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시작, 글 쓰기가 두려웠지만

by 회색달


처음 글쓰기를 시작했을 땐, 뭔가를 제대로 완성해 낸다는 상상조차 어려웠다. 솔직히 글을 쓴다는 생각 자체가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하루하루를 술에 기대어 간신히 버티고 있었고, 온몸은 나른하고 정신은 흐릿했다. 일상의 기억은 술에 씻겨나갔고, 그 속에서 나는 무력하게 흘러갈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단주를 결심하고, 몇 개월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나에게 '무언가를 써보고 싶다'는 감정이 올라왔다. 그것은 강렬한 욕망이기보다는 아주 조심스러운 속삭임이었다. 누군가 내 안에서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고, 나는 그 소리를 무시할 수 없었다.


막상 펜을 들고, 노트북 앞에 앉았을 때 처음 마주한 건 '쓸 수 없음'이었다. 도대체 무엇을 써야 할지 몰랐고,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내 삶은 망가졌어. 여기에 쓸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가 있긴 한 걸까?'라는 회의가 떠올랐다.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나는 스스로를 철저히 무가치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무가치함이야말로, 내가 반드시 써야 할 이유였다. 왜냐하면, 그 감정은 결코 나 혼자만 느끼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나와 같은 시기를 지나고 있었고, 누군가는 이 아픔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첫 문장을 내리기 시작했고, 단 하나의 문장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변화는 시작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생각했다. ‘내가 정말 글을 쓰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구나.’ 완벽한 글이 아니어도 좋았다. 누군가의 감탄을 받지 않아도 괜찮았다. 매일 한 줄씩 내 마음을 끄집어내어 쓴다는 그 자체가, 내 안에 축적되어 가는 '작은 성장'이 되었다.


나는 나만의 실천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는 하루 한 문장 일기. 그날의 기분을 솔직하게 적었다. “오늘은 괜찮았지만 괜히 우울한 기분에 울었다.” “편의점 맥주 광고를 보고 흔들렸다.” 이 한 줄들이 처음에는 불안과 흔들림의 기록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점점 “참았다”, “이겨냈다”, “웃었다”는 문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기록이 쌓이자 내가 얼마나 자주 외로웠는지, 무엇에 가장 약한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매일 나를 들여다보았다”는 사실 자체였다.


둘째는 매주 한 권 읽기. 처음엔 짧은 에세이나 인터뷰집, 중간에는 중독이나 감정에 대한 심리서적, 나중에는 인문학 서적까지 읽었다.

책 속에서 나와 닮은 사람들을 만나고, 내가 느끼는 감정이 결코 이상하거나 나약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다들 이런 고통을 겪고 살아내고 있구나.” 책 속 문장을 노트에 필사하면서 그 사람의 시선을 따라가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책에서 건져 올린 문장을 중심으로 내 감정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힘이 생겼다. 책은 내 감정의 번역기였고, 마음의 해석사였다.


셋째는 매주 돌아보기. 매주 일요일 저녁이면 조용히 일기를 뒤적이며 한 주를 정리했다. 그 주에 쓴 글 중 가장 아팠던 문장, 가장 뿌듯했던 문장, 그리고 '다음 주엔 이런 걸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노트에 덧붙였다.


이것은 내 감정의 지도였다. “아, 나는 월요일 아침이 가장 무기력하고, 금요일 밤이 가장 위험하구나.” “수요일엔 회의 스트레스가 많아서 예민해졌구나.” 이런 패턴을 아는 것만으로도 내 감정을 예방하고, 대비할 수 있었다.


단주도, 글쓰기도 결국 ‘관찰’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실천을 하며 나는 전보다 훨씬 덜 흔들렸다. 이제는 어떤 감정이 올라와도 '그걸 쓸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쓸 수 있다’는 건 곧 '견딜 수 있다'는 의미였다.


글쓰기는 내가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닻이었다. 나는 이전의 나와 다르게, 감정 앞에서 도망치지 않게 되었다. 두려움, 분노, 외로움, 후회. 이제는 그것을 관찰하고, 설명하고, 결국은 글로 옮겨 적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 감정과 화해했고,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었다.


이런 실천들이 쌓이면서, 나는 ‘성장’이라는 단어를 다시 정의하게 되었다. 성장이란 더 멋진 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더 솔직한 내가 되어가는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 솔직함을 매일 기록하는 것이, 내 삶을 버티고 살아가는 가장 든든한 방법이라는 걸.


글쓰기는 점차 일상이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으며 스스로 위로받는' 시간이 찾아왔다. 어제의 나를 오늘의 내가 이해하고 감싸안는 시간. 그런 순간들이 쌓일수록 나는 조금씩 단단해졌다.


이제는 작은 성공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날 술을 마시지 않은 것, 한 문장을 쓴 것, 내가 나를 비난하지 않은 것. 이 작은 성취들이 모여, 내 삶을 바꿔놓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비록 어제보다 나아지지 않았더라도, 어제의 나를 품고 오늘을 견뎌낸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해준다.


글을 쓸 수 있는 지금의 내가, 참 고맙다. 내가 글을 쓰며 배운 가장 중요한 사실 하나. 성장은 어디에 도착하는 일이 아니라, 매일 살아내는 나를 끌어안는 연습이라는 것. 이제는 안다. 텅 빈 노트북 앞에 앉는다는 건, 결국 텅 빈 내 마음 앞에 진심으로 마주 서는 일이라는 걸.


요즘 나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눈으로 나의 하루를 바라본다. 어제의 나는 불안했고, 오늘의 나는 여전히 서툴지만 벽돌 하나가 쌓인 지금의 나는 어딘가 더 단단해져 있다.


어떤 날은 여전히 술을 마시고 싶을 만큼 외롭고,
어떤 날은 지난 실수들이 목덜미를 잡고 흔들지만,
나는 이젠 그런 감정들을 글로 끄집어낼 수 있다.

내 감정이 내게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이젠 내가 그 감정을 바라보고, 안아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내가 글을 쓰며 배운 가장 깊은 회복의 기술이다.


나는 아직도 매일 연습을 반복 중이다. 더 잘 쓰기 위한 연습이 아니라, 더 진실하게 나를 마주하는 연습. 오늘도 노트북 앞에 앉는다. 커서가 깜빡인다. 마음속엔 여전히 말이 많고, 침묵도 깊다.그러나 이제는 믿는다. 그 모든 것들이 내가 다시 살아가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임을.

keyword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19화텅 빈 노트북 화면 앞에 앉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