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나로 살아가기로 했다

by 회색달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하나를 맡기면 열까지 해내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고, ‘너라면, 항상 믿고 맡길 수 있지!’라는 말해주길 간절히 바랬다. 한편으로는 ‘실수=무능이자 실패’라는 공식이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었다. 그만큼 내가 부족하다는 증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다 누군가 나에 대한 험담을 들었을 땐 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가 뭘 잘못했나? 말실수라도 했나? 혹시 무표정하게 인사했나? 전화 통화할 때 목소리가 퉁명스러웠나?’ 퇴근 후에도 기억 속 나를 샅샅이 뒤져가며 자책과 원망을 반복했다. 동료들과의 갈등이 떠오를 때면, 결국 도달하는 결론은 언제나 식탁 위 가득 채워진 소주잔뿐이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그러냐!’ 그렇게 소리 지르며 잠들기를 반복했고, 다음날이면 괜찮은 척하며 다시 출근하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왜 나는 항상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흔들리고. 기대와 인정을 쫓으며 사는 걸까?’


돌이켜 보면 이런 끊임없는 ‘걱정’하는 습관은 아주 오래전부터 내 안에 있었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던 아버지, 밥상머리에서 반찬 투정을 했다는 이유로 숟가락으로 머리를 때리던 어머니. 그 시절의 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무엇이든 ‘잘’ 해야 했다. 어른을 보면 인사를 잘해야 했고, 친구들과의 사이도 잘 지내야 했고, 부모님께서 일 나가시면 집안 정리도 잘해야 했다. 아마 형제 없이 자란 외동아들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혼자 자란 티 내면 안 된다. 버릇없이 굴면 안 된다. 부모 욕 먹이는 거다.’라는 말을 수차례 들으며 부모님으로부터의 사랑은 늘 ‘조건부’라고 믿게 됐다. 실수 없는 완벽함에 겨우 얹혀 있는 사랑. 나는 그런 사랑의 기억을 고스란히 안고 어른이 되었다.


그렇게 자라온 나는 사람들 앞에서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회의 중 논쟁이 벌어질 것 같으면 의견을 말하기보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반박했다가 분위기가 싸해질까 봐,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까 봐 두려웠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늘 긴장했고, 다들 그렇게 산다니까 나도 그렇게 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사라졌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어떤 말에 상처받는지도 모른 채, 그저 타인의 기분에 맞춰 하루하루를 채워왔다. ‘나답게 산다는 건 뭘까?’ 질문을 진심으로 마주하게 된 것, 아이러니하게도 나 자신을 너무 몰랐기 때문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인터넷을 뒤지고 인간관계에 관한 책들을 읽었다. 하지만 어느 책에서도 그런 방법은 없었다. 정답은 단순했다.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불가능한 목표에 매달려 나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걸 뼈저리게 깨닫게 된 건 지인의 추천으로 참여하게 된 독서 모임에서였다. 그날의 선정 도서는『미움받을 용기』였다. 사실 책 제목을 처음 들은 순간부터 거부감이 밀려왔다. ‘미움을 받으라고? 세상에서 가장 싫은 게 미움인데? 어떻게 그걸 용기라고 해?’ 하지만 책장을 넘기는 순간, 마치 누군가 내 마음을 꿰뚫고 글을 썼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열 명 중 두 명은 나를 싫어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내가 내 삶을 어떻게 보는가이다.
- 미움받을 용기 중 -


짧은 몇 문장이 뇌리에 깊숙하게 박혔다. 그동안의 나는, 내 삶을 타인의 기대와 평가 기준에 맞춰 살아왔고, 남들의 잣대를 벗어나지 않기 위해 자신을 조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부터는 모든 사람의 기대를 채우기보다 내가 나를 존중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 몇 사람의 말에 쉽게 무너지기보다 나를 믿고 응원하는 사람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잘 보이고, 인정받는 살보다 진심이 흐르도록 미움을 피하는 대신 ‘나’를 잃지 않는 삶의 태도를 보이기로 했다. 『미움받을 용기』의 작가는 그 태도가 바로 용기라 말하고 있었고 그 과정이 곧 어른이 되어가는 시간이라는 걸 말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억지로 맺어진 관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이 과정이야말로 ‘나로서 살아가는’ 첫 번째 단추라고 여겼다. 그리고 다짐했다. 누군가가 무심코 던진 말을 더는 마음에 담아두지 않기로. 불교에는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는 말이 있다. 남이 던진 말은 첫 번째 화살일 뿐이고, 그걸 곱씹으며 자책하는 건 내가 자신에게 쏜 두 번째 화살이었다.

‘내가 정말 큰 잘못을 했을까?’라는 의심 대신, ‘상대방이 왜 그렇게 느꼈을까?’를 고민했다. 분명 문제 해결의 중심은 나였지만, 모든 원인이 반드시 내 탓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러자 죄책감이 줄었다. 그만큼 마음은 단단해졌다. 이러한 깨달음 이후 나는 관계에서의 태도에 대해 세 가지 원칙을 세웠고, 지금도 원칙을 지키려 노력중이다.

첫째, 나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모든 일을 잘할 수 있는 신이 아니다. 그러니 모두의 인정을 받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남의 기준에 나를 맞추다 보면 정작 무엇이 옳은지조차 헷갈리게 된다.

그래서 나는 매일 틈틈이 책을 읽고, 일기와 수필을 쓴다.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싫어하는 것’, ‘부족한 것’ 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바로 이게 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을 쌓아가는 중이다.


둘째, 불편한 감정도 외면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갈등을 피할 수는 없다. 친구, 연인 누구와도 충돌은 생긴다. 중요한 건 상황 속에서 나를 부정하지 않는 것이다. 갈등을 회피하기보다 마음속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그 상황을 성장의 기회로 삼고자 한다. 예전에는 혼자 끙끙 앓으며 가슴이 답답했지만, 이제는 불편한 감정의 원인을 들여다보며 내 마음의 해석자를 키워가고 있다. 『오늘도 두려움 없이』의 저자 틱낫한 스님이 강조하는 ‘마음 챙김(mind-fulness)’으로 일종의 내 마음을 알아차리며 반응보다 의식을 갖고 대응하는 연습이기도 했다.



셋째, 사람에게 진심으로 대하되, 나를 지키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을 통해 배우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제는 나를 잃어가면서까지 사람들 사이에 녹아들고 싶지는 않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연습 중이고, 이 방법이 나를 지키기 위한 가장 현명한 과정임을 믿고 있다.

물론 지금도 자주 흔들린다. 누군가 툭 던진 말 한마디에, 무심한 동료의 말에 하루가 무너질 때도 있다. SNS에 도배된 반짝이는 삶을 보고 한없이 초라해지는 날도 많다.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건, 이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로 살아간다.’라는 다짐을 할 줄 안다는 점이다.


예전의 나는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했다. 두껍고 단단한 외피를 두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실수와 상처야말로 진정한 나로 살아가는 과정임을 알기 때문이다. 어느 날, 친하게 지내던 동료가 말했다.

“너 요즘 좀 달라진 것 같아. 말투랑 표정이 밝아졌어.”

나는 웃으며 말했다.

“응, 이제는 나부터 챙기기로 했거든.”

어쩌면 내 말이 이기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를 지키기 위한 가장 간단하면서도 관계에서의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태도였다.

나는 앞으로도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처받고, 또 위로받으면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제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사람들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나를 만드는 힘은, 결국 내가 나를 믿는 용기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그것이 내가 선택한 삶의 태도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나는, 흔들리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keyword