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몇 해를 살아오면서 ‘체력과 건강’은 항상 자신 있었다. 학창 시절에도 운동 좀 했고, 군대에서도 남들보다 체력 좋다는 소리 꽤 들었다. 제대 후에도 딱히 운동을 꾸준히 한 건 아니었지만, 워낙 타고난 건장함 덕분에 아프거나 골골대는 일은 없었다.
밤새 술 마시고 다음 날 멀쩡하게 출근하는 건 일상이었고, 피피 하지만 억지로라도 버티는 게 가능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내 몸은 영원히 스무 살에 멈춰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아주 심각한 착각.
내 삶의 브레이크가 고장 났다는 걸 몸으로 깨달은 건 삼십 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였다. 처음에는 사소한 증상들이었다. 술을 마신 다음 날이면 숙취가 예전보다 훨씬 오래갔고, 회복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밥맛도 떨어지고,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았다. ‘아, 이제 나이가 드나 보다’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저 술을 좀 줄여야지, 생각만 하고 실천은 하지 않았다. 사실 실천할 의지조차 없었다. 알코올에 절어 있던 내 정신은 이미 현실을 똑바로 마주할 힘을 잃은 지 오래였다. 그렇게 몇 년이 더 흘렀을까.
몸은 눈에 띄게 망가졌다. 가장 큰 변화는 체중이었다. 불과 1년 만에 20킬로그램 가까이 살이 쪘다. 걸을 때마다 숨이 찼다. 계단을 오르는 건 고역이었고,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예전에 입던 옷들은 하나도 맞지 않았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내가 알던 내가 아니었다. 기름기가 번지르르한 얼굴에 풀린 눈, 축 처진 어깨. 마치 다른 사람의 몸을 빌려 쓰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 해의 건강검진 결과는 충격 그 자체였다. 1) 의사 선생님은 내 검진 결과지를 보더니 한숨부터 쉬셨다. 간수치는 정상 범위를 한참 벗어나 있었고, 당뇨 직전 단계에 고혈압까지. 총체적인 난국이었다. 간수치 결과를 본 의사의 굳은 표정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환자분, 이 정도면 약을 드셔야 합니다. 특히 간수치는 이대로 두면 위험해요. 당장 술부터 끊으세요."
술을 끊으라는 말에 나는 속으로 '그게 그렇게 쉬우면 진작 끊었죠' 하고 되받아쳤다. 하지만 의사의 단호한 표정과 내 몸 상태를 보여주는 수치들을 보니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약을 처방받아 병원을 나서는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약봉투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이 이렇게 망가질 동안 나는 뭘 했던 걸까?' 술에 취해 정신 놓고 사는 동안, 내 몸은 묵묵히 고장 나고 있었던 거다.
하지만 진짜 고통은 이제 시작이었다. 갑자기 불어난 체중 때문이었는지, 어느 날 허리에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삐끗했나 싶었다. 파스를 붙이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다. 하지만 통증은 점점 심해졌고, 결국 걷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다리까지 저리기 시작했고, 앉아 있기도 서 있기도 누워 있기도 괴로웠다. 병원에 갔더니 '급성 디스크 탈출증'이란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결국 보름 넘도록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입원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데, 기분이 묘했다. 같은 병실에는 교통사고로 다치거나 갑작스러운 사고로 입원한 환자들이 있었다. 그들의 사고는 대부분 예측 불가능하게 찾아온 불행이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내 몸이 망가진 것도, 허리 디스크가 터진 것도, 결국 내가 자초한 일이었다. 매일 밤 술에 의존하고, 몸을 돌보지 않고, 나 자신을 방치한 결과였다. 침대에 누워 다른 환자들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2)'저 사람들은 육체적인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나는 술에 취한 채로 마음의 교통사고를 당한 거나 마찬가지구나.'술에 취해 마음이 길을 잃고 방황하다 결국 몸이라는 현실에 쾅하고 부딪혀 박살이 난 기분이었다.
스스로에게 무심했고, 방치했다. 결국 스스로를 파괴한 결과였다. 병실은 마치 내 인생의 '사고 처리반' 같았다. 망가진 몸을 억지로 꿰매고 수리하려 애쓰는 곳.
창피했다. 남들은 갑자기 닥친 불행으로 병원 신세를 지는데, 나는 나 스스로가 만든 문제 때문에 여기에 누워 있다는 사실이. 내 몸을 이렇게까지 방치하고 학대했다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동시에 이상하게도 약간의 안도감 같은 것도 느껴졌다.
이제야 비로소 내 몸이 보내는 경고를 제대로 들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병실에 누워 보내는 시간은 내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살아왔는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리고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프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꼭 필요했던 시간이었다.
마치 제대로 서기 위해선 뼈가 자라는 고통을 견뎌야 하는 것처럼.
그래,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모든 아픔과 고통은 어쩌면 내 삶의 가장 혹독한 '성장통'일지도 모른다. 부끄럽고 아프지만, 이 성장통을 제대로 겪어내야만 비로소 다시 똑바로 설 수 있을 테니까. 병실 침대에 누워, 나는 다짐했다.
다시는 스스로에게 이런 끔찍한 교통사고를 내지 않겠다고. 그리고 이 아픔을 발판 삼아 반드시 다시 일어서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