 드러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창피함은 곧 절박함으로 바뀌었다. 이 지긋지긋한 방황을 서른에 끝내지 못하면, 마흔, 쉰까지도 이대로 살 것 같았다. 아니,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정말 끝이라는 생각뿐이었다. 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다.
치료센터에서는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고, 정신과에서는 의사 선생님과 마주 앉아 내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때로는 울먹이며 내 밑바닥 인생을 이야기했다. 수치심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또 비난받겠지. 또 한심하다는 눈으로 보겠지.' 하지만 의사 선생님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시던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입을 여셨다. "현기님은 강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병원을 찾아오실 수 있었을 거에요. 그러지 못한 사람도 많아요. 사람 마음도 감기에 걸립니다. 모르고 있을 뿐이에요. 그러니 자책하지 말고 저와 함께 치료해봐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뭔가 턱 막혔던 것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나... 강하다고? 내가 병원에 온 게 강해서라고?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다. 그동안 주변 사람들은 '뭐 그 정도 가지고 힘들어 하냐? 나 때는 더 했어!' 라며 내 아픔을 별것 아닌 취급하거나, 억지로 힘내라고 다그쳤다. 그게 '위로'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건 위로가 아니었다. 내 고통을 부정하고 깎아내리는 말이었을 뿐. 그래서 나는 더 깊은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분은... 내 아픔을 인정해주고, 병원에 온 나의 용기를 알아봐 주셨다. 마음도 감기에 걸린다는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억지로 참았던 설움, 외면했던 고통, 그리고 스스로를 향한 비난까지 모든 감정이 뒤섞여 흘러내렸다. 한참을 소리 내어 울었다. 누군가에게 내 아픔을 온전히 인정받고 위로받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괜찮다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그래, 아파도 괜찮다고. 치료하면 나을 수 있다고.
병원에 가기로 결심한 것, 의사 선생님 앞에 앉아 내 치부를 드러낸 것. 이 모든 과정은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수많은 망설임과 두려움, 수치심 속에서 이루어진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 선택 덕분에 나는 비로소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나에게, 의사 선생님의 말은 한 줄기 빛과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한 가장 중요한 행동은 바로 '선택'이었다. 계속해서 도망치고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용기를 내어 마주하고 변화할 것인가.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마치 밥솥의 '취사' 버튼을 누르듯, 내 삶의 방향을 바꾸는 버튼을 누른 것이다. '용기는 취사 버튼의 선택'이라는 말은 바로 이런 순간을 두고 하는 말 아닐까? 용기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두렵고 힘들더라도 '하겠다'라고 마음먹는 그 순간, 그 작은 선택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내 마음 감기를 치료하기 위해 병원으로 향했던 발걸음. 창피함을 무릅쓰고 내 이야기를 꺼냈던 목소리. 그 모든 것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용기 있는 선택이었다. 괜찮았냐고? 응, 괜찮았어. 아니, 최고였어. 네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였을 거야. 그렇게 나는 다시 시작할 힘을 얻었고,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가 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