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그 단어는 내게 늘 그림자 같았다. 특히 서른의 문턱을 넘어서자마자 시작된 술과의 지독한 씨름은,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어둠으로 물들였다.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나이에 겪은 두 번의 블랙아웃은, 그 그림자의 가장 짙은 부분이자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악몽 같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날들을 떠올릴 때마다 여전히 심장이 조여 오고, 차가운 새벽 공기와 함께 밀려오던 수치심과 후회가 생생하다.
첫 번째는 눈이 펑펑 쏟아지던 겨울 새벽이었다. 전날 회사 회식이 끝난 후, 혼자 집으로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맥주 몇 캔을 더 샀던 것 같다. 정확히 그때 왜 그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하루의 고단함을 털어내고 싶었거나, 아니면 그냥 술기운이 더 필요했겠지. 그렇게 비틀거리며 걷다가, 기억이 끊겼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온몸이 얼어붙을 듯 차가웠고, 눈발이 계속 날리고 있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쪼그리고 앉은 채로 잠들었던 것 같다. 눈은 쌓여서 내 어깨와 머리 위에 하얗게 내려앉아 있었고, 발끝은 이미 감각이 없었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자, 경찰관 두 분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여기서 이러고 계시면 안 됩니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수치심과 함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서른 살의 나이에, 눈 오는 새벽 길거리에서 술에 취해 잠들어 경찰에 발견되다니. 마치 길 잃은 아이나 노숙자처럼 초라한 모습이었다. 경찰서로 옮겨져 보호를 받으며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 술이 깨면서 밀려온 것은 어마어마한 자괴감이었다. 가족들에게 연락이 닿았을 때의 민망함, 나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 그 무게가 나를 짓눌렀다. "다시는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속으로 수없이 다짐했지만, 그때의 나는 그 다짐을 지킬 힘이 없었다.
두 번째 아찔했던 기억은 출근길에 찾아왔다. 주말 내내 술을 마시고 일요일 밤늦게까지 달리다가 잠이 들었다. 아니, 잠이 들었다기보다는 정신을 잃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월요일 아침, 휴대폰 알람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지만 몸이 천근만근이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조금만 더...' 생각하며 다시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이었다. 시계를 확인하자 이미 출근 시간 훨씬 지난 시간이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고 속은 울렁거렸다. 온몸이 술에 절어있는 느낌이었다.
그제야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 와있는 휴대폰 화면을 보고는 심장이 쿵 떨어졌다. 회사 동료들과 상사의 이름이 찍힌 것을 보고 식은땀이 흘렀다. 뭐라고 변명해야 할까. 아프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솔직하게 술 때문에 그랬다고 말해야 하나? 어떤 말을 해도 나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결국 어설픈 변명으로 그날 결근 처리를 했지만, 회사에 전화했을 때 들었던 동료의 걱정 섞인 목소리와 그 안에 담긴 미묘한 실망감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술 때문에 내 본업까지 망치고 있구나.' 그때서야 비로소 술이 내 삶을 얼마나 깊숙이 잠식했는지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사실 서른 즈음의 나는 이 두 번의 블랙아웃 말고도 술 때문에 수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충동적인 감정으로 하지 말았어야 할 말들을 내뱉고 후회한 적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술김에 저지른 실수들 때문에 친구들과 멀어지기도 했고, 술이 없으면 불안해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숙취 때문에 중요한 약속을 취소하거나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사람들을 만나 민폐를 끼치기도 했다. 술은 잠시나마 현실을 잊게 해주는 도피처 같았지만, 결국 더 큰 문제와 후회, 그리고 고독만을 안겨주는 존재였다.
그 서른 살의 그림자는 오랫동안 나를 따라다녔다. 특히 두 번의 블랙아웃 경험은 거울을 볼 때마다 비치는 나의 초라하고 나약한 모습 같았다. '내가 왜 그렇게까지 망가졌을까?'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했고, 그 답을 찾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 시간들을 반성하며 깨달은 것은, 술은 결코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나 자신을 잃게 만든다는 잔혹한 진실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바로 서른의 나, 그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나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기 위해서다. 솔직히 그때를 떠올리는 게 아직도 쉽지는 않지만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 글은 어쩌면 과거의 나에게 건네는 뒤늦은 사과이자, 이제는 괜찮다고 말해주는 위로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나처럼 어둠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나만 왜 이럴까', '나는 왜 이렇게밖에 안 될까' 하고 스스로를 탓하며 괴로워하는 누군가에게 아주 작더라도 빛 한 조각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괜찮다고, 너만 그런 게 아니라고, 나도 그랬었다고. 네가 지금 겪고 있는 그 고통과 외로움이 결코 너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고'
설령 지금 눈앞이 캄캄하더라도, 그 늪에서 나올 수 있는 방법이 분명 있다는 희미한 희망이라도 전하고 싶었다.
서른의 나는 분명 술이라는 시커먼 늪에 발이 묶여 허우적거렸다. 벗어나려 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것만 같았고,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 자괴감과 수치심, 후회라는 진흙탕 속에서 버둥거렸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독서'와 '글쓰기'라는, 어쩌면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이 두 단어가 나에게는 생명을 건져줄 '동아줄'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잡고 그 늪에서 한 발짝씩, 정말 온 힘을 다해 빠져나오려 애쓰고 있다.
단번에 나를 구원해주진 않을 터다. 손이 아프고 미끄러지기도 하고, 다시 늪으로 끌려들어 갈 것 같은 불안감도 여전히 있다. 하지만 글자 하나, 단어 하나에 매달리며 버티고, 다른 사람들의 삶과 지혜를 읽으며 길을 찾고 있는 중이다.
그 처절했던 반성의 시간들을 글로 기록하는 행위는 나에게 단순한 글쓰기 이상의 의미가 있다. 아팠던 기억들, 후회되는 순간들, 스스로에게 실망했던 감정들을 그냥 흘려보내는 게 아니라, 그것들을 똑바로 보고, 이름을 붙여주고, 왜 그랬을까 되묻고, 내 삶의 교훈으로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글은 그때의 나를 객관적으로 보게 해 주고, 내가 얼마나 나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나침반이다. 이 기록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더 이상 같은 오답을 반복하지 않도록 나를 잡아주는 단단한 안전벨트가 되어줄 거라고 믿는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는 중이라는 건, 단순히 술을 끊었다는 걸 넘어서는 이야기다. 과거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내 감정을 건강하게 마주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내면을 채우고, 생각의 깊이를 더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새롭게 배우는 것. 그렇게 몸과 마음이 단단해지는 모든 과정이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가는 여정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갈 길이 멀고, 때론 흔들리기도 하겠지만, 적어도 길 위에 서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고, 희망이 된다. 이 글은 그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작은 기록이자, 과거의 나에게, 현재의 나에게, 그리고 다른 '나'들에게 보내는 격려와 연대의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