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부딛히며 지나온 것들. 파도는 늘 있었고, 나는 그 위에 있었다.]
우리는 늘 시간의 흐름을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고 믿는다.‘빨리빨리’ 라는 말에 속아서 눈에 보이는 성과를 서둘러 얻으려 하고, 좋아하는 계절이나 행복한 순간이 빨리 지나가면 아쉬워하면서도 그 시간을 붙잡으려 애쓰는 어리석음을 반복한다.
하지만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같은 속도로 계속해서 흐를 뿐이다. 내가 아무리 “잠깐만”을 외쳐도, 결국 지나간다. 흘러가는 물줄기를 손바닥으로 막을 수 없는 것처럼. 그걸 억지로 잡으려는 순간, 우리는 그 물살에 휩쓸리고 만다.
넘어지고, 지치고, 후회한다.
어린이 보호구역을 지날 땐 시속 30km로 천천히 달려야 한다. 누군가의 하루를 지켜주는 속도는 그렇게 느리다.
자연도 마찬가지다. 봄이면 꽃망울이 열리는 개화 전선이 하루에 겨우 1km 남짓 움직인다고 한다.
아무리 애를 써도, 꽃은 밀어붙인다고 먼저 피지 않는다.
삶이 그렇다. 저마다 피어날 때가 있고, 그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그래서 나는 요즘 점심시간이면 휴대폰 음악을 틀어놓고 건물 뒤편 나무길을 몇 바퀴 돈다.
빽빽한 회의 뒤에도, 메일 답장을 다 못 써도,
그 시간만큼은 잠깐 멈춘다. 나무 그늘 아래 드문드문 만들어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마음이 조용히 풀린다.
누군가 전화를 걸어오면 “지금은 통화가 어려운 상황인데요, 괜찮으시면 조금 이따 연락드릴게요.”
그 말을 차분히 내뱉을 수 있게 된 것도 예전의 나와는 다른 점이다. 예전 같았으면 급히 받거나,
말을 줄여가며 숨 가쁘게 대답했을 것이다. 지금은 다르다. 조금 늦더라도 나는 나의 속도로 숨을 고르고 싶다.
흐름을 존중하며 함께 걸어간다는 건 거창한 결심이나 거부가 아니다. 한 박자 쉬어가기다.
조금 돌아가거나, 방금 전보다 느리게 걷기.
그렇게 하루의 호흡을 맞추는 작은 실천들이다.
시간은 여전히 같은 속도로 흐르지만 내가 그 속도에 맞춰 걸을 때, 하루는 그만큼 단단해지고
마음은 덜 흔들린다.
사랑하는 계절이 지나가더라도 억지로 붙잡으려 하지 말자. 그저, 함께 걸어가면 된다. 조용히, 내 속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