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by 회색달

오랫동안 대인기피증과 번아웃을 반복하며 지쳐 있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20년 가까이 한 자리에 앉아 같은 일을 하다 보면 안정감이라는 이름의 무거운 갑옷을 입게 된다.


겉으로는 안전해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자신을 억누르는 압박감과 열등감이 차곡차곡 쌓인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버스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은 늘 지쳐 있었고, 퇴근길에는 또 하루를 간신히 버텨낸 무력감만 남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에서 우연히 한 요리사의 고백을 읽게 되었다. 기자였던 그는 대인기피증을 앓던 시절을 지나 요리사로 전향했다. 남들이 보기엔 낯선 선택이었지만, 그는 그 길 위에서 비로소 자신을 찾았다고 했다. 돈도, 명예도 아닌 ‘좋아하는 일’을 하며 자신을 단단히 세워가는 그의 이야기가 묘하게 마음을 울렸다.


그 순간이 내게는 변곡점이었다. ‘나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보고 싶다.’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선명하게 자리 잡았다.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보기로 했다. 돈보다, 인정보다, 그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말은 서툴렀지만 손끝은 빠르게 움직였다. 의자는 무겁게 붙들어 앉았지만,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두 발로 세상의 구석구석을 직접 걸어 다니는 듯한 기분이었다.


서른여섯, 처음으로 글쓰기 수업에 참석했다. 살고 있는 곳에서 강의실까지는 기차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야 했고, 몇 시간의 이동은 내 어깨를 주저앉히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멈칫거릴 때마다 ‘오늘의 선택이 미래의 나를 바꿀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다시 일어섰다. 그날의 용기가 결국 오늘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 공저 출간을 이어가며, 지금도 책과 메모지를 손에서 떼어놓지 않는 내가 되었으니 말이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내가 스스로에게 가장 값진 선물을 건넨 셈이다.


물론,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 백만 원이 넘는 돈을 들여 서울까지 글쓰기 수업을 다니는 내 모습을 두고 “그 나이에 무슨 글쓰기냐”는 비웃음을 들었다. 하지만 그 말들이 오히려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늦었다’는 말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나는 몸으로 깨닫고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 뒤로 미루기만 했다면, 내 삶은 여전히 공허했을 것이다. 글쓰기는 나를 붙잡아주었고, 나는 조금 늦게라도 내가 원하는 삶을 선택했다.


글을 쓰는 일은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쓰는 과정은 특별하다. 눈앞의 성과를 쫓지 않아도 된다. 그저 하루의 마음을 손끝으로 풀어내면 된다. 누군가 읽어주지 않아도 괜찮다. 나 자신이 만족하고, 스스로 치유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사실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다. 좋아서 시작했지만 서툴고, 실수도 많았다. 그러나 매일의 반복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재능이었다. 신입사원이 엑셀 시트 하나 다루지 못하던 시절을 지나, 시간이 쌓이며 중견 간부로 성장하는 것처럼 글쓰기 또한 그렇다. 한 줄 한 줄의 기록이 쌓여 어느 순간 나만의 문장이 되었고, 삶의 흔들림을 붙잡는 힘이 되었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나를 찾아가는 법’을 조금씩 배웠다.


첫째, 작게 시작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글, 완성된 책을 꿈꾸면 시작조차 어렵다. 나는 한 줄 일기를 쓰는 것으로 시작했다. 오늘 본 하늘, 출근길의 소음, 점심 식사의 맛. 사소한 기록이 쌓이면서 내 삶이 조금씩 달라졌다.


둘째, 내가 좋아하는 리듬을 찾는 것이다. 글을 쓸 때는 남의 시선보다 내 속도의 호흡을 따르는 게 중요하다. 매일 새벽 30분, 혹은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을 몰입하는 식으로 나만의 패턴을 만들었다. 남이 보기에 더딜지라도 그 리듬 속에서 글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셋째, 혼자가 아닌 함께 가는 것이다.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은 경쟁자가 아니었다. 서로의 문장을 읽어주고, 응원해 주는 동료였다.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나는 더 단단해졌다. 나의 부족함을 드러내고도 괜찮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넷째, 과정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글을 쓴다고 해서 늘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실패한 글조차 내 흔적이다. ‘잘 쓴 글’만이 아니라 ‘쓴 글’ 자체에 의미를 두며 나를 위로했다.


이 네 가지 방법은 단순히 글쓰기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결국 ‘나를 찾아가는 법’이기도 하다. 삶의 어느 순간에든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잃을 수 있다. 그럴 때 중요한 건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작은 시도, 꾸준한 실천이다. 매일의 반복, 작은 습관, 성실한 기록, 이 모든 것이 결국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자신에게 가까워지게 한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흔들린다. 직장에서의 경쟁, 사회적 기준, 불안한 미래는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글을 쓰는 시간만큼은 나를 온전히 지킬 수 있다. 그것이 내가 찾아낸 삶의 균형이고, 작은 행복이다.


나를 찾아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하지만 확실한 건,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길이 스스로 열린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제 안다. 글쓰기가 내 삶을 붙들었듯, 누구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신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을.


나를 찾아가는 법은 거창하지 않다. 작게 시작하고, 나만의 속도를 지키며, 함께 나누고, 과정 자체를 사랑하는 것. 반복 속에서 성장하고, 작은 기록이 쌓일 때 비로소 자신에게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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