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오답과 정답사이 나만의 해답을 찾기위한 노력이 전부다
하루하루가 버거웠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사무실의 공기는 왠지 모르게 차갑게 느껴졌다.
끝없이 이어지는 업무와 퇴근 후에도 쉽게 풀리지 않는 긴장감 속에 나는 반복되는 일상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몸도 마음도 점점 지쳐갔다.
한때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나는 겨우 균형을 잡아가고 있다고 믿었다. 알코올이라는 유혹에 흔들렸던 과거를 뒤로하고, 이제는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삶의 무게는 여전히 느껴졌다. 그러다 예상치 못한 순간 내 안의 불안감은 다시 고개를 들곤 했다.
특히 매일 밤 반복되는 야근은 나를 지치게 했다. 늦은 시간, 텅 빈 사무실에서 홀로 모니터를 보고 있다보면,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겨우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적막함이 나를 맞았다. 아무도 없는 집, 켜지지 않은 불빛. 나를 기다리는 것은 오직 깊고 끈적한 공허함뿐이었다.
그 공허함은 단순한 외로움과는 달랐다. 내 존재 자체가 의미 없게 느껴지는, 영혼의 바닥이 텅 비어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열심히 일해도, 무언가를 성취해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공허함이 어쩌면 내가 진짜 살고 싶은 삶의 방식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내 영혼이 보내는 간절한 신호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저 이 고통스러운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공허함은 단순히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되돌아보게 하는 내면의 목소리일 수 있다.
그날도 어김없이 늦은 밤이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하려는데 선배 J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 오늘 진짜 고생 많았다. 간단하게 한잔하면서 스트레스 풀자." '위로'라는 단어가 내 귀에 박혔다. 그래, 위로가 필요했어. 이 지긋지긋한 공허함과 스트레스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었어. 괜찮을 거야. 딱 한 잔만. 스스로에게 허락 아닌 허락을 내렸다.
시끌벅적한 술집에 앉아 선배와 마주했다. 주변의 소음은 멀게 느껴졌고, 오직 눈앞의 술잔만이 선명하게 보였다. 투명한 액체가 잔 안에서 찰랑거리는 모습이 왜 그렇게 아름답게 보였을까. 첫 잔을 비웠을 때, 온몸에 퍼지는 익숙한 열기. 그래, 이 느낌! 이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공허함도, 외로움도, 내일의 걱정도.
딱 한 잔만 하려던 다짐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두 잔이 세 잔이 되고... 결국 병째 비우는 것으로 이어졌다. 내 안의 괴물이 다시 깨어난 것 같았다. 한번 터진 댐은 막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알코올의 늪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때부터 내 삶은 다시 나락으로 떨어졌다. 야근이 끝나면 당연하다는 듯 술집으로 향했고, 집에서는 혼자 마셨다. 정신없이 마시고 쓰러져 잠들고, 아침에 깨어나면 숙취와 후회 속에서 몸부림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몸은 점점 망가져갔다. 속은 타들어 가는 것 같았고, 머리는 깨질 듯 아팠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초췌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이미 중독의 사슬에 다시 묶여버린 것이다.
며칠 밤낮으로 술에 절어 지내던 어느 날 새벽, 갑자기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배를 쥐어짜는 듯한 고통에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이러다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119에 전화했다. 구급대원들이 도착했을 때, 나는 이미 거의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향하는 동안, 사이렌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아,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과거의 실패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겨우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더 깊은 구렁텅이로 빠져버린 나 자신이 한심하고 비참하게 느껴졌다.
응급실 침대에 누워 하얀 천장을 바라보았다. 차가운 시트의 감촉, 링거액이 팔을 타고 들어오는 싸늘함. 그것만이 내가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의사는 여러 검사를 했지만, 딱히 병명은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내장기관의 기능이 현저히 떨어져 있다는 말만 반복했다.
알 수 없는 통증.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내 몸이 보내는 마지막 경고라는 것을. 그동안 내가 내 몸과 마음에 얼마나 무심했고, 얼마나 함부로 대했는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몸의 고통은 무시했던 내면의 소리가 육체를 통해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이자 경종이다.
차가운 병원 침대에 홀로 누워있으니 만감이 교차했다. 후회, 자책, 슬픔, 그리고 막막함. '나는 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겨우 벗어났다고 생각했던 중독에 다시 빠져버린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왜 나는 이렇게 나약할까. 왜 나는 이 공허함을 이겨내지 못했을까.
하지만 그 깊은 절망 속에서도 아주 작은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나는 넘어졌다. 그렇다고 여기서 끝낼 수는 없었다. 이대로 포기하면 그동안의 노력이 아까웠다.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이 순간이 어쩌면 나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것이라 믿기로 했다. 내 몸, 내 마음이 마지막으로 보내는 경고이자, 동시에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라 여기기로했다.
가장 어두운 순간은 끝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다시 설정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작점이다.
눈을 감고 깊이 숨을 쉬었다. 알코올 냄새 대신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래, 다시 시작하자. 이번에는 좀 더 단단하게, 좀 더 현명하게. 혼자서는 힘들다는 것을 이 끔찍한 경험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달았으니,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주변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자. 이 고통스러운 경험을 헛되이 하지 말자.
실패는 좌절이 아니라, 혼자서는 할 수 없음을 깨닫고 도움의 손을 내밀 용기를 주는 값진 교훈이다.
병원 침대 위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 약속했다. 다시는 무너지지 않겠다고. 아니, 무너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힘을 기르겠다고. 이 경험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 것이라고. 그리고 이 이야기가 나처럼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는 작은 위로가, 그리고 동시에 경종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다.
나의 실패와 다시 일어선 이야기가 그들에게 '너만 그런 게 아니야, 너도 할 수 있어'라고 말해줄 수 있다면, 나의 고통은 의미 없는 것이 아닐 테니까.
가장 아픈 개인적인 경험조차도, 솔직하게 나눌 때 타인에게는 위로와 희망이 되는 보편적인 메시지가 될 수 있다.
퇴원 후, 나는 글쓰기를 다시 시작했다. 병원 침대에서 던졌던 질문,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펜을 들고 내 안의 이야기들을 끄집어낼 때마다, 아팠던 기억들이 치유되는 것을 느꼈다.
공허함은 글자로 채워졌고, 후회는 성찰로 바뀌었다. 내 손끝에서 탄생하는 문장들이 나 자신에게 위로를 건네고, 동시에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말라고 경종을 울렸다.
아직 갈 길은 멀다. 삶의 무게는 여전히 느껴지고, 공허함이 문득 찾아올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어둠 속에서도 작은 빛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힘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의 이야기가 나뿐만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도 작은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계속 쓸 것이다.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모든 이들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