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게도, 직장에서도 나는 이미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술은 더 이상 위로가 아니었다. 그냥 나를 더 깊은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무게 추 같았다. 내가 쌓아 올렸다고 믿었던 모든 것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릴 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마음은 어느새 폐허뿐이었다. 적막과 폐허 한가운데 서 있는 나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고 존재 같았다. 수치심이 온몸을 휘감았다. 옷처럼 벗어 던질 수도 없었다. 물처럼 씻어낼 수도 없는 끈적한 감정이 나를 완전히 집어삼켰다.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웠다. 차라리 이 모든 게 끝나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희미했던 그 생각이 곧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사라지자. 그냥 없던 사람 되는 거야.' 그것만이 유일한 탈출구처럼 느껴졌다. 핸드폰을 들었다. 손가락이 덜덜 떨렸다. 뭘 검색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거다.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 절박하고 비참한 마음으로 화면을 노려봤다.
온라인 세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차가웠다. 방법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기사 몇 토막이 눈에 들어왔다.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던 사람이 있었고, 실제 그 방법을 실행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얼굴 한번 본적 없는 누군가의 마지막 소식이었다.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추상적인 '죽음'이 갑자기 현실로 훅 들어왔다. 삶의 마지막이 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차갑고 비릿한 맛이 입안에 느껴졌다. 그리고... ‘욱.’
갑자기 속에서 무언가 치밀어 올랐다. 인터넷 검색창에 떠 있던 차가운 기사와, 내 머릿속의 절박한 외침들이 한데 뒤섞여 구역질이 났다.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를 붙잡고는 속을 게워냈다. 끅끅거리는 소리만이 좁은 화장실에 울려 퍼졌다.
짧지만 지독하게 긴 시간 동안, 변기를 붙잡고 생각했다. 생각이라기보다는 질문에 가까웠다. '내가... 내가 뭘 위해 이렇게까지 하고 있지?' 뭘 위해 살겠다고 발버둥 쳤던 걸까. 이렇게 더럽고 추한 모습으로 변기 앞에서 모든 걸 쏟아내는 내가, 도대체 뭘 위해 숨 쉬고 있는 걸까.
자괴감이 물밀 듯 밀려왔다. 스스로가 너무 한심했다. 비참한 벌레라도 된 기분이었다. 누가 볼까 두려웠고, 아무도 보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더 절망스러웠다. 침몰하는 배 안에서 혼자 비명을 지르는 듯한 외로움과 공포가 나를 덮쳤다.
이상하게도 그 모든 역겨움과 자괴감 속에서, 아주 작은 불꽃 같은 게 보였다. 변기에 얼굴을 파묻고 헉헉거리는 나 자신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내가 이걸 왜 이렇게까지 힘들어하고 있지? 이렇게까지 토할 정도로... 살고 싶은 건가?'
그렇다. 죽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죽음의 차가운 현실을 마주했을 때 몸이 먼저 거부한 거였다. 구역질은 단순한 생리 현상이 아니라, 살고 싶다는 내 몸의 비명이었던 거다.
당장 "그래, 살아남자!" 하고 드라마틱하게 깨달음을 얻은 건 아니었다. 여전히 나는 비참했고, 여전히 앞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변기 앞에서 나를 게워내던 그 순간, '내가 뭘 위해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살고 싶다'는 아주 원초적인 외침을 동시에 들었던 것 같다.
정신과 의사이자 아아슈비츠 수용소에서의 생존자였던 빅터 프랭클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더 이상 상황을 바꿀 수 없을 때, 우리 자신을 바꾸는 도전을 받는다.
('When we are no longer able to change a situation, we are challenged to change ourselves.')
변기 앞에서 모든 걸 쏟아내던 나는, 상황을 바꿀 힘이 전혀 없었다. 과거는 이미 벌어졌고,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나 자신을 바꿔야 한다는 무언의 도전을 받은 것 같았다. 이대로 무너져 버릴 것인가, 아니면 이 끔찍한 경험을 통해 완전히 다른 존재로 거듭날 것인가.
그 구역질 나는 순간이 바로 나에게는 바닥 중의 바닥이었고, 역설적이게도 그 바닥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유일한 발판이 되어주었다. 수치심 때문에 죽고 싶었지만, 수치심 때문에 살아남아 그 수치심을 똑바로 마주하고 싶다는 이상한 오기가 생겼다고 할까.
삶의 가장 밑바닥에서도 삶은 끝나지 않았다. 변기 앞에서 토하는 순간에도, 자괴감에 몸서리치는 순간에도, 아주 작은 '살고 싶다'는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불꽃 하나만 붙잡고 버티다 보면, 어떻게든 다시 일어설 힘이 생긴다는 것. 당신이 지금 어디에 있든, 얼마나 무너져 있든, 당신 안의 그 작은 불꽃을 믿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게 결국 당신을 살릴 거라고. 나처럼.
변기 앞에서 '살고 싶다'는 원초적인 외침을 들은 후, 나는 곧장 드라마틱하게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고통스러웠고, 미래는 불투명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전과는 다른 존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마치 뱀이 낡은 허물을 벗듯, 나 역시 과거의 껍데기를 벗어 던지고 새로운 나로 '탈피'해야 했다.
가장 먼저 시작한 건 '인정'이었다. 술에 의존하고, 가족과 직장에서도 외면받던 나약한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웠지만, 외면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추한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마치 번데기가 고치를 깨고 나오듯, 불편하고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다.
다음 단계는 '변화'였다.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담 치료를 받고, 운동을 시작했다. 굳어진 습관과 사고방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매일 아침 명상하고,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렸다. 마치 애벌레가 나비로 '진화'하듯, 내면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가꾸기 시작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관계 회복'이었다.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다.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직장에서는 동료들과 협력하고, 새로운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마치 갓 태어난 새가 날갯짓을 배우듯, 서툴지만 천천히 관계를 회복해 나갔다.
물론, 모든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술에 대한 유혹, 과거의 실패에 대한 두려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 등 수많은 난관에 부딪혔다. 하지만 그때마다 변기 앞에서 들었던 '살고 싶다'는 외침을 떠올리며 포기하지 않았다.
빅터 프랭클의 말처럼,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나 자신을 바꾸는 데 집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술 대신 운동과 독서에 몰두하면서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 가족들과의 관계가 회복되면서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 직장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성과를 창출하면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마치 오랜 진화를 거쳐 마침내 하늘을 날아오르는 새처럼, 나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고 있었다.
아직 갈 길 아직도 멀다. 하지만 더 이상 과거의 나약한 내가 아니다. 실패와 고통을 통해 더욱 강해지고, 성숙해졌다.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존재가 되고 싶다. 밑바닥까지 추락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당신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변기 앞에서 게워내던 그 순간은 나에게는 악몽과도 같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삶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낡은 껍데기를 벗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관계를 회복하면서 나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마치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처럼, 내 안의 '살고 싶다'는 외침은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