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오답노트 일기장

by 회색달
지금까지의 삶이 오답투성이어도 좋다.
기록 하는 순간 부터
삶은 나만의 해답을 찾기 시작할테니까.



처음 글이라는 것을 써 보기로 마음먹었던 그날, 나는 늘 그렇듯 새벽녘에 깨어 있었다. 해가 뜨기도 전, 창밖은 어둠에 잠겨 있었고 내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언가 잘못된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하루의 시작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전날 밤도 역시 술을 참으며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문득 이런 내 상태를 그냥 지나치지 말고 남겨보자고 생각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화면을 켜고, 손끝으로 타자를 치기 시작했을 때 써 내려간 첫 문장은 간단했다. “오늘 하루도 버텼다.” 그 말은 단순한 기록이었지만, 나에게는 하나의 증거였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평범하고도 답답한 하루였지만, 분명히 그 하루를 견뎌냈다는 표시. 그렇게 처음으로 내 안에 가라앉아 있던 감정을 끌어올리는 일을 해봤다. 왜 이토록 무기력한 걸까, 무엇이 나를 가라앉히고 있는 걸까. 확실한 대답은 찾지 못했지만, 질문하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 어딘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의 일기장은 단순한 하루의 요약이 아니라, 나를 탐구하는 기록이자 성찰의 공간이 되었다. 학생이 시험에서 오답노트를 만드는 것처럼, 나는 내 삶의 오답을 적어 내려갔다. 어떤 결정이 내게 상처를 남겼는지, 어떤 말이 관계를 틀어지게 만들었는지 하나씩 돌아보며 기록했다. 반복하지 않기 위해, 또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였다. 실수를 다시 보며 낯뜨거운 감정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그 모든 감정이 나를 다시 세우는 재료가 되었다.


그러던 중, 잘했던 일들도 함께 적어보기로 했다. 시험을 잘 본 문제도 복습하듯이, 인생에서 내가 현명한 선택을 했던 순간들을 되새기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용기 내어 건넨 말, 미뤄왔던 일을 마침내 해낸 날,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내 마음을 다잡았던 순간. 그런 기억을 글로 쓰며, 나는 나 자신에게 ‘넌 그렇게 못난 사람만은 아니야’라는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그렇게 내 일기장은 오답만을 모아놓은 노트가 아닌, 삶의 성취와 실패를 함께 담은 성장의 일지로 바뀌었다.


이 일상의 기록을 습관으로 만들기 위해 나만의 규칙을 세웠다. 첫째, 매일 정해진 시간에 쓴다. 아무리 피곤하고 바빠도, 아침의 고요함 속에서 커피 한 잔과 함께 노트북 앞에 앉는다. 둘째, 주제가 없으면 그날의 감정이라도 적는다. 셋째, 짧게라도 쓴다. 네 문장이든 다섯 줄이든, 꾸준함이 곧 힘이라는 걸 믿고 있었다. 넷째, 이 글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위해 쓴다는 걸 항상 되새긴다. 마지막으로, 하루를 잘 마무리하지 못했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다음 날을 준비한다.


글을 쓰다 보면 종종 멈추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말이 막혀버리고, 더는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지 몰랐을 때, 나는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 시간들이 오히려 내 마음을 정리해주는 소중한 침묵의 시간이었다. 감정을 억지로 끌어내기보다는, 조용히 앉아 기다리면 내 안의 무언가가 말을 걸어왔다. 글은 그렇게 조금씩 모양을 갖추었고, 나는 어느덧 내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나는 완벽하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 여전히 삶의 모퉁이를 돌 때마다 예측 불가능한 바람이 불어와 나를 흔들고, 가끔은 예전처럼 달콤한 술의 유혹 앞에서 잠시 망설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나는 더 이상 그런 나약하고 솔직한 감정들을 애써 숨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주저 없이 펜을 들거나 키보드를 두드려 글로 끄집어낼 줄 알게 되었다. 내가 써 내려간 그 기록들이 바로 나에게는 가장 진실하고 투명한 거울이자, 솔직한 친구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술에 기대어 위안을 찾지 않는다. 이제 나는 글을 쓰며, 글을 통해 나를 이해하고, 아픈 곳을 스스로 치유한다. 한때 그저 나의 어둠을 기록하는 공간이었던 일기장은, 이제 내가 다시 세상 속으로 온전히 살아내는 방식이 되었고, 동시에 내일의 더 나은 나를 꿈꾸며 준비하는 단단한 연습장이 되었다.


그러니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매일이 버겁고 힘들다면 나처럼 자신만의 '오답노트'를 한번 써 보기를 진심으로 권한다. 그 노트는 결코 당신의 실패나 단점을 기록하는 차가운 종이가 아니다. 그것은 당신의 가장 깊은 곳을 비추는 따뜻한 거울이자, 잃어버렸던 당신을 찾아주고, 다시 새로운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묵묵히 안내해 줄 든든한 출발점이 될 테니까.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 속에서 수많은 오답을 만나지만, 그 속에서 진짜 나를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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