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집중할 수 없게 되었다

by 회색달

매일 아침, 지하철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틈에 끼여 회사로 향할 때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같이 당당한 어깨에 활기찬 발걸음인데, 나만 땅만 보고 걷는 기분이었다. 눅눅하고 축 처진 몸과 마음으로 사무실 문을 열면, 환한 형광등 불빛 아래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동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들은 다들 제자리에서 제 몫을 해내고 있는데, 나는 뭐 하는 건가 싶었다.


내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면 어김없이 지난밤의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또 마셨지. 또 필름이 끊겼지. 중요한 업무 메일은 확인했나? 어제 회의 때 실수한 건 없었나? 불안한 마음으로 메일함을 열고 업무 스케줄을 확인하는 순간, 차가운 현실이 나를 덮쳤다. 여기저기서 날아든 독촉 메일, 누락된 업무, 마감 기한을 넘긴 보고서... 변명의 여지가 없는 내 실수들이 빼곡했다.


처음에는 대충 얼버무리거나 동료에게 슬쩍 떠넘기기도 했다. 다들 바쁘니까 내 실수 하나쯤은 눈치채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같은 실수가 반복되고, 마감이 계속 늦어지면서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지는 걸 느꼈다. 전에는 함께 웃고 떠들던 동료들이 나를 볼 때마다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걱정인지, 한심함인지, 아니면 그저 무관심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시선들이 비수처럼 박혔다. 괜히 눈을 피하고 등을 돌렸다. 내 자신이 초라하고 보잘것없게 느껴져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가장 괴로운 건 회의 시간이었다. 다들 열정적으로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성과를 발표하며 서로 격려할 때, 나는 투명인간이 된 것 같았다. 예전에는 나도 저들처럼 당당하게 내 의견을 말하고 인정받았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내 차례가 오면 목소리가 기어들어가고, 생각은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제대로 된 대답 하나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 자리에 앉으면 얼굴이 화끈거렸다. 회의실을 가득 채운 공기가 나를 질식시키는 것 같았다.


점심시간에도 혼자 밥을 먹는 날이 많아졌다. 동료들은 삼삼오오 모여 웃고 떠들며 식당으로 향했지만, 나는 그 무리에 끼어들 용기가 나지 않았다. 혹시라도 어제 내가 술김에 이상한 소리를 하지는 않았을까? 내 옷에서 술 냄새가 나지는 않을까? 별의별 걱정이 다 들었다. 차라리 혼자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때우는 게 마음 편했다. 컵라면을 들이키며 창밖을 내다보면, 햇살 아래 활기차게 걸어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모두 나보다 나은 삶을 사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한심하다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회사에서 가장 두려운 순간은 인사고과 시즌이었다. 평가지를 작성할 때마다 손이 떨렸다. 뭘 써야 할지 막막했다. 내세울 만한 성과가 없었다. 오히려 실패와 실수투성이였다. 나 스스로에게 가장 박한 점수를 주고 싶었다. 면담 시간은 그야말로 고문이었다. 팀장님은 애써 좋은 말을 해주려 했지만, 그 속에 담긴 실망감을 읽지 못할 리 없었다. "자네, 예전 같지 않네. 무슨 일 있나?" 그 질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땅만 쳐다봤다. 팀장님의 한숨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들렸다.


그리고 승진 발표가 있던 날. 사무실 게시판 앞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빼곡하게 적힌 승진자 명단 속에서 내 이름을 찾으려 눈을 비볐다. 하지만 어디에도 내 이름은 없었다. 나보다 늦게 입사한 후배들의 이름이 당당하게 올라와 있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축하한다며 환호하는 소리, 악수를 나누는 모습들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서서 그 광경을 지켜봤다.


그때 느낀 감정은 창피함을 넘어선 그 무엇이었다. 나는 실패자였다. 낙오자였다. 몇 년째 제자리걸음도 아니고 뒷걸음질 치는 나 자신에게 환멸을 느꼈다. 다른 사람들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만 과거에 붙잡혀 허우적거리는 것 같았다. 회사의 부속품, 언제든 갈아치워질 수 있는 소모품, 그저 월급이나 받아가는 '월급벌레'. 스스로를 그렇게 규정하는 순간,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출근하기 싫었다. 아니,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웠다. 매일 밤 술을 마시며 잠이 들고 싶었다.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이 비참한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직장은 나에게 괴로움 그 자체였다.



글에 메세지를 담으라는데, 이런 경험에는 어떤 메세지를 담아야 할지 고민입니다. 우선 나의 힘든 기억을 꺼내어 놓고, 나중에 메세지를 잡아 보겠습니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06화술 없이는 버틸 수 없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