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없이는 버틸 수 없는 삶

by 회색달

문장을 읽는 당신의 머릿속에는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길거리에서 비틀거리는 사람? 아니면 폐인처럼 변해버린 모습? 아마 많은 사람들이 알코올 중독자를 그런 극단적인 모습으로만 상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모습은 달랐다. 겉으로 보기엔 그럭저럭 하루를 버텨내는 평범한 직장인이었고, 친구들과 웃고 떠들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매일 불안의 파도가 요동쳤고, 그 파도에 휩쓸려 침몰하지 않기 위해 나는 필사적으로 술이라는 낡은 닻을 붙잡고 있었다.

나의 하루는 늘 술에 대한 기대와 함께 시작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오늘 저녁에는 얼마나 마실 수 있을까? 어디서 누구와 마시면 좋을까?' 하는 계산이었다. 일과 중에도 머릿속 한구석은 온통 술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점심시간에 시계를 볼 때마다 '아직 멀었네' 하고 한숨 쉬었고, 퇴근 시간만 손꼽아 기다렸다. 평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사소한 일에도 쉽게 흥분하고 짜증이 치밀었다. 내 본모습은 온통 술에 묶여 있었고, 겉으로 태연한 척하는 나는 가면을 쓴 이중생활을 하는 배우에 불과했다. 술을 마시기 전까지의 시간은 그저 술을 마시기 위한 대기 시간이나 다름없었다.


왜 나는 그토록 술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내 안의 어두운 방을 들여다봐야 했다. 불안, 외로움, 실패감, 분노,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 이런 불편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감정들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술잔을 찾았다. 술은 일종의 마취제였다. 잠시 동안 내 안의 모든 고통과 불편함을 희미하게 만들어주는 강력한 마취제. 술에 취해 있는 동안 나는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았고, 현실의 무게에서 벗어난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마취가 풀렸을 때 찾아오는 고통은 이전보다 훨씬 지독했다. 술기운이 가시면 불안과 초조함은 더욱 심해졌고, 외로움은 사무쳤으며, 내가 마주하지 않았던 문제들은 더욱 커져 있었다. 술잔에 비친 내 모습은 점점 더 일그러지고 망가져 갔지만, 나는 그 모습을 똑바로 쳐다볼 용기조차 잃어버린지 오래였다. 거울을 볼 때마다 수치심과 자기혐오가 나를 집어삼켰고, 그 감정을 다시 잊기 위해 또다시 술을 찾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나는 출구 없는 미로에 갇힌 생쥐처럼 필사적으로 달렸지만, 결국 제자리걸음일 뿐이었다.


술은 나의 모든 것을 서서히, 그리고 파괴적으로 앗아갔다. 가장 먼저 망가진 것은 내 건강이었다. 잦은 복통에 시달렸고, 아침마다 손이 떨렸으며, 이유 없는 무기력감이 온몸을 지배했다. 병원에서 간수치가 높다는 경고를 들었고, 이대로 가다가는 심각한 문제가 생길 거라는 의사의 싸늘한 말에도 잠깐의 두려움만 느꼈을 뿐, 술을 끊을 용기는 나지 않았다. 돈 문제도 심각했다. 매일 밤 술집을 전전하고 사람들에게 술을 사면서 카드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결국 카드값을 연체하는 상황까지 맞았다. 술 때문에 생긴 경제적인 어려움은 또 다른 스트레스를 안겨주었고, 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나는 다시 술을 찾았다.


무엇보다 나를 가장 아프게 했던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산산조각 나는 모습이었다.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짜증을 내고, 약속을 어기고, 믿음을 깨뜨렸다. 술에 취해 했던 말과 행동들은 그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고, 결국 그들은 지쳐서 하나둘씩 내 곁을 떠나갔다. 술은 나에게서 가장 소중한 지지 기반이자 사랑을 앗아갔지만, 나는 여전히 술 없이는 버틸 수 없다는 비겁한 변명 뒤에 숨어 있었다. 술은 나를 외딴섬에 가두었고, 나는 그 섬에서 홀로 고립되어갔다.


술에 자꾸 의존하게 되는 내 모습은 사실 몸과 마음이 보내는 마지막 경고였는지도 모른다. '이대로는 안 된다', '정신 차려라'는 간절한 외침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목소리를 듣지 못했고, 계속해서 가장 쉽고 빠른 파멸의 길을 택했다. 술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할 용기를 빼앗아가는 도피처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도피의 끝은 결국 당신이 가진 소중한 건강, 재산, 관계, 그리고 당신 자신까지 모두 잃게 만드는 파멸이라는 것을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이 글이 당신에게 불편함을 준다면, 어쩌면 당신의 삶에도 술 없이는 버티기 힘들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거나, 혹은 나처럼 술에 의존하며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모습이 있는지도 모른다. 나의 아픈 고백과 파멸 직전까지 갔던 나의 이야기가 당신에게 경각심을 주고, 지금 당신의 모습을, 당신이 술을 왜 찾는지 그 이유를, 그리고 이대로 당신의 삶이 흘러가도 괜찮을 것인지... 스스로에게 진지한 질문을 던져보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 성찰의 작은 불꽃이, 어둠 속에서 당신의 길을 밝히고 당신의 소중한 삶을 다시 되찾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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